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고추밭 줄을 매고 약을 치다_230719 diecinueve de julio el miércoles_ девятнадцать Июль Среда

아무리 몸수여도 농사를 계속 지으려면 기록을 해 두어야 한다. 안그러면 참고할 것이 없어서 일의 갈피를 잡기 어렵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리미와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고, 몸이 힘들어서 기록을 하지 못했다. 몰아서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기록이 중요하다. el registro es importante. регистрация важна. 레기스트라찌야 바쥐나.

 

6시가 못되어 찌푸둥하게 일어났다. 어제 밤에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선풍기만 돌리고 그냥 잤더니, 상쾌하게 잠을 자지 못했다. 커피 한 잔과 사과 한 개를 잘라서 어머니와 나눠먹고 작업복으로 갈아 입었다. 고양이들에게 밥도 주고, 수국이 피고 있는 사진도 찍었다. 내친 김에 연꽃 사진도 찍었다. 시원한 아침의 호사다.

 

꽃밭에다 버려둔 마늘 줄기를 걷어내고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나뭇가지들을 수레에 실었다. 두 수레를 정리하고 나서야 밭으로 움직였다. 참깨가 많이 넘어져 있다. 줄을 매서 세우면 좋다고 하는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들깨가 괜찮은지는 살펴봐야겠다.

 

일단 고추밭을 정리하자. 풀을 베어서 입구를 확보해야 한다. 낫을 들고 왔다갔다 하며 풀을 베어냈다. 보기보다는 일이 쉽게 끝났다. 날이 흐려서 덜 더운 덕분이기도 하다. 고추 가지가 많이 부러져 있고, 병든 모습도 보인다. 일단 줄을 매는 것이 좋겠다. 해가 나고 열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열시 반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5시에 저녁을 챙겨 먹고 밭으로 나갔다. 약을 먼저 치자. 살충제, 살균제, 영양제를 섞어서 한 통을 뿌렸다. 이렇게 적었나? 너무 대충 뿌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내일 저녁부터는 고추를 따기로 했으니 약을 심하게 칠 수도 없다. 일이 빨리 끝나서 좋다.

 


내친 김에 줄도 매기로 했다. 일이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그래도 해가 뉘엿뉘엿 진다. 앞집 형님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해가 졌다. 예금 금리는 3%인데, 대출 금리는 7% 이상으로 오르고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땅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땅을 판 돈으로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생돈을 들여 집을 지어야 할 판이란다.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자존감의 부족 때문이다. 지식인들이나 시민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어거지 논리와 강압에 이끌리다 보니 나라꼴이 엉망이 된다. 자존감의 부족은, 지식 독립을 못했기 때문이다. life라는 단어를 번역하지 못해서 일본이 번역한 것을 가져다 쓰는 학계에 무슨 자존감이 생길 수 있겠나. life는 삶이고, 생명이 아니라 사룸이다.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외세는 서로 돕고 이용하는 것이지 시키는 데로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의 독립, 지성의 독립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