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에서 주인은 누구인가?
정의부터 간단하게 해 두고 가자.
1) 민주 : 국민 nation - 시민 citizen - 인민 people - 인간 human이 주인이 되는 정치 체제.
2) 공화 : 공동의 번영을 위해 공동으로 집권하는 정치 체제. 당쟁과 정권 교체가 빈번하다.
민주공화국에서 주인은 분명하게 국민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의원 - 총리 - 자치단체장 - 대통령 등이 주인 노릇을 한다. 그들은 위임받은 권력만을 제한된 범위에서 실행하는, 국민들의 대리인에 불과한데 말이다. 주인 아닌 자가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 결국은 주인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된다.
주인은 누구인가? 주인은 자기결정권이 있다. 물론 대단한 권리는 아니다. 내 몸과 내 생각을 내 마음데로 하겠다는 것이 그렇게 커다란 철학이 필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나로부터 출발해서 국민과 시민이라는 집단이 된다면 좀 달라지기는 한다. 한 몸처럼 움직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작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숫자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공감하는 데로 움직여야 한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어찌보면, 무더기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힘에 불과하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대규모로 움직이는만큼 그 힘은 강력하다. 강력한 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풍물패는, 지휘자인 상쇠 - 멋과 가락을 만들어내는 장구 - 힘과 규율을 상징하는 북 - 조화를 만들어 내는 징으로 구성된다.
꽹가리는 쇠라고 부른다. 쇠를 다루는 상쇠는, 풍물패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 가락을 시작하고 끝맺는다. 가락을 바꾸기도 하고, 대오를 움직이며, 음악의 속도를 조정한다. 풍물패는 상쇠의 놀이터다. 천둥 소리처럼 강렬하다. 번개가 내리 꽂듯이 고막을 찢는듯한 소리가 난다. 상쇠는 장구와 북, 징에 대한 평가와 교육 권한까지 갖고 있다. 강력한 대통령이다.
그런 상쇠를 호위하는 경호팀이 부쇠다. 따라와, 우리가 상쇠를 보좌해야 해.
북은, 음이 단순하면서도 웅장하다. 북을 다루는 사람은 고수다. 고수답게 풍물이라는 음악의 박자를 지켜주는 중심이다. 북은 사물의 규율이면서, 웅장한 소리로 힘과 용기를 북돋워준다. 법은 원래 그래야 한다. 엄격하지만 힘과 용기를 주어 삶을 살아내게 한다.
북소리를 구름소리라고 하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북소리가 구름처럼 저 위에서 풍물패를 굽어보고 있다는게 말이 되나. 게다가 구름소리는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리처럼 들어본 적이 없다. 북소리는 생명의 소리, 심장이 뛰는 소리다.
징은, 이게 과연 악기인지 싶다. 세월을 알려주는 듯한 풍모와 소리를 갖고 있다. 정말 멋있다. 풍물에서 징은, 마디마디를 맺어주는 신호를 보낸다. 각각 들으면 매우 날카롭게 느껴지는 악기들의 소리를 하나로 품어준다. 징소리를 바람소리라고 하는데, 홀연히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징소리는 늘 있지만 항상 있지 않다. 배경으로 흐른다, 마치 바람처럼.
장구는, 아름답고 화려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2, 30명의 장구가 일제히 멋진 소리와 동작을 쏟아내게 되면하는 사람도 신나지만 보는 사람도 즐겁다. 아무리 상쇠가 멋있다고 한들, 쇠 때기 하나 들고 돌아다니면서 만드는 모습이 장구떼의 화려함에 비할 수 있겠는가? 장구는, 멋스럽고 우아하며 빠르고 화려하다. 게다가 숫자가 많다.
장구소리를 빗소리라 한다. 비는 생명의 원천이다. 원천이 곧 주인이다. 장구는 풍물놀이의 원천이다. 상쇠가 풍물을 이끌고, 북이 규율을 잡으며, 징이 맺어준다고 하지만 장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줄기에 그냥 휩쓸려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구야말로 진정한 풍물의 주인이며, 풍물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국민은, 국가의 원천이다. 시민이 민주주의의 주인인 것처럼. 그런데, 장구가 박자와 가락을 잃고 방황하면, 풍물놀이는 망쳐버리고 만다.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 독재와 파시즘이 구천을 떠도는 망령처럼 되살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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