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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햄닛_230904 lunes cuatro de septiembre_ Понедельник четыре de Сентябрь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는 49제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몸이 피곤해서 방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며 책과 씨름하느라 행사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교사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80억이라고 하는 귀중한 사람들은 어떻게 존중받으며 살아야 할까? 서로를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대하면 된다. 잘 아는 사람일수록, 가족이나 친구일수록, 정말로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존중하면 된다.

 

메기 오패럴의 소설 햄닛을,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서 150쪽을 읽었는데, 아무런 지식도 얻지 못했다. 잔잔하고 자세한 이야기가 물처럼 흐르는데, 물고기의 움직임도 햇볕의 반짝임도 느끼지 못했다.

 

침묵과 차분함의 힘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부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침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약속도 아니다. 오직 생존에 유리한 태도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기 때문에 침묵과 차분함이 부럽다. 침묵에서 힘이나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사람은 불안하다. 침묵하는 사람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두려운가? 

 

"뒷얘기를 하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중략) 눈색갈이 선명하고  홍채가 전부 보일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중략) 빤히 쳐다보면 상대는 보통 시선을 떨구고 일라이자의 대담한 눈빛, 말없는 준엄함에 야단이라도 맞은 듯 자리를 뜨기 마련이다. 일라이자는 침묵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빠가 도무지 배우지 못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107쪽)

 

200쪽이 넘었는데도 어떤 정보나 감동도 받지 못했다. 여자들의 삶에 대해 무지한데다가 공감 능력마져 떨어지니 그럴 것이다. 일단 마저 읽어보자. 1부가 다 끝나버렸는데도, 360쪽을 읽었는데도, 인용할 문구하나 제대로 찾지 못했다.

 

400쪽이 넘었다. 한 여인이 사랑을 얻고, 아이들을 얻고, 삶의 활기를 잃은 남편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고, 그리고 아이 하나를 잃는다. 그 일은 그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이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을 단문으로 지금까지 끌고 온다. 작가도 고통을 참으며, 계속해서 글을 써오고 수정해 왔을 것이다. 그 정신력은 강인하고 대단하다. 내 정신력이 오히려 약하기 때문에 죽음을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꼭 100쪽이 남았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예기치 못한 죽음을 지켜야 했던 기억 떄문에 생긴 상처인지는 몰라도, 홀로 죽음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다. 죽은 사람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음의 고통이 크다. 죽음이 닥칠 때 두렵고 그리워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받을 고통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삶을 통해 - 정원 가꾸기와 글쓰기를 통해 이겨내는 모습은 새겨둘만하다. 자연과 하나되는 즐거움을 알 수 있는 정원 가꾸기는, 고통이 클 때나 나이들어 슬프고 외로울 때, 마지막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다.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그 부모와 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잊으면서 기억하고, 기억하면서 잊는, 험한 과정을 무사히 겪어내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