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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 남파랑길 40길 ] 여수, 그리고 남해_240116~17 el martes, dieciséis de enero_Вторник, шестнадцать январь

열하루에 걸친 어머니 병간호를 무사히 마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여수다. 몸이 무거운데, 몸이 가벼워지길 바라는 여행이다. 남해의 숙소까지 6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침에 숙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예약한 숙소가 보일러 고장으로 인근의 다른 숙소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그러자고 했다. 100달러에 이틀을 자기로 한 숙소여서 제발 괜찮았으면 좋겠다. 바뀐 숙소는 마음에 들었다. 작지만 알찬.

 

숙소 앞이 어부방조림이다.
먼 옛날에 마을을 지키고
물고기를 모이게 한 지혜가 담긴 작은 숲길이다.
한시간 남짓 산책을 하고,
남해에 사는 선배와 식사를 하기 위해 읍으로 이동했다.
꽃내중학교와 꽃내를 지난다.
꽃내.
꽃이 흐르는 개울.
이름만으로도 가슴뛰게 기분이 좋다.
사람은 역시 상상의 동물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꽃내라는 추상만으로도
이렇게 큰 기쁨을 느낄수 있다.
이곳의 이름을 화천으로 바꿔놓은 일본의 무지가 끔찍하다.
진주에서 후배도 한명 합류해서
네명이서 4시간이 넘도록 신나게 떠들다 왔다.
사람이 없어서 마음놓고 떠들었다.
멀리서 온 친구에게 나는 이처럼 기분좋게 대접한 적이 있던가?

 

오늘(17일) 아침 11시가 되어 간신히 눈을 떴다. 새벽에 잠이 깨어 설쳤는데도 몸상태는 제법 좋았다. 귀한 대접을 받아서 그런 모양이다. 빵과 차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독일마을 전망대 앞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다. 주차를 하고 길을 나선다.

 

20여분 내리막 도로를 걸었지만 차량이 적고 공기가 좋아서 걸을만했다.

 

그리고는 작은 시골마을로 들어선다. 금산의 임도로 들어가는 꽃내를 따라 걷는다. 꽃내와 마을의 경작지 사이를 산책로로 정성을 들여 가꿔놓았다. 너무 따뜻해서 가벼운 겉옷도 더워서 땀이 나려고 한다.

 

산내저수지 앞에 바람흔적미술관 카페에서 30분을 쉬며 그림을 감상했다. 특히 조윤경 작가의 나무를 태우고 칠보장식을 입힌 작품들이 좋았다. 재료의 조합이 독특했고, 예술과 기능의 경계선에서 매우 어려운 선을 넘은 느낌이다.

 

미술관장이 커피내리는 조각가 이승모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도 좋았다. 15년 전에 이 아름다운 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술의 불모지에 큰 기쁨을 주는 곳이다. 미술관은 그런 감동을 주는 곳이다.

 

조각이란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예술이라고 한다. 평범한 공간이 조각으로 채워지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한다. 본래 공간이란 없는 것이고, 조각이라는 예술이 존재함으로써 공간을 만들어낸다.

 

직접 내려주시는 커피 한잔과 유자차 한잔을 마시며 잘 쉬었다.

 

그 뒤로는 금산자락을 둘러싼 임도 8km를 걷는 것이다. 12시에 걷기 시작했고, 아직도 갈길이 먼데, 숲으로 둘러쌓인 길이 마음 편안하다. 걷는 사람들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이 거대한 길이 우리의 소유다. 소유없이 소유할 드넓은 숲.

 

어쩌다 작은 씨앗이 자신을 받아줄 거대한 땅위에 내려앉는다.

나무는 시원하게 자란다. 만족스럽게.

세월이 흘러 나무는 자신의 존재근거를 무너뜨린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뿌리로 근거를 붙잡고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4시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3km가 남았고,

시커먼 하늘은 비를 뿌릴 것이라고 협박한다.

전망대를 지나 발걸음을 급하게 옮긴다.

가지고 온 비상식량도 거의 다 먹었다.

 

천하마을에 도착했으나, 버스도 오지 않고, 택시도 불러지지 않는다.

걷자.

 

다시 1km를 더 걸어 17km 지점에서 택시 부르기에 성공했다.

독일마을 주차장까지 17,000원. 멀미를 부르는 길이다.

 

배가 고파서 독일마을빵집에 들러 빵 두개를 샀다. 치아바타를 절반 뜯어먹었다.

촌놈밥상에 촌놈정식(15,000원)을 시켜 먹었다. 생선구이를 해야 하는데, 생선이 없어서, 멸치회무침을 대신 내왔단다. 맛이 좋았다. 비린맛을 들깨잎이 잘 잡아주고 있다.

 

밤이 그득하다.

 

 

 

물건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