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진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_모악산 월출산 원림_230414~16

지난 주에 두 가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완전히 다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1) 진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2) 부자는 큰 나무를 심고 즐긴다.

옛날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1) 진실은 존재하고, 거짓은 만들어진다.
2) 씨앗은 우주다. 씨앗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인내하며 지켜보라.

1)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은 대체로 틀렸다. 진실도 거짓도 모두 만들어진다.
행위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도대체 진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우주의 진실도 관찰이라는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2)와 같은 생각으로 폭이 넓어졌다.
이사를 하고 싶은데,
첫 번째로 가고 싶은 곳이, 
창경궁이나 숭인원, 북한산이나 월출산 아래 같은
잘 가꿔진 정원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리미와 함께 걷는 재미에 푹 빠진 이유는,
보고 싶은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 산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찾아다녔던 것은,
만들어진 진실을 발견하고 싶었던 '욕망'의 발로였다.

 

월출산 아래로 한 번에 가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져서 전주 모악산으로 간다. 경치 좋은 악산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서산 농원의 소들이 멀리서 풀을 뜯고 있다. 서산 일대에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북한으로 올라가던 장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당시에는 그것이 재벌회장의 객기로만 느껴졌는데, 한반도의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그 행동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다.

 

https://youtu.be/88AyVlNcsCc

 

모악산 코스는 주차장 - 대원사 - 수왕사 - 모악산 정상 - 남봉 - 전망대 - 천일암 - 신신바위 - 사랑바위 -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3시간 코스다.

 

걱정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고, 입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헉헉대며 뛰어 내려오는 데, 2시간 만에 정상을 올랐다가 상학능선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우리는 모악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오는 상학능선을 택하지 않고 전망대로 돌아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오후 3시에 출발했다. 너무 늦었다.

 

 

산은 제법 가파르고 등산객도 많아서 외롭지 않았다. 신나게 빠르게 걷던 그리미가 갑자기 힘들어 한다. 경사가 끝나지 않아서다. 대원사를 채 오르지도 못했는데, 위기가 왔다. 그래, 어차피 늦었으니 오르지 못하면 이곳에서 쉬었다가 가도 된다. 과자와 물을 마시며 한참이나 숨을 골라 대원사에 오르고, 스님의 반가운 맞이에 돌아서지 못해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더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4시가 훌쩍 넘었다.

 

힘든 길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야생화들이 마음을 부자로 만든다. 안그래도 늦는 발걸음이 더욱 늦어지지만 꽃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하러 이 높은 곳까지 올라야 하는가? 수왕사까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서 늦은 산행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정상에 다다르자 바위들이 나타난다. 고생하며 올랐으니, 돌탑이라도 쌓고 가자고 해서 큰 바위에 기대어 돌탑을 쌓았다. 마지막 계단을 헉헉대며 오르는데, 마주 내려오는 운동선수들이 숨을 몰아쉰다.

 

바로 저기다. 

 

모악산 정상을 50m 남겨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국가기간시설의 보호를 위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오후 4시까지만 개방한다고 한다. 5시다. 우리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일찍 길을 나서지 못해 늘 야간 산행을 하게 된다. 아쉽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상태에서 뒤돌아서서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런데, 길이 이상하다. 철 계단은 낡고 무너진 듯 보였고, 사람들이 걸은 흔적은 거의 없었다. 헬기장이 있고, 전망대가 있어서 멋진 진달래 능선을 감상하기는 했지만, 등산객이 완전히 끊긴 이곳에는 우리 밖에는 없다.

 

 

천일암을 돌아 내려오는 데 6시가 넘어서자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멧돼지 조심 표지판이 신경 쓰이는데다가 등산로는 거의 소로 수준이다.

 

산을 넘어 능선을 타려고 했더니 지친 그리미가 절대로 능선을 탈 수 없다고 해서 계곡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끝도 없는 어두운 계곡길이 이어진다. 그래도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 신선바위를 지나 쉼없이 내려오고 나서야 드디어 사랑바위와 비룡폭포도 나타나고 끝이 보인다.

 

 

 

아는 길이 나타나고 해가 완전히 기울어 갈 즈음에 상학능선 입구에서 새로운 등산객을 만났다. 야간 산행을 해서 대원사로 올라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한 간판을 보았다.

성행위를 금지한다니, 산 속에서 무슨 짓들을 하는 것이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행위였다.

 

웃으며 산행을 끝냈으나 저녁을 먹으러 광주까지 가야 한다는 내 판단은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무등골 전집은 비가 내리는 저녁이라 사람들로 미어 터지는데.

 

dk

(to be continued like reading a test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