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여수로 가서 오후의 산책을 즐기려던 계획은, 아픈 발바닥과 쏟아지는 비로 취소되었다.
대신에 요리를 해서 먹기로 했다. 새우 올리브 조림. 숙소에서 5km 거리에 있는 연천농협화양지점에 가서 10도 짜리 달콤한 술과 맥주 한병, 새우와 올리브유, 마늘을 샀다. 오랜만에 맥콜도 한병 샀다. 마셔보니 늘 마시던 그맛이다.
국밥 두그릇을 포장해 왔다. 한그릇은 저녁으로 나머지는 아침으로.
숙소 앞으로 여수 앞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김아중과 블론디의 마리아를 듣는다.
https://youtu.be/wXK3znYbXgU?si=wCuySRSNxgnWmVSm
오전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일찍 일어나서 누룽지탕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삼천포다리 아래로 가서 차를 세우고 비옷을 입었다. 8개월 동안 거의 잠자고 있던 비옷을 걸치고 남파랑길 39길을 걷는다. course란 말 대신에 길을 쓴다.
죽방림이 펼쳐진 바다를 따라 걷는다. 가는비가 내린다. 총 10km의 구간이 이런 평지로만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적당히 걷자. 바닷길이 끝나자 꽃내를 따라간다. 따뜻한 겨울이라도 꽃내는 나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지만 걸을만하다. 독일마을로 가는 안내표지판이 계속 따라온다. 남해는 독일마을인가?
여수로 넘어오는 길에 노량대교를 건넜다. 황현필은 부산포에서 당항포 - 한산 - 노량 - 울둘목까지 이어지는 이순신 승리의 바다를 "이순신해"로 명명하자고 제안한다. 어제도 이름이 가진 느낌이 있었다. 이순신해든 남해든 이 바다와는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바는 분명 다르다. 이순신해로 부르자.
https://youtu.be/5v-80-YfNms?si=X9fBco5QAtFGeuCp
꽃내를 따라 걷는길이 끝나고 여수로 가고 싶은 마음에 3km를 남기고 도로로 빠져 나왔다. 택시를 불렀다.
우리식당에 가서 멸치회무침(3만원)으로 점심을 먹었다. 푸짐하게 나왔다. 식당 주인장 왈,
"돈이 3만원인데, 푸짐해야지요"
숭늉을 국처럼 마시며 먹는 멸치회무침은, 포항에 살던 친구가 95년 쯤에 맛보여 준 꽁치 과메기의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비릿하면서 고소한 생선은 처음이다. 1/3쯤은 포장해 가고 싶었는데, 물이 나와서 맛이 없어진단다. 숭늉 한그릇을 더 떠서, 배를 두들기며 마저 먹었다.
7km정도 걸어서는 점심 먹은 것을 소화시킬 수 없는 모양이다. 여수에 접어들자 비는 더 쏟아진다. 장도의 미술관에 가려고 했는데, 이번달에는 전시가 없었다. 숙소는 여수바다를 내려다보는 낭떠러지에 세워져 있다.
밤이 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