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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메밀꽃 필무렵_이효석_07년 11월_문학과지성사 ] 간결하고 가벼운 글에 따뜻한 마음을 담았다_240630 el domingo, treinta de junio_Воскресенье, тридцать Июнь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들게하는 소설이다. 왜 좋은 느낌이 들까?

 

육십이 되어가는 사람에게도 1936년에 쓰인 그의 말들은 매우 새롭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들이 더 많고, 한참을 더듬어야 비로소 뜻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는 말들도 많다. 그런데도 짧은 소설이 전하려고 하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가 그대로 전달이 된다.

 

왜 그럴까?

 

1) 얼금뱅이 장돌뱅이로 평생을 가난하고 고요하게 살던 한 사나이의 짧은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짧다는 것은 정말 짧아서,

사랑조차 이루어질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나이에게 남은 정이 있음을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밝힌듯하다.

 

이루지못한 사랑만큼이나

짧은 사랑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고,

짧은 사랑이 혹시 다시 이어질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슴을 부풀게 한다.

 

사나이 허생원의 마음은 어디에도 드러나있지 않은채,

분명하다.

 

이 희미하게 분명한 사실이,

슬며시 미소짓게 한다.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

미소가 지어진다면,

그것은 우스개humor다.

 

게다가 잘못하면 헛물켜다 끝날수 있다.

그런 위험이 미쳐 드러나기 전에 이야기는 슬며시 흐뭇하게 끝나버린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중략)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216쪽)

 

* 해깝다 : 가볍다의 사투리

* 청청하다 : 맑고 푸르다

* 우스개 = 우스개소리 = humor

 

2) 꾸미는 말들이 소박하게 아름답다. 사치스럽지 않으며, 지나치지도 않다.

 

우리나라 말은,

꾸미는 말이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말은 소통을 위한 것이다.

이 소통이 진하게 일어나게 하려면

= 이야기하려는 것이 잘 전달되려면

= 소통을 통해 행동이 일어나게 하려면,

말에 감정을 실어야 한다.

 

말에 실린 감정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긴장상태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말이 실려오면,

듣는 사람도 금방

평화롭고 아름다운 분위기에 빠져든다.

 

이 소설의 문장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워

읽는 이로 하여금 글에서 묘사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묘사는 지나치거나 사치스럽지 않아서

순하게 받아들여진다.

 

요란하지도 않아서

래 두고 가까이 할수 있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었다.

 

(중략)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세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모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지경이다." (211쪽)

 

* 이지러지다 : 한쪽이 차지않거나 찌그러지다

* 가제 : '조금'이라는 뜻으로 추정

* 흐붓하다 : 히붓하다의 사투리. 히붓하다 = 희붐하다 = 희미하다.

 

3) 장면의 묘사가 그린듯 전달되어, 친근하고 정겹다.

 

영장류로 진화하기 이전에는,

중생대의 공룡들로부터 죽음을 면하기 위해,

주로 어두운 밤에 먹이활동을 한 머나먼 조상들 덕분에,

영장류는 청각이 예민하게 발달했다.

 

룡시대 이후에 눈 중심으로 진화한 영장류의 감각은,

모든 자극을 그림image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시각과 청각은 물론 미각과 피부감각 또한 그림으로 떠올린다.

동영상은 그림의 집합이다.

 

말도 그림으로 연상하여 의미를 파악하고 소통한다.

글도 그림이고, 의미도 그림이다.

 

우리의 그런 속성때문에

선명한 시청각의 감각이 잘 드러난 글은 친근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친근하고 정겹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찟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205쪽)

 

무슨 이유로 설명을 하더라도 무리는 없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간결하고 가벼운 글에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따뜻한 이야기가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6. 29를 기념하여 이효석 문학관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