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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두바퀴 이야기

억새의 다소곳한 아름다움을 보다_임진년_120107, 토

결심은 했지만 출발한다고 생각을 하니 걱정이 크다.

카톡으로 부모님들 여행에 관한 토론을 하느라

잠잘 시간도 놓쳐 버렸다.

이제는 11시만 넘어도 잡생각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를 않는다.

 

스마트폰을 켜고 자전거 주행기록 앱을 다운받았다.

BikeT라는 앱인데, 마음에 든다.

수첩에 주행 거리와 시간을 예상해서

간단한 메모를 해 본다.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릴 것같다.

오후 2시경에 분당에 도착하지 못하면

성남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소사역까지 점프하기로 한다.

그렇게 대비를 해 놓았더니 마음이 놓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자전거 타본지가 오래 되어 허벅지 근육이 별로 없을텐데

잠을 못 자 몸상태까지 좋지 않으면 어쩐다.

 

두 세 시간 간신히 눈을 부치고,

심현이 끓여주신 떡국을 부지런히 먹었다.

삼자대화를 하다가 시계를 보니

출발 예정시간인 9시가 넘고 있다.

 

말리시는 두 분을 안심시켜 드리고 자전거에 오른다.

가방에는 예비 튜브와 심현이 싸 주신

따뜻한 물과 커피가 있어서 든든하다.

 

출퇴근용으로 산 전기자전거 탱고로

두번째 자전거 여행에 나선다.

 

첫 자전거 여행은 중간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성남터미널에서 일죽까지 버스로 점핑을 하게 되어

계획대로 실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주행기록계를 켜고 방한장갑에 등산화를 신고 출발.

사계저수지를 지나 금왕읍 구계리에서 호산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를 타자마자 몸에서 신호가 온다.

 

보통 겨울에 자전거를 타면 코에서 신호가 오는데,

오늘은 한파주의보가 내려 9시 20분 현재 기온이 영하 6도.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차가운 공기에 그대로 노출된 앞이마가 

마치 햄머로 가볍게 내리치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한 손으로 이마를 쓸면서

체온이 추위를 이겨 주기를 바라며 달린다.

 

머리의 고통이 조금 가라 앉는다 싶더니

이번에는 오른손 새끼 손가락이 두터운 장갑에도 불구하고 시려온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통을 참아본다.

 

조금 더 달리니 이제는 발이 시려온다.

머리에 손가락에 발까지 시리지 않은 부분이 없으나

가장 통증이 심한 부분이 돌아가면서 신호를 보낸다.

해가 떠 있는 아침인데도 예상보다 추위는 강하다.

 

집에서 9시 15분에 출발하여

38번 국도변에 위치한 일죽휴게소에 도착했더니 9시 50분.

35분만에 14km를 달렸다.

좋은 속도다.

게다가 갓길이 없는 왕복 2차선 지방도로를 달렸는데,

훌륭한 운전자들이 자전거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내 옆을 멀리돌아 추월해 주니 안심하고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일죽휴게소에서 배터리 1차 충전을 하려고 했는데,

전기콘센트가 없다.

할 수 없이 얼어붙은 몸을 10분간 녹이고 다시 출발.

 

38번 도로를 타고 죽산삼거리에서 17번 도로를 갈아타고

백암으로 올라간다. 

추위가 만들어 놓은 서리 위에

아침 해가 내리 비추니 반짝거리는 모습이 제법 그럴듯한데

도저히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추위와 시간 때문이다.

장갑을 벗고 카메라를 꺼내는 것이 매우 귀찮고,

오후 2시까지 80km 정도되는 거리를 주파하려면

주행 중에는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10년 전에 약 9년간 근무했던 고등기술연구원을 멀찍이 바라보고,

백암읍내로 들어갔다. 

순대로 유명한 풍성식당이 백암읍내 입구로 자리를 옮겼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순대를 만드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작업을 하는지 식당은 깨끗하다. 

 

가좌리를 거쳐 2차 휴게와 충전 목표인 지산리조트 앞

양지휴게소 언덕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도 역시 충전할만한 콘센트가 없다.

머리 아픈 것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시린 손발을 녹일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양지 시내까지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질주한다.

 

양지 시내에서부터 쓸만한 카페가 보이면

휴식도 취하고 배터리 충전도 하자고 마음 먹고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이동을 하는데도

그 많은 찾집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에 띄지를 않는다.

 

42번 국도로 갈아타고 결국 용인시내까지 접어들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분가하여 살던 10평 빌라가 그대로 있고,

우주신을 낳았던 김정란 산부인과도 멀찍이 보인다.

 

10년 전보다 번화해지기는 했지만,

우리가 신혼생활을 했던 용인시 마평동 일대의 건물들은

그런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월급날에 가서 산낙지를 먹던 포장마차는 없었지만.

 

용인시내 천재아들이 애용하던 소아과를 눈으로 찾으며

천천히 달리는데 자전거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배터리가 나갔다.

전기자전거는 배터리가 나가는 순간 큰 짐이 된다.

기어를 2단으로 낮추고 음식점을 찾았다.

 

시내를 막 빠져 나오는 지점에 대관령 황태회관이 있었다.

술국으로 애용하던 황태해장국이 생각나서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2시간 4분에 걸쳐 총 50.3km를 달렸으니 평속 24km/h.

11시 30분에 용인시내에 도착했으니 예상보다 1시간 30분이 빠르다.

 

먼저 콘센트를 찾아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씻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려 40분을 통화하며 휴식을 취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인내를 갖고 기다려 준다.

통화를 끝내고 해장국을 시키며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뜨겁게 끓여내 주신 해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먹는 도중에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했는데,

한쪽에다 빼 놓고 끝까지 맛있게 먹었다.

 

계산을 끝내고 아주머니께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으니

조리할 때 주의해야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미안해 하신다.

 

90분 충전을 했는데 이제 몇km를 더 갈 수 있을까?

용인시내를 지나 정신병원으로 가는 고개길을 버리고

동백지구로 난 새길로 접어 들었다.

 

아파트 주변이라 그런지 자전거 도로도 잘 닦여 있고,

오르막 경사도 완만해서 좋았다.

이제는 더 이상 손발이 시렵지 않아서 더 좋았다.

 

동백지구 구성 경찰대학교 앞을 지나

23번 지방도로를 탄다.

풍덕천 앞 주유소에서 잠시 화장실에 들렸다가

풍덕천 사거리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분당으로 달린다.

 

미금역과 정자동을 지나면서

카페나 맥주집을 찾아 보았다.

분명히 상가지역인데도 쉽게 눈에 들어 오지를 않는다.

결국 이매동까지 내려갔는데도,

문을 연 통닭집은 배달 전용이라 앉아서 맥주마실 공간이 없다.

 

짐이 된 자전거를 끌고 20여분을 돌다

상가 지하의 중국집으로 무조건 들어갔다.

이곳도 배달 전용 중국집.

홀에 테이블이 두 개인데,

배달하시는 분들이 늦은 점심을 들고 계신다.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놓고 주행기록을 보니

23km를 1시간 5분만에 왔다. 현재 시간 2시 30분.

그리미와 통화를 했더니 대낮부터 술 마시지 말란다.

우아하게 까페에서 차를 마시고 싶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

 

자전거를 타면서 벌겇게 술이 오른 채로 자전거를 끄시는

나이 든 아저씨들을 보면 참 한심스럽게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런 대열에 올라타게 생겼다.

 

주인이 여자분이라 그런지 중국집 주방 치고는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3시간 넘게 자전거를 탔는데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춥다.

 

소주를 딱 석잔만 마시기로 하고,

남는 시간에 이 장소에서는 어울리지 않지만 책을 읽기로 했다.

명진스님이 쓴 스님의 사춘기.

 

 

 

탕수육에 소주잔을 앞에 놓고 구도에 관한 책을 읽으니

이것도 그런대로 즐겁다.

어차피 2시간은 충전을 해야 나머지 자전거도로 구간을

무사히 돌파할 수 있을 것이리라.

 

바쁜 시간이 지났는지 젊은 주방장이 옆에서 짜장면을 먹는다.

너무 바빠서 로또를 사지 못했단다.

한 번이라도 당첨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단다.

그래도 가슴 속에 몇 억이 담긴 것같은 기분으로 산다고 한다.

 

90분을 앉아 있었더니 꽤 정이 든다.

지금까지 총 73km 평균속도 22km/h. 

음주독서라는 새로운 휴식법을 발견했다.

 

 

전기자전거는 사십대 후반 이후의 사람들과

여성들을 위해 꼭 필요한 자전거다.

언덕길에서 연약한 근육을 잘 보조해 준다.

다만, 열나게 페달을 밟아 주는데도

배터리의 주행거리가 50km를 못 넘긴다.

전기자전거의 성공을 위한 핵심은,

배터리의 성능을 높여 주행거리를 늘리거나

30분내로 충전이 가능하게 하는 급속 충전기다.

 

이매2동을 출발하여 탄천 자전거 도로로 접어들었다.

한강자전거 도로까지 대략 10여 km로 예상한다.

서울공항 활주로를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길 가의 억새가 소박한 자태를 뽐내며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깨끗한 날씨가 유난히 더 돋보이게 한다.

사진을 찍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내쳐 달린다.

 

잠실 운전면허시험장에서 한강 자전거도로를 만난 기쁨도 잠시

영동대교를 지나자 마자 밧데리가 방전된다. 헉~.

이제부터 고난의 행군이다. 기어를 2단으로 내리고.

 

성수대교 동호대교 반포대교 동작대교.

다리가 많기도 하다. 이미 90km가 넘어서고 있으니

허벅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 온다.

날이 저무는데도 추위는 아침만큼 심하지 않고,

팔목과 허벅지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든다.

 

어스름 저녁 노을이 지려고 하는데,

저 멀리 바비인형이 짧은 가죽치마에 긴 부츠를 신고

사뿐사뿐 추위를 뚫고 다가온다.

추위 때문인지 약간 짜증이 섞인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지

이 엄혹한 자전거 도로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예쁜 모습이었다.

 

다시 기어를 1단으로 낮추고,

자전거가 최대한 부드럽게 움직이는 속도로 페달을 밟는다.

그러자 허벅지의 고통이 조금은 줄어든다.

 

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 63빌딩을 보면서

한강으로 갈까 샛강으로 갈까를 고민했다.

샛강으로 가다가 영등포로 넘어가 저녁을 먹으로 재충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샛강에서 빠져 나오는 자전거도로가 없어서

차도를 넘어 어렵게 해가 져 버린 영등포 시장으로 진입했다.

 

다행인 것은, 영등포시장 뒷골목 손칼국수집.

내 상태를 어찌 아시고

난로에 전기장판까지 깔아놓으셨다.

6시 40분. 분당에서 32km. 2시간 40분이 걸렸다.

 

 

 

허벅지 통증이 가라앉아야 움직일텐데

계속 주물러도 여전히 아프다.

쥐가 나기 직전의 상태인 것 같다.

 

화장실로 가서 준비해 간 맨소레담 로션을

허벅지, 무릎, 장딴지, 허리, 손목에 골고루 발랐다.

다시 전기장판 위에서 따끈한 손칼국수를 먹으며

계속 마사지를 했더니 30분이 지나서야 통증이 가라 앉는다.

 

친구가 페북에서 체를 닮아가려느냐고 한다.

무일은 혁명가 체가 필요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체가 볼리비아로 떠나기 전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아 갈 아름다운 쿠바를 만들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 떠 오른다.

그런 체를 닮고 싶다.

 

가게 안에서 주인 아주머니들과 소주를 드시던 60대의 초반의 남자들이

충전 중인 배터리가 뭐냐고 물으신다.

전기자전거용 배터리라고 했더니,

가격이 얼마냐고 묻는다.

160만원이라고 했더니 저렴하다고 한다.

당신들의 자전거는 3백만원 6백만원 짜리라고 한다.

헐, 우리의 경제력이 놀랍다.

 

7시 40분에 칼국수집을 출발한다.

빵빵하게 불이 들어 온 배터리를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시장을 나와 경인국도를 타고

신도림, 개봉, 오류를 거쳐 성공회대학교까지 쭈욱.

자동차와 달리는 것은 워낙 익숙하다 보니 편안하다. 

 

서울구치소를 지나는데,

정봉주 의원이 생각난다.

그가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 마포의 녹음실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예정보다 30분 늦은 8시 30분에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배터리 방전. 꼭 10km를 달렸다.

 

여행시간 11시간

자전거 순주행시간 6시간

총주행거리 125km

평균 속도 21km/h

배터리 충전회수 4회

 

그리미와 아이들이 냉채 족발에 소주를 준비해

무사귀환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란다.

 

 

 

세상이 평화롭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가족과 여행이 함께 하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

 

겨울 자전거 여행은 이렇다.

 

1) 낮은 온도 때문에 땀이 나지 않는다.

2) 발토시, 방한화, 방한 장갑, 겨울용 버프 등 방한 대책이 절실하다.

3) 사진 촬영 등 기록에 어려움이 크다.

4)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 먹는 것이 고통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성 분석.

음성에서 집까지 자동차를 이용하면 1만 5천원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자전거를 이용했더니 식비가 2만 6천원이 들어 경제성이 떨어진다.

 

참 재미있는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