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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환삼덩굴의 습격_120516 수

아카시아 꽃이 피면서 꿀향기가 난다.
단내만 맡아도 허기가 가시니 배도 덜 고프다.

비도 촉촉하게 내려서 출근길이 시원하고,
봄 가뭄을 해갈해 줄 단비를 몰고 가니 기분 또한 최고다.
요즘은 영동고속도로 시흥에서 동수원까지가 너무 막히다 보니
차를 이용할 때는 외곽순환을 타고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울 동서집의 옥상에서 뒹굴던 항아리 두 개를 마음이에 싣고 내려 왔더니
심현께서 환한 미소로 반겨 주신다. 무일이 아니라 항아리를.
간절히 원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했다고 기뻐하신다.
무일도 기쁜 일이다. 안 그랬으면 항아리 두 개 사러 옥천까지 갔다 와야 할 판이다.
금이 간 항아리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시골살이다 보니,,,

비 온 뒤끝이라 밭에다 고구마를 심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심현께서 새벽에 다녀 오시더니 심을 만하다 하신다.
세수도 하지 않고 눈꼽만 떼어내고 새벽부터 나가 고구마 두 이랑을 심었다.
고추 지지대로 쓰는 철근으로 45도 각도로 이랑을 쿡 찍어서 15cm 정도의 작은 굴을 만들고
이 틈으로 튼실한 순을 찔러 넣는 것이 우리의 고구마 심기다.

뿌리가 얼마나 튼실하게 내려줄 지 궁금하다.
답을 알기 위해서는 자연의 시계에 맞춰 한 5개월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

올해의 두 번째 대금 연주곡을 완성해야 하는데,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다음 카페 여민락의 동호회원들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으려고
어제 늦게까지 대금 연주를 듣느라 잠이 깨지 않아
9시가 다 되어 고추에 북을 주러 나갔다.
물을 주어 고추를 심고 거의 3주 동안에 물을 먹지 못하고 그저께 처음 비를 맞았는데도
제법 튼실하게 살이 올라 꼿꼿하다.
전부해서 12주 정도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으나 대체로 만족한다.

이제 탄저병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가 과제다.
태평농법에서는 물엿을 물과 타서 잎에 뿌려주면 된다고 하고,
또 다른 연구자는 비온 뒤에 사과식초, 매실효소와 물을 섞어서 두 세차례 뿌려 주라고 한다.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는 삼자회담을 거쳐야 한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탄저병을 전혀 이기지를 못해 빨간 고추 한 번 따고 나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애를 써서 키운 고추나무가 죽어버리고 만다.
말 그대로 환장할 일이다.

정말 가볍게 일했다. 그래도 일만 잡으면 4시간은 그냥 간다. 
아, 시간이 가볍기도 하구나.

정농과 함께 예초기를 사러 읍내에 나갔다. 여러 종류의 기계가 있는데,
가격이 25만원에서 60만원까지 다양하다.
지난 10년간 써 왔던 2행정 엔진이 달린 계양 예초기는 너무 시끄럽고 무거워서
이번에는 휘발유만을 사용하는 4행정 엔진이 달린 혼다 예초기를 사기로 했다.
가격은 30만원이고 보통 5년 정도 사용하면 수명이 끝난다고 한다.


지난 겨울 땔감을 준비할 때는,
세상에서 엔진톱 다루는 일이 가장 무섭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쪼그려 앉아서 풀을 뽑다보니,
무릎과 허리가 아파서 몇 미터 일하기가 어렵다.
오늘 모내기 준비를 위해 논둑을 보는데,
삽으로 물을 새는 곳을 정리하려다 보니
손과 허리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논흙이 무겁다.

결국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이 들거나, 가장 쉽고 안전한 일일 수 있다.
마음 먹기 나름인 모양이다.

정농께서 예초기로 풀을 베시는데 소음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고,
어깨에 전해지는 진동도 크지 않아 편안하다고 하신다.
장비를 사더라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장비를 사면 기분이 좋다.
내구성만 더 좋으면 좋겠는데, 이것 또한 한 2, 3년 써 봐야 아는 일이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태평농법의 종실에서 판매하는 새로운 묘목들이 도착했다.
거금 34만원을 주고 구입한 2년생 14주의 묘목이다.
단호두, 훼이죠아, 소귀나무로 이름 조차 생소한 나무들이다.
뿌리가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저녁 시간에 심으라고 해서 어둠 속을 헤치며 심었다.
앞으로 한 5년 동안 잘 키우면 그 때부터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나 확인하려면 이렇게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  이 나무들은 다 죽었다. 34만원 날렸다. 함부로 돈 쓸 일 아니다. (2018년 8월 28일 무일)

자연은 그저 기다리라고 한다. 
일단 기다림의 순간이 끝나고 나면, 무난한 순환의 시기가 온다.
그러면 기다림은 곧 행복이 되기도 한다.

지난 주 퇴근하기 전에 밭둑의 풀을 낫으로 베었다.
기온이 높아져서 그동안 입었던 두툼한 옷 대신에
낡은 여름 등산복 긴팔로 갈아입고 기분 좋게 낫질을 했다.
농사일이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낫질만큼은 바로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개망초와 바랭이, 쑥이 주류를 이루는 풀들을 베는 일은 그래서 기분이 좋다.
한참 신나게 베어 가는데, 장갑을 뚫고 들어오는 가시가 느껴졌다.
환삼덩굴이구나, 조심해야겠네.
그러면서 더욱 열심히 낫질을 하다가 조금 남겨놓고 돌아섰다.

자전거도 타지 않고 부천으로 퇴근했더니 갑자기 온 몸이 가렵고
빨갛게 에이즈 환자처럼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다.
불현듯 몇 년전에 풀독 때문에 고생했던 일이 생각났다.
아무리 벌레물린데 바르는 약을 발라도 낫지를 않는 지독한 풀독이었다.
게다가 가라앉은 듯 하다가도 조금만 긁어서 자극을 받으면 바로 독기가 올라온다.





샤워를 깨끗이 하고 열심히 버물리를 발랐지만 효과가 없다.
그리미와 함께 하는 주말 산책도 아파트 주변을 몇 바퀴 도는 것으로 끝내고
집에서 쉬면서 낫기를 기다렸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제대로 풀독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악화되서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피부과 의사들도 쉽게 낫지 않으니 꾸준히 약 먹고 바르라고 한다.
김광화 선생도 똑같은 문제를 겪었던 모양이다.
김선생은 일하다 생긴 병이고 피부에 있는 병이니
열심히 일해서 땀 흘리고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니 낫더라고 한다.

일단 피부과에 가서 주사도 한 대 맞고 약도 지어다가 응급처치를 했다.
그리고 삼일간 열심히 일해서 땀 내고 샤워하면서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직도 붉은 기가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번지지는 않는 것 같다.
환삼덩굴의 습격은 무서웠다.
일하거나 놀 의욕 조차도 잠시 사라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일하며 얻은 병 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소박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