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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두바퀴 이야기

농부의 머나 먼 출근길(3/5, 월)

대장정을 3개월 여 앞두고 체력 훈련도 하고 여행도 한다는 생각으로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달리 말하면, 가장 멀리 농사 지으러 떠나는 농부의 자전거 출근길이다.

지난 주말의 안면도 자전거 여행이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좌절되었기에

이번 여행은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전기자전거가 아닌 입문용 산악자전거인 엘파마 T 550을 타고 떠난다.

2007년 경에 구매 출퇴근으로 사용하여 자전거 값은 뽑았고,

다음 목표였던 드럼세탁기값 벌기에는 실패하고 창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자전거 상태는 좋지 않다.

체인이나 허브가 모두 기름과 먼지에 쩔어 있는데 속력이 나와줄까 걱정이다.

전기자전거 탱고는 한국형 지형에 딱 어울려 정말 마음에 드는 자전거인데,

배터리 하나로는 장거리 여행이 힘이 들어 추가로 구매하려고 했더니

왠만한 자전거 한 대 값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다.



그리미는 지난 주말부터 오늘의 날씨 예보를 보며 하루 종일 비가 오니 제발 차를 이용해서 가라고 한다.

그 말을 들어야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는데,

나이를 가리지 않는 이 욕심은 그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이겨 버린다.

마음 한편으로는 체력 훈련을 빨리하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초조함도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깜깜한 것이 정말로 비가 오는 것도 같았다.

커피를 끓여 마시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다 창밖을 내다보니

놀이터의 모래가 하얗게 말라 있고 보도블럭도 비가 내린 흔적이 없다.

반대쪽 창밖을 확인해 보았는데, 그쪽은 아스팔트가 젖어 있어 비가 내린 것처럼 축축해 보인다.

어쨋든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리미는 구름이 두터워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니 자전거는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마지막으로 제안을 한다. 비가 내리면 분당에서 차를 타겠다고 약속을 해서 간신히 동의를 얻었다.

동의라기 보다는 포기에 가깝다. 


그리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겆이에 방정리까지 마치고 식구들 모두를 마중했다. 이제 음성에서 4일을 농사 준비하며 보내야 하니 얼굴을 마주대하지 못할 식구들이다.

떠나기 전에 수첩에 가족들 모두를 사랑하며 어려운 새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잘 이겨나가자는 글을 남기고

약간 허전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지난 겨울의 음성-부천 125km 전기자전거 여행 후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니까 약 70여일 만이다.

가방 안에는 그리미가 만들어 준 밑반찬 세 통과 책 한 권, 물 한 병과 과자 두 개,

간단한 정비도구를 챙겨넣어 제법 어깨가 묵직하다.

겨울용 장갑에 두툼한 방풍 자케, 여름용과 가을용을 두 벌 겹처서 하의를 입었더니 든든하다.

30kg이 넘는 탱고만 들다 13kg 엘파마를 드니 종이장을 드는 것 같다. 


9시 40분. 아파트를 빠져 나가자 마자 나타나는 가벼운 오르막을

기어를 낮춰 아주 천천히 오르는데 역시 힘이 든다.

체인이며 구동부에 충분한 기름칠이 되어 있지 않으니

내리막길을 달리는데도 속도가 별로 나지 않을 정도로 뻑뻑하다.

나중에 최고 속도 찍힌 것을 바이크 T 앱으로 확인해 보았더니 37km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비를 해야 하는데 날도 춥고 자신도 없어서 차일 피일 미루다 보니 이 지경이 되었나 보다.


역곡역을 지나 성공회대학교, 오류역, 개봉역을 지나 동양미래대학 앞 신호등에서

다리 쉼을 하는데 영 속도감이 붙지를 않는다.

고척교를 건너 안양천 자전거 도로를 편안하게 가려고 했는데 마파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무일을 추월하여 지나는 자전거들이 꽤 많다.

느끼기에 시속 15km/h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같다. 어쩐다. 

이런 속도로 가다가는 분당가서 퍼져 버릴 것 같은데.

평지에서는 평속 20km/h 이상은 나와야 하는데 마파람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느리다.

몸의 근육들이 자전거를 탈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안양천-한강 합수부에서 쉬려고 했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좀 더 가면서 바람이 잔잔한 곳에서 쉬자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는데,

이백 미터를 못가서 자전거에서 내렸다. 마파람도 심하고 다리와 엉덩이가 아파서 쉬어야겠다.

아무리 경칩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겨울인 모양이다.

특히, 비가 그치고 나면 꽃샘추위가 온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옷을 많이 껴입어서인지 살짝 기분좋게 땀이 흐른다.

이백미터를 걷다가 다시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전진하려고 했으나

마음 뿐이고 2-5 또는 2-4로 천천히 바람을 맞으며 성산대교를 지나 양화대교로 향한다.



걱정하고 있을 그리미를 위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자를 보낸다. 


 "지금 현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저곳을 향한 열정들이 너무 강해.

  추울까 옷을 껴 입었더니 땀이 줄줄.

  사랑해. 잘 가고 있으니 걱정마"


문자는 그렇게 보냈지만 벌써 10시 40분이니까 1시간 동안에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했다.

자출할 때는 동작대교까지 1시간 10분이면 가는데, 20분 이상 뒤처진 기록이다.

게다가 엉덩이와 허벅지가 벌써 소식이 온다.

다행이도 비는 내리지 않고 시야가 좋아 상쾌한 느낌까지 난다.

손으로 여기 저기 마사지를 해 주면서 온몸의 근육들이 무사히 버텨주기를 빌어 본다.


반포대교 앞 새빛 둥둥섬에 도착하니 11시 25분.

원래 계획은 12시 반까지 분당에 도착해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적어도 한 시간은 늦어질 것 같다.

겨울동안 많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백팔배도 하고 탁구도 치면서 꾸준하게 운동을 했는데,

자전거용 근육과는 상관이 없는 운동이었던 모양이다. 자전거 타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


지난 번에 명진스님은 새빛 둥둥섬을 교도소로 만들어 그 안에 정봉주 17대 의원을 수감시키고

사람들이 면회를 올 때마다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고 농을 하셨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스님이다. 그러나 스님의 글에는 쉬우면서도 분명한 깊이와 진실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장마 오기 전에 이 인공섬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사람들이 몇 사람 오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분명 대책은 세우고 있는 모양인데,

효용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잘못 기획된 건물이지만 무일의 눈에는 예쁜 건물이 쓰레기가 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 섬의 일부는 꼭 도서관으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입장료를 일정기간 받는 것 보다는 

서울시민들에게 기부금을 받아서 도서관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또 다른 일부는 갤러리가 되었든 예식장이 되었든 수익사업 공간으로도 활용하다가

공사비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전체를 서울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 나간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이 섬을 기획한 사람들도 분명 전문가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흉물들을 볼 때마다 평화의 댐에 대한 광풍이 기억난다.

마치 서울시내가 북한의 수공에 의해 다 떠내려 갈 것처럼 떠들어 대던 그 교수들과 전문가들.

그 사람들 이름을 여기에 주욱 적어 놓아야 하는데, 검색하기가 귀찮아서 참는다.

전문가들이 그들의 지식을 토대로 하여 과학적인 검토 의견을 내어 놓아야

이런 큰 문제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정확하게 분석해도 예기치 않은 문제와 오류들이 나오는 세상에 

배운 학자들이 선입견과 정치가들의 나팔수로 놀아나는 것은 큰 문제이다.

새빛 둥둥섬 검토한 사람들은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다녀야 할텐데,

교수네 박사네 하면서 아마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사람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었다고 사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반포대교를 지나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이나 도보 운동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 들었다.

이런 날씨에도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 시민들도 한결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같아 다행스럽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분들이 멋진 복장으로 단체 자전거 여행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앞뒤에는 남자분들이 가운데에 있는 여성들을 호위하며 가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그런 즐거운 모습들을 보면서도 힘은 나지 않는다.

다만,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꾸준히 최저 수준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걷는 것 보다 약간 빠른 속도.


어제도 비가 와서 인지 남산 타워와 저 뒤로 북한산 오봉과 인수봉, 백운대가 나란히 보인다.

짐을 줄이려고 스마트폰과 간단한 카메라를 넣어 와서 이 근사한 장면이 잘 잡히지는 않겠지만,

한강에서 북한산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날 중의 하나가 오늘인 모양이다.

비는 내리지 않으며 해가 비치지 않으니 자전거 타기는 참 좋고, 땀도 적당히 흘러서 운동하는 기분이 난다.


12시 7분에 한강과 탄천의 합류 지점에 도착했다. 어느덧 3시간 반이 흘렀다.

이곳에서 분당까지도 15km 이상 남았으니 조금 쉬다 출발하면 2시는 되어야 도착할 모양이다.

슬슬 허기가 지는 것 같아 처음으로 준비해 간 에이스 크래커로 요기를 했다.

아침 식사를 반공기 정도 먹고 이 정도까지 왔으면 배가 꽤 고파야 정상인데,

운동 부하를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 열량 소모가 적고 그래서 배고픈 줄을 모른다.

역시 땀이 비오듯 흘러야 배도 고프고 근육도 뻐근할텐데.

배가 고프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겨울 동안 두툼해진 뱃살이 여전히 출렁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살을 운동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몇 차례 더 열심히 타야 한다. 아이고 무릎이야. 



바이크T가 GPS로 찍은 35km 되는 탄천-양재천 분기점이다. 12시 35분.

탄천은 숯내라고 해서 예전에 강원도의 나무를 한강을 통해 운반해 뚝섬에 내려두면

이 지역으로 가져다 숯을 만들던 곳이라 숯처럼 검은 물이 흘러 숯내라 했다고 한다.

앞으로 숯내라 해야겠다. 훨씬 정감있고 역사도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이다.

숯내에서는 정말 허기가 지기 시작해서 남은 에이스 크래커를 옥수수 끓인 물과 함께 먹어 버렸다.

이제 점심 식사할 곳까지는 아무 것도 없이 가야 한다. 무슨 일이야 있겠어!


지난 겨울 거꾸로 올 때 갈대가 근사하게 피어있던 숯내 자전거 도로를 따라 슬슬 올라간다.

몇 대의 자전거가 무일을 지나쳐 가는데 여자분도 있다.

경쟁심이 특별히 강하지는 않은데 추월당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이번 여행은 오랜만이고 완주가 목적이니 너무 서글퍼 하지 말자.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몇명씩 산책을 한다.

직장 생활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점심을 먹고 이렇게 산책을 하는 것이다.

날이 좋지 않은데도 씩씩하게 걷고 있는 그들을 보니 남산과 우면산을 오르던 생각이 떠오른다.

자전거가 쌩하고 지나가 줘야 하는데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서울비행장 활주로 옆을 지나는데 시커먼 시멘트 벽이 영 흉물스럽다.

헬기와 소형비행기가 오르내리는 소음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저 흉물스런 벽은 숯내를 이렇게 잘 정비해 둔 마당에 칠이라도 잘 해두면 좋을텐데.

아니다. 무슨 군시설 흉내낸다고 개구리 무늬 칠해 놓으면 그것도 꼴물견이다.

미안하다 개구리야. 박원순 시장이라면 멋있는 구상을 내놓을 수도 있을텐데.

그나저나 이곳을 지나는데 물가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하수관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냄새가 나지 않을텐데 이상하다???


1시 50분에 분당의 중간쯤에 도착했다.

너무 힘이 들어 이제는 점심을 먹으며 쉬어야겠다고 두리번거리는데 우연하게도

지난 번에 쉬었던 그 건물이다. 또 그 중국집에 들어갈까 생각했는데,

배터리 충전할 일도 없고 밥을 먹고 싶어서 김밥천국으로 들어갔다.

500미터 아래 상가에는 감자탕집이 있던데 이 상가는 그런 집도 없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김밥천국에서 라면에 공기밥을 먹곤 했었는데

오늘은 술을 먹은 것이 아니라 육개장을 먹어 보기로 했다.

허기는 지는데 배는 별로 고프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지만

탄수화물이 보충되어야 힘을 쓸 수 있을 것같아 천천히 허벅지를 주무르며 먹었다.



두 시가 넘자 더 이상 주문전화가 없어서인지 일하시던 분들이 점심을 먹으며,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의 국회청문회를 시청하고 있었다. 별로 기대도 되지 않는다.

마침 최종원 의원이 위원장 후보가 수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를 한 경력들을 문제 삼으며

열심히 질의를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배우가 뭘 안다고 정치를 하느냐고

좌중에게 문제제기를 하며 나를 돌아본다.

직업이 무엇이었든지 국회의원은 할 수 있으며,

의원으로서 성실하고 의미있게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하려고 했는데,

기운이 없어서인지 그저 미소만 지었다. 이런,,, 

사실 최종원 의원이 그동안 의원활동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원장 후보에게 경영자로서 노동자를 정리해고 할 상황까지 간 것을

따져 묻는 것은 잘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을 본다면 그도 충분히 자격이 있는 것이다.

농민도 노동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세상이어야 올바른 세상이다.


2시 30분에 식당을 나와 다시 숯내 자전거도로를 타고 분당을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한방울 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 이런,,,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옷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충분히 갈 수 있다를 외치며 열심히 나아가는데,

정말 꾸준하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많이 쏟아지는 비는 피하면 될텐데 조금씩 꾸준히 오니까 그냥 밀고 나가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노면도 말라 있고 옷도 가볍게 물방울이 묻은 정도다. 갈 수 있다.



아마도 3시가 좀 지나면서부터 노면과 옷이 젖을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미 성남시외버스터미널을 한참 지나온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용인터미널까지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까지 비가 조금만 약해져 준다면 좋을 것 같았다.

구성 경찰대학교로 들어서기 위해 이마트 옆으로 난 샛길로 자전거 도로를 빠져 나왔다.

길가의 시민들 모두 우산을 쓸 정도로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어정가구단지까지 그 비를 다 맞으며 전진하는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아 춥지 않지만 해가 지고 나면 추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4시 15분에 어정가구단지를 지나 신축 빌딩에 자전거를 세우고 빗물을 닦아내었다.

윗도리는 방수처리가 된 옷이라 빗물을 닦아내니 괜찮은데,

하의는 일반 옷이라 닦아내기는 했지만 습기가 남아있다.

마침 그리미에게 전화가 와서 용인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가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참 다행스런 것이 동백지구에서부터 용인까지 이어지는 경전철이

상당 구간을 우산 구실을 해 줘서 비를 거의 맞지 않고 용인입구까지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편안하게 가다가 다시 비를 맞으니 의욕이 급격히 꺾여 버린다.


터미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면서 상황을 보니 도저히 버스를 탈 수 있는 자전거와 몸상태가 아니다.

게다가 하교에 퇴근시간까지 겹쳐 있으니 버스 안은 붐비기 시작하고 있었다.

날이 지기 전에 더 치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안되면 여관에서 자고 가지 뭐.

터미널 매점에서 따뜻한 캔커피로 언 몸을 녹이고,

수건을 짜서 옷의 물기를 다 닦아낸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섰다.

아직 해가 있어서 용인시내를 빠져나가 열심히 그렇지만 느리게 달리고 있는데

도로 위에 제법 물이 흐르고 어떤 곳은 고여있기도 했다.

어느 순간 화물차 한 대가 물을 확 끼얹고 지나쳐 간다.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앞이 주유소라 일단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닦고 수건을 빨아 옷의 물기를 제거했다.

다행히 따뜻한 물이 나와서 손과 얼굴을 따뜻하게 씻어줄 수 있어 좋았다.

정말 여관에 가는 것이 좋을까?



그순간 정농께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지까지 앞으로 10분 백암까지 잘하면 40분이면 도착한다.

정농이 화물차를 몰고 나오면 백암에서 만나서 음성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러자. 전화를 드렸더니 크게 걱정을 하시며 자세하게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신다.

기억을 떠올려 두번째 기와집이 있는 백암 입구 사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제 마지막 구간이다. 조금 있으면 해도 질 것이다. 조심 조심 4차선 갓길을 따라 자전거를 이동시켰다.

좋은 운전자들이 내 자전거를 발견하고 비상등을 켜며 안전하게 우회해 주는 것이

큰 위안과 격려가 되었다.


양지에서 백암으로 가는 고갯길. 오늘의 마지막 고비다. 게다가 해가 져 버렸다.

갑자기 비에 젖은 장갑이 손을 보온해 주지 못하고 등산화도 많이 젖어서 발도 차가운 느낌이다.

상체는 따뜻하지만 허벅지는 찬비에 계속 노출되어 역시 차가운 느낌이다.

최단 기어로 고개를 절반 이상 오르다가 무리가 될까 싶어 내려서 서서히 걸어 올라갔다.

혹시 허벅지에 쥐라도 나게 되면 목표지점을 코 앞에 두고 난리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사히 언덕 길을 올라 약간의 평지와 신나는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이제 15분 정도면 백암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차량들이 제법 속도를 내는 곳이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차량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특히 화물차들도 도로 상태가 워낙 좋다보니 신나게 질주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구도로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도 구도로에는 차량이 거의 없고 크게 패인 곳 없이 유지되어 있었다.

도로가 안전해지자 이번에는 몸에서 신호를 보내 온다.

허벅지는 꾸준하게 묵직함을 전해주고 있고 손목과 팔꿈치도 통증이 온다.

그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갑을 낀 손이 자꾸 얼어가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장갑을 벗어 호주머니에 넣고 예비로 준비해 온 마른 버프를 한 손에 감고

맨손으로 자전거를 탔다. 다행이 비가 많이 줄어 들어서 한 손은 보온이 되었다.

얼마쯤 가다가 다른 손으로 버프로 옮겨 감고 다시 자전거를 탔다.

예비로 장갑을 하나 더 가져 올려다가 그냥 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길은 내 몸을 돌아 뒤로 뒤로 물러나서 무사히 백암 사거리에 도착하였다. 


화물칸에다 자전거를 던져 놓고 정농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았다.

완전히 젖은 하의 한 벌과 겉옷을 벗어 버리고 손과 허벅지를 비벼가며

차의 따뜻한 바람에 몸을 녹였더니 살 것 같았다.

비록 100km 밖에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비가 내린 악천후에도 굴하지 않고

안전한 길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는 것에 크게 만족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한 짐이나 되는 젖은 옷과 배낭을 벗어 던졌다.

나중에 보니 가방은 방수백이 있었는데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비를 맞혀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큰 비가 아니라서 배낭 안은 큰 피해가 없었다.

그리미가 만들어 준 반찬이나 충전기 등의 전기 장치는 원래 비닐백에 넣어 왔으니 말할 것도 없고,

쉬는 곳에서 읽으려고 제일 바깥에 둔 책이 아주 살짝 젖은 정도였으니까.

샤워를 마치고 뜨거운 커피를 먼저 한 잔 했다.

그리고 정농이 준비해 둔 감자국에 소주 한 잔을 곁들였더니 비로소 피로가 몰려 온다.

농사지으려 오는 출근길이 참 멀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