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수건을 덮지 않고 베개가 맞지 않아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8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으로 야채스프와 다이제를 먹었다. 국화차로 음료수를 준비했다. 숙소인 둥지 오피스텔은 장승포항의 외도행 여객터미널 앞이라 20코스의 절반 쯤 되는 위치에 있다. 전체 길이는 19km다. 그게 얼마나 긴 거리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만 생각했다.
(숙소 앞 출발) 장승포항 → 윤개공원 → 기미산등산로입구 → 옥화마을 → 지세포 해양문화박물관 (점심 먹고 택시로 점프) → 장승포 시외버스터미널 → 느태고개 → 능포봉수대 → 능포항(수변공원) → 해맞이공원 → 양지암조각공원 → 해안산책로 → 장승포벚꽃길 → 문예회관 평화의 소녀상 → 장승포 여객터미널(숙소) [ 19km : 9시간 점심, 저녁 식사 시간 포함 ]
10시 반에 출발. 장승포항의 소박하게 예쁜 모습을 보며 기미산 등산로를 올랐다. 산을 오르내리며 멋진 바다를 즐겼다. 날이 좋아서 우리 땅이 될 대마도를 찾아보려 했는데, 실패했다. 바위가 엄청나게 많다. 화강암인지 편마암인지 알 수 없지만. 붉은 황토흙도 나타나고, 동백나무 군락지, 바다 위의 산책길 등 다양한 모습들이 여수 비렁길에 비견될 만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동네 산책로다. 해발 고지 250여 미터. 동네 뒷산치고는 바위들이 엄청나서 누군가가 시들을 적어 놓았는데, 쉬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바람이 쌀쌀하다. 기모가 있는 골덴바지를 입었는데도 바람이 차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덮었다. 동백숲으로 들어가면 고요하고 따뜻하다. 방풍림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겠다.
바위가 많다보니 모든 생명은 바위에서 시작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생명이 있기 전에 지구는 물과 암석 덩어리였다. 암석 덩어리가 깨진다. 모든 흙은 암석이 깨져서 만들어 진다. 암석이 깨져 흙이 되고, 흙속에는 각종 원소들이 식물로 동물로 전달되면서, 꽃도 되고 나무도 되고 사람도 된다. 별빛이 바위에 스며들어 꽃이 피었다.
작은 동백나무는 쓰러진 참나무의 패인 홈에서 뿌리를 내려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나무들의 뿌리는 바위를 뚫고 깨뜨린다. 풍화작용의 가장 강력한 힘은 비바람과 태양이라기 보다는 식물의 뿌리다. 그 연약한 뿌리들이 결국 커다란 바위들을 쪼개주고, 쪼개진 틈으로 빗물과 바람이 드나들며 천만 년의 세월이 흐르면, 바위는 결국 흙이 되어 쌓인다.
기미산이 얼마나 험했는지 도저히 산으로는 길을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바위산을 바라보며 바다 위를 걷는다. 기분은 좋은데, 바닷 바람이 너무 차다. 만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비로소 바람이 잔다.
점심을 우렁쌈밥과 문어숙회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며 천천히 먹었다. 34,000원. 당귀와 겨자채의 향이 좋았다. 너무 배가 불러서 문어숙회는 포장해서 짊어지고 다녔다.
어업문화회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장승포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3시 반인데, 앞으로도 3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봉수대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지만 멋지다. 내려가는 길도. 조각공원에 진입했을 때는 석양이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하고, 장승포 항 입구에 도달하자 해가 진다.
숙소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럴 여유가 없겠다. 어느덧 6시가 넘었다. 장수돼지국밥 집에서 1인분은 먹고 1인분은 포장을 했다. 깔끔하고 맛있다. 저녁을 먹고 힘을 내서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