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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꿀벌 이야기

쑥 튀김을 먹으며 듣는 즐거운 이야기_120419목

벌들이 잘 늘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벌통을 본다.
농업용 화물차도 등록을 받는다기에 이장님의 확인 도장을 받아
부리나케 농협 주유소로 가서 화물차를 등록하였으나,
가스차로 개조한 마음이에게 면세 가스를 넣어 줄 충전소가 없단다.




지난 2주 동안 정농께서 정성을 다해 거두어 들인 오리알을 씻어서
바구니에 담아 일죽 대송부락의 부화장으로 갔다.
벼농사용 오리를 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8년 전 오리농법을 처음 시작할 때, 1천원도 안되던 오리값이
지금은 4천원이 넘는다. 150마리를 사면 벌써 60만원이다.
수십만원을 들여 부화기를 샀으나 28일간을 관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오리알을 모아 오면 1알당 800원(아주머니는 천원)에 부화해 준다고 해서 
오랜 만에 10년 전에 살던 마을 부화장을 찾아갔다.

오리알과 계란이 가득 들어있는 부화장 안은 열기가 가득했고,
한 쪽 농장에서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가지고 간 오리알은 총 134알.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알을 넣는다고 하니
다음 주 화요일까지 60알 정도를 더 모아서 200알을 채우기로 했다.
부화율이 90%는 나와야 우리가 필요한 오리 새끼를 확보할 수 있다.

율면으로 해서 잠깐 드라이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벌통을 열었다.
세장벌로 겨울을 난 벌통은 왕성하게 번식을 하여 벌써 여섯장째
산란을 해 나가고 있었고, 두 장 벌통도 4장을 가득 채워 산란 중이다.
7장이 채워지고 나서 무리없이 계속 산란이 되면,
2층으로 벌통을 올릴 수 있고, 때 맞춰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어서
오래 가 준다면 꽤 많은 꿀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왠 가정법이 이리 많은지, 사람의 의지만으로 뭘 해낼 수가 없다.

일부 벌통에 곰팡이가 피어 있어서 깨끗이 긁어내고
팡이제로를 뿌려주었다. 정농께서 오래도록 시험해 보니,
곰팡이 약을 잘 쓰면 곰팡이로 인한 초크병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벌을 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리를 위해서 아무 두려움 없이 자기를 버리는 벌들.

그들은 모두 반대를 거부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조직에 대한, 종족의 유지에 대한, 유전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만이 있을 뿐이다.
철저하게 길들여진 완벽한 소모품이며 희생물이다.

정농과 함께 벌통을 깨끗이 청소해 주고 벌집도 더 넣어 주었는데,
왼손 엄지 손가락에 벌침을 놓고 죽어가는 벌이 미워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벌들이 열심히 일하는 마당 뒤편에는
시원치 않은 목련이 진달래를 배경으로
해마다 두 세 송이의 꽃을 피우며 살아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 삶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즐거운데,
굳이 벌침 한 방에 무일이 삐질리가 없다.
엄지 손가락 주위가 많이 부었고, 팔뚝까지 간지럽다.
정말 괜찮다.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으나 생각보다 부기는 빨리 빠지고 있어서
6시간이 지난 현재 큰 불편이 없는 상태다.
벌일 할 때마다 한 방씩 쏘이고 있는데, 곧 적응할 것 같은 예감이다.

벌통을 정리하고 마당의 풀을 정리하러 가자 혼자서 일하시던 심현께서
비닐봉지와 칼을 가져다 달라고 하시더니 열심히 쑥을 캐신다.

할 수 없이 마당의 풀은 정농과 무일이 맡았다.
해가 다 넘어가도록 풀을 뽑아냈다.
냉이와 꽃다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꽃이 아름다운 풀을 뽑아내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으나
마당을 이 풀들이 점령을 하면,
게으른 주인들이 사는 집안으로 보인다고 하신다.



허리 아프게 풀을 정리하고 씻고 나니
식탁에 쑥튀김이 올라와 있다.
정농께서는 막걸리와 소주를 내와서 기분좋게 한 잔 걸치시고,
예전 여수 돌산대교 공사 때 1등 기관사로서의 활약상을
신나게 들려 주신다.

쑥튀김을 너무 맛있게 먹다가 사진 찍는 것을 잊고 말았다.
대신에 참 꽃이 좋으나,
열매는 거의 열리지 않는 앵두나무를 올려본다.
왜 열매가 적은지 이 사진을 보고 아시는 분이 계실까?

4.19 혁명에 희생되신 민주주의 열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곳에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그분들은 자신들을 희생하셨다.
일벌들처럼 반대를 모르고 순응하고 사셨다면,
지금까지 평화롭고 풍요롭게 사셨을 텐데,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당신들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들이다.
이제 조만간 4월 19일은 가장 큰 국경일이 될 것이다.
한 십년 쯤 후에, 얼마 남지 않았다.







P 무일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