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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시

[ 백서_신경림 ] 햇살을 자갈밭에 채알치다_250413 el domingo, trece de abril_Воскресенье, тринадцать Апрель

인공지능 코파일럿과 대화를 하면서 어려운 첫구절을 넘길수 있었다.

 

아, 탈곡을 하는 것처럼, 빛이 자갈밭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허연 햇살이 자갈밭에 채알을 쳤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 서

                                                      신 경 림

 

 

빛바랜 늙은 솔에 허연 햇살

흰돌 자갈밭에 채알을 쳤네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발 일곱의 황룡 꿈틀대는

마흔날 또 아흐레 숨죽인 통곡

펄럭이는 쾌자자락 새파란 무당

분 먹인 얼굴에 서슬 세웠네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갈대밭에 얼굴 박고 잠든 아이야

여울물에 머리 풀고 우는 아이야

여귀붙은 남정네들 상여집에 피하고

아낙네들 메밀밭서 제 설움에 겨운데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대낮에도 강 건너엔 아우성 소리

칠월에 산그늘엔 (기쌀 칼날 ???) 

몸소지 울려라 부정소지 올려라

발 일곱의 황룡 아래 부정소지 올려라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빛 바랜 애버들에 허연 바람

햇살 따라 온 고을에 엉기는 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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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굿판이 어우러진다.

 

우리들이 사는 땅 건너편에서 황룡의 굿판이 대단하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으라한다.

황룡에게 어울리는 몸과 마음으로.

 

우리들의 굿판은 슬픈 우리를 위로한다.

 

버들 = 어린 버드나무는 푸르고 싱싱해야 하는데, 늙은 버드나무처럼 빛이 바랬다면,

주변 환경이 = 시대환경이 암울하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허연 바람과 어우러져 더욱 스산하다.

 

햇살 따라온 요기는,

그 어둠을 이겨낼 = 스산함을 날려버릴 맑은 영혼들이다.

 

49제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희생된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이다.

 

그런데, 왜 무당일까?

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닌 새파란 무당의 쾌자자락이 왜 우리를 위로하는 것일까?

모든 종교는 이미 커다란 권력 = 발 일곱의 황룡 앞에 고개를 숙였고,

아무런 권위없는 새파란 무당만이 아직 살아있다.

힘없는 우리에 대한 사랑이.

 

황룡의 발 셋은 왕을 뜻하고, 발 다섯은 천지자연을 뜻하며, 발 일곱은 더욱 힘이 큰 권력을 뜻한다고 봐야할까?

 

시의 제목이 왜 백서일까? 남녀노소에 관한 모든 이야기라는 뜻일까?

 

갈대밭에 잠든 아이와 여울물에 머리 푼 아이, 상여집에 피한 남정네들과 메밀밭에서 우는 아낙네들은 어떤 상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