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과 영등포 순대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술값을 나누어 내야 하는 가난한 자리였지만,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젊은 마음은 여전했다. 나는 대학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으로, 다사는 입학원서를 쓰는 순간으로, 큰심이는 강집을 끝내고 교정에 선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나는 못 마시는 술과 견딜 수 없는 독재 타도의 부담을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여인들과 자유롭게 놀기를, 다사는 가난에 찌들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공부하기를 꿈꾸고 있고, 큰심이는 쪽방촌이 아니라 큰 세계를 주름잡고 싶었다.
우리를 이 자리에 앉게 한 것은, 김남국의 책이다. 우리의 연민은 왜 쉽게 사라질까.
"나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근본부터 바꿀 수 있는 힘이, 정치와 사랑이라고 믿는다." (8쪽)
"이성과 공감이 함께 작용할 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사람됨을 가질 수 있다. (중략 / 그렇지않다면) 모두가 오직 생존을 위해 자기 이익만을 좇는 (중략) 외롭고, 가난하고, 불편하고, 잔인하고, 부족한 상태를 견뎌내야 한다. 홉스는, 국가가 이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우리의 국가는, 그런 참사(세월호 또는 이태원의 참사)가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진영을 가르는 혐오감'에 포위되어 있다." (240쪽)
"개인의 자유와 자유로운 내면의 가치를 지지하고 다른 사람의 문화차이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치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만이, 민주주의의 후퇴와 권위주의의 귀환을 저지하는 강한 시민이 될 수 있다."(243쪽)
정치를 중심에 두고 이 말들을 정리해보면, 이성-자유-존중-정의를 바탕으로 사랑-공감-연민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정치가 우리 사회를 근본부터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냉정한 개혁'이 지지를 받아, '냉철한 기획'으로 겸손하게 실행될 때, 혐오와 경멸이 사라지고, 정치가 국가를 개혁할 수 있다.
김남국의 말이 지당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실은, 이성이나 정의를 양 대가리로 걸어놓고, 권력과 돈이라는 개고기를 취하는 전쟁터다. 냉철하고 사랑스러운 개혁은, 돈벌이 앞에서 조롱받는다. 홉스와 김남국이 안타까워하는 상태, 혐오 또는 경멸에 둘러싸인 국가는, 과연 개혁이 가능한 것일까? 헛된 기대와 희망 속에 사느나 차라리, 혐오와 경멸을 수단으로 하여 개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자. 지식인들이 사고실험이라고 하는 것을 해보자.
혐오와 경멸을 수단으로 정치를 바꿔간다면, 우리는 서로 동등하다. 한심한 수준의 내가, 비슷한 수준의 우리들과 전쟁하는 것이다. 누가 이기더라도 이상할 것 없고, 누가 지더라도 세상은 그렇고 그럴수밖에 없다. 너나 내나 모두 혐오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기간 동안에는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아 합종연횡이 자유롭고, 그 힘으로 배제할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할 수 있다.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싸워야 할 적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만의 평화가 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과 정의의 정치보다는, 혐오와 경멸의 정치가 훨씬 당당하고 뒤탈이 없지 않을까. 사랑과 정의를 앞세워 뜨뜻미지근한 상태로 평화를 연장해 간다면, 혐오와 경멸의 대상은 너무 쉽게 살아남고, 그들 때문에 평화는 너무 쉽게 깨진다. 야만스러움을 적나라하게 겪다 보면, 우리 모두가 기필코 야만에서 탈출하고 싶어질 시점이 좀더 빨리 다가올 것이 틀림없다.
우리 모두가 혐오와 경멸이 없는 문명인들이 되었을 때, 비로소 세상은 평화로워진다. 내가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 혐오와 경멸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면, 우리 모두도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억지로 끌어내려하지 말고, 본성에 충실하면서 때를 기다리자.
위선은 위험하다. 위선은, 자기 스스로를 좌절시키고,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며, 야만이 세력을 키울 빌미를 준다. 어차피 나는 생존한다. 사랑과 정의로 무장되어 있지 않더라도 생존하고, 권력을 차지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사랑과 정의가 나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혐오와 경멸도 우리 모두의 수단이다. 마음껏 활용하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자기 자신을 정의라 주장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격렬하게 혐오해서 핵이든 뭐든 최고의 무기를 쓸 수 있는 것을 다 썼다면, 두 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지금과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을까.
사랑과 인권을 존중하는 미국과 유럽 세계가, 러시아인들에게 미안해서, 우크라이나만을 대충 우리 편으로만 만들려 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고통이 커진다.
러시아는 과거의 동지였던 우크라이나에게 미안해서, 신나치 세력만을 적당히 미워했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특별작전으로 수많은 인명과 자산들을 파괴하며 길고 긴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서로를 완전히 경멸하고 혐오해서 가장 확실한 무기인 핵부터 사용했어야 했다. 그러면 전쟁은 벌써 끝났다. 지금 세계는, 누구도 양보하지 않을 협상을 목표로 전쟁을 키워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강력한 서너 방의 핵을 날려야 한다. 한 방 가지고는 안된다.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고뇌하는가? 전쟁을 하고 있는 나는 이미 사랑을 잃어버린 존재다. 그 고뇌는 사랑이 아니라 위선이다.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지금은 물론이고 미래도 파국이다.
1차 대전이 끝나자 2차 대전이 시작되었고, 2차 대전이 끝나자 냉전이 시작되고, 한국전과 베트남전이 있었다. 걸프전이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중동전쟁,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전쟁이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재래식 전쟁으로는 인류의 자유와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미주리호에서 일본 덴노의 항복을 이끌어낸 것은 핵폭탄 두 발이었다.
평화와 안전을 위하는 미국과 중국과 대만도, 매일같이 으르렁대며 서로를 협력 상대로 인정할 필요가 없다. 배제의 대상에게는 아낌없이 핵탄두를 날려야 한다. 중국에는 적어도 열 발 정도는 날려야 하고, 미국에는 7발 정도는 날려야 하며, 대만에는 2발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 날려서 확실하게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음을 서로 확인해라. 누가 정의 인지도 알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렇고 그런 존재들 아닌가. 배제하려고 최선을 다 해라.
일본과 북한에게도 미국에서 핵을 빌려, 북한에는 두 발, 일본에는 다섯 발 정도를 쏘아야 한다. 반드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심장부를 먼저 공격해야 피해를 덜 입고, 확실한 무기이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다. 연합방어훈련 한다고 아까운 연료와 폭탄,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일본과 북한은 우리에게 실제 위협이다. 뜨뜻 미지근하게 우방국과 한민족이라는 '값싼 감정'을 소모해서는 안된다. 지난 70년의 세월이 이미 모든 것을 증명했다. 한 하늘 아래 그들과 살 수 없다. 오로지 선제타격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오늘도 러시아가 쏜 미사일에 키이우의 시민들이 5명 사망했다. 그 정도로는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낼 수 없다. 화끈하게 결단해야 한다.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러시아가 못한다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과 미국이 결단해야 한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날이 춥다. 천연가스와 석유를, 거대한 자원의 보고 시베리아를 빼앗아야 한다. 재래식 전쟁으로 시리아와 이라크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곳은 지옥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다. 기나긴 전쟁의 결과가 지옥이라면, 차라리 화끈하게 끝내고 좀 더 긴 평화를, 혐오스러운 존재들이지만, 우리들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만들자.
이런 생각은, 세계평화와 한반도의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틀린 생각이다.
김남국의 생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성과 공감이 함께 작용하여" "타인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그런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
1. 김남국의 아포리아와 소크라테스의 아포리아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εία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이다. 서로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이해를 다투는 정치의 세계에서 많은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아포리아 상태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략) 이 경우에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준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이다. 역사를 통해 앞선 이들의 경험을 살펴볼 수 있고, 철학을 통해 문제 해결의 원칙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중략) 정치사에 나타나는 역사와 정치사상에서 드러나는 철학을 함께 고려하는 과정에서 (요약 : '기성 권위에 대한 합리화'와 '무책임한 비난과 선동' 모두에서 벗어날 수 있다.)" (5~6쪽)
그리스어 포리아πορεία는 길route, 과정 process, 경로 course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믿고' 신탁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테네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것을 증명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소크라테스가 던지는 질문은 당황스럽고 어려워서 아포리아다. 어렵고 황당하지만 답을 하려고 노력할 때, 사회는 번영한다. 소크라테스는 잠들어 있는 아테네의 정신을 깨우는 '등에 horse fly'로서 죽었고, 등에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 아테네는 깨어나지 못하고 멸망한다.
'문재인은 빨갱이다.' 문재인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대한국민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 시기에 어느 나라보다도 훌륭하게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냈으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의무가 없음을 인정하라는 일본의 압력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과 사법부의 주권을 지켜냈고, 일본의 부당한 무역보복에도 굴하지 않고 정면 돌파해서 기술자립과 경제이익을 달성했다. 그러므로 '문재인은 종북좌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민의 이익을 지켜낸 대통령이다'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가 덕과 용기와 지혜가 무엇이냐고 끈질기게 물어보았던 이유는, 생각의 기준과 원칙을 마련하려고 했다. 김남국은 소크라테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하는지를 정치사와 정치사상에 바탕을 두고 제시하려고 했다. 우리 사회를 근본부터 바꿀 수 있는 힘은, 사랑과 정치이므로.
2. 사유의 기원
김남국의 '사유의 기원'의 첫 번째는 매천과 비숍이고, 두 번째는 트로츠키와 부하린, 세 번째는 사르트르와 메를로 뽕티다. 스스로의 생각과 비교해보면 좋을 것이다.
1) 매천과 비숍
김남국이 인용한 매천과 비숍의 기록을 보고, 김남국의 생각의 기원을 추정해 보면 이렇다.
사랑과 열정으로 미래를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이 우리의 유효한 행동이며, 한민족은 그런 가능성과 역량을 이미 보여주었다. 역사를 돌이켜보자.
박영효는 '실패한 개혁가'인 자신 대신에, '실패한 한민족'이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시정잡배로 전락한 자신을 변호했다.
고종은 할 수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천수를 누린 한심한 황제다. 동로마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를 보라. 죽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고종의 이러한 안일함은, 1919년 독립운동의 구호가 대한제국의 독립이 아니라, 대한의 독립이었고, 그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에 수립되었다.
반면에 오늘날 한민족의 번영에서 알수 있듯이, 구한말에 이미 만주와 시베리아라는 새로운 지배체제 아래서의 한민족은, 열정과 활기에 넘쳐 번창했다. 착취와 수탈에서 벗어나면 잘 살아낸다. 자본주의 시대에도 대한국민은 해낼수 있다.
"김남국 :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뛰고, 사랑하고, 쏟아붓는 열정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333쪽)
박영효 : "1888년에 쓴 [건백서]에서 (중략) 위민爲民이 아닌 여민與民 사상은 가히 혁명(이었으며 / 중략) 백성과 함께하는 인의의 정치가 자신의 주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략 / 1884년 정변에 실패하고도 살아남아) 1894년에는 일본을 등에 업은 세도정치가의 일원으로 변신한 박영효는 (중략) 1931년 [동광]지에 이광수와 한 인터뷰(에서 / 중략) '단결의 결여'는 곧 자신의 여민사상의 실패를 의미한다. (중략 / 그런데) '신의 없음'은 (중략 / 사실은) '대중 설득'과 '함께함'이 없이 몇몇 지도자의 밀약에 그쳤던 것이다. '돈이 없음'은 (중략) 엄연한 조선의 현실을 돌파해 낼 생각보다는, 개혁해야 할 현실의 사정에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중략) 혁명가이기를 원하는 한 사람이, 자신이 개혁해야 할 구습의 정치 문화를 탓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의 실패를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337~8쪽)
고종 : "정치가의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고, 그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을 알려고 할 때, 정치 평론은 주술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중략 / 1876년 신헌은) 공격하면 부족하여도 수비하면 여유가 있다 하였으니, 천하에 어찌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있으리오. 등국, 설국과 같은 작은 나라도 전국시대에 능히 보전하였거늘 전하는 어찌 수어 방책이 없으리오. 이는 불위不爲함이오 불능不能함이 아니옵니다. (중략 / 고종은) 개혁의 피상화를 통한 우파적 방해 (중략)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인가를 하는 (즉, 조선을 파국으로 몰고갔다 / 중략 / 이런 고종에 대해 1904년 윤치호는) 만약 저주가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저 사악한 황제는 진작 죽어서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갔을 것이다." (339~341)
이사벨라 버드 비숍 : "한국 어딘가에 애국심의 맥박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농민들의 가슴속뿐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중략) 1,200만~1,400만의 인구를 가진 이 한국이란 나라에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새로운 지배 체제 아래 들어간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친일파들이다 / 중략) 한국인이 동시베리아에서 활기 있고 열정에 넘쳐 나날이 번창하는 농민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어야 할 것이다." (347쪽)
2) 트로츠키와 부하린
트로츠키와 부하린을 정리하면서, 김남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이렇게 정리해 본다.
패배한 현실 사회주의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치열한 논쟁이었다. '이론과 현실' 논쟁을 통해 그들은, 동지로서 함께 싸우거나 적이 되어 서로 싸우다가, 역사에서 배제되었다. 이제 적과 동지, 승리자와 패배자가 모두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이고, 사회과학으로서의 사회주의이론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다.
자본주의라는 식빵에는, 사회주의의 요소들이 건포도처럼 이미 박혀있다. 원자와 전자처럼 멀리 떨어져 따로 도는 것이아니라 양성자와 중성자처럼 원자핵의 일원이 되었다. 강철Fe처럼 안정된 원소가 되기 위해서는 더많은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이 달라붙어야 한다. 트로츠키와 부하린이 참여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게 논쟁한 것처럼, 우리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시키기 위해 열심히 토론해야 한다. 연구와 논쟁을 강력(핵력)으로 하여.
"(트로츠키의 참여민주주의) 당의 모든 단위는 자유롭고 동지로서 비판의 권리를 갖는 동시에, 또한 비판을 두려워하거나 등을 돌리지 않는 구성원 전체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당 기구를 혁신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체 의사를 반영하여 집행할 수 있는 메커니즘의 보장" (371쪽)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패배자와 승리자를 불문하고, 스탈린은 물론 트로츠키와 부하린까지도 급속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계기로 트로키와 부하린의 사회주의 건설 노선은, 편협한 전략과 선언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과학으로서, 역사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는 조건을 비로소 갖춘 셈이다." (1995년 5월 / 376쪽)
3) 사르트르와 메를로 뽕티
사르트르와 메를로 뽕티를 기반으로 한, 김남국의 생각의 기원은 이렇다.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실천을 통해 혁명의 전위가 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통일된 이해를 바탕으로 세마science로서의 정치학을 정립할 수 있다. 정치는, '나의 지옥인 타인들'과 함께 만든 '공동체'의 오류를 제거해 가는 과정이며, 사람의 자유를 구현하는 것이다.
"사르트르 : "사람은 완전히 자유로운 의식의 존재이며, 사람이 완벽하게 자유로우려면 의식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중략 / 그래서) 타인은 종종 나의 지옥이며, 나에게 있어 자유는 완전히 고립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되고, 사회는 갈등과 투쟁으로 특징지어진다. (중략) 실천은 인식의 절대 자유를 뜻하며, 순수의식을 획득한 부르주아 지식인 역시 혁명의 전위가 될 수 있다." (378~9쪽)
메를로 뽕띠 : "지각의 세계는, 우리의 몸으로 만나는 가장 원시의 세계이다. (중략) 세계는 이미 결정된 확고부동한 세계가 아닌 우연의 세계다. (중략) 역사는 객관진리의 구현 과정이 아닌 오류의 제거 과정이며, (중략) 사람의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380~1쪽)
"현상학의 정치학은, 행태주의와 전통주의 사이의 오랜 방황으로부터 정치학을 해방시켜 다양한 의견의 세계로 정의되는 정치 세계에 대해 보다 총체적이고 통일적인 이해가 가능한 철저한 실증주의, 진정한 세마science의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1986년 12월 / 382~3쪽)
미국. 아들이 공부를 위해서 미국에 가야 한단다. 돈과 학문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인종차별과 총기가 난무하는 곳에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려고 하니 마음이 무겁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걱정 말란다. 인종 차별은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것이고, 총기 사고를 당할 확률은 거의 없을 테니까.
미국은 시민의 인권이 만들어지고 자라난 곳이다. 국가 이전에 개인의 종교와 노동의 자유가 있었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은 그들 스스로 지켰다. 시민 스스로 무장해서 대영제국과 싸워서 만든 나라가 미국이다. 자본주의가 인류의 구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진영 최후의 보루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냉전시대에 소련과 중국에 맞서 홀로 세계의 파수꾼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김일성의 침공으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연합군과 함께 상륙하여 우리나라를 지켜냈다. 미국 젊은이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세계도 대한민국도 없다. 이게 미국이다.
"최근의 (2017년 12월 현재) 북 핵 위기는 북한이 생존 및 정체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존재론적 안보 추구 행위를 하고 있고, 미국 역시 이 사태를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문제로 이슈화함에 따라 정체성 충돌과 강화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체성의 강화 경쟁에서 북한이 어떤 이유로든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 위기는 군사적 접근만으로 해결 불가능하고, 장기적 규범적 관점에서 다자주의적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중략) 도시 외교, 국가 외교, 지역 외교, 다자 외교, 정상 외교 등으로 개별 국가 중심의 기존 외교를 입체화하는 방식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균형 외교의 초점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 인식의 과도한 편향을 조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동맹이지만 그 절대적 존재감 때문에 우리 외교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140~141쪽)
"우리는 인간을 야만의 상태로 되돌리는 전쟁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전쟁 상태를 끝내기 위해 다양한 무기 지원을 통해 전쟁을 계속하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20쪽)
김남국 :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윤 대통령을 2022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했을 때 뒤따른 해설은 '외교 안보 경험이 없고 지지를 얻기 위해 반페미니즘을 무기화'했다는 것이었다. 이 설명은 한국이 이미 선진국으로서 국제 질서에 신뢰와 표준의 공공재를 제공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하고 한국이 그 표준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다." (21쪽)
[ 연합뉴스 ] "윤대통령, 타임지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선정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22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올랐습니다.
타임지는 현지시간 23일, 윤 대통령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지도자 부문에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도자 부문에서 2013년과 2018년에 각각 선정된 적 있습니다."
Time :
"Tensions are high on the Korean Peninsula, as U.S. officials say there are concerns that North Korea may be preparing to resume nuclear testing. South Korea’s new President, Yoon Suk-yeol, a former prosecutor with little foreign policy experience, is determined to take on the challenge.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핵실험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외교정책 경험이 거의 없는 검사 출신인 윤석열 신임 한국 대통령은 도전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On the campaign trail, Yoon, of the conservative People Power Party, called for a tougher stance in relation to his country’s northern neighbor, compared with that of his predecessor, who had pushed for greater engagement with North Korea. In his May 10 inauguration address, Yoon offered an “audacious plan” to strengthen North Korea’s economy in exchange for complete denuclearization. It’s a deal that analysts say Kim Jong Un is unlikely to accept. The 61-year-old Yoon has also said that he wants to align with the U.S.—South Korea’s most important military ally—more closely. This will likely create friction with China, its largest trading partner.
선거 유세에서 국민의 힘의 윤 후보는, 북한과의 더 큰 교류를 추진했던 전임자와 비교하여, 북한과의 관계에서 더 강경한 입장을 요구받았다. 윤석렬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대가로 북한 경제를 강화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을 제시했다. 김정은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또한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군사 동맹인 미국과 더 긴밀하게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마찰을 빚을 것이다.
But if Yoon has big aims internationally, he will also need to prove himself at home. The populist leader promises to heal economic and political divides, something that will be necessary after a campaign in which he inflamed divisions by weaponizing antifeminist rhetoric to gain support. Not everyone is confident in his abilities. A poll released in early April by Gallup Korea found that only 55% of respondents expect Yoon, who won by a razor-thin margin, to do a good job in office.
그러나 만약 윤 대통령이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국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어퍼컷을 멋지게 날린 선동 정치가는, 경제와 정치부문에서의 분열을 치유할 것을 약속했으나, 정작 필요한 것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가 지지를 얻기 위해 부추겼던 반여성주의로 인한 내부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갤럽이 4월 초에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5%의 응답자만이 박빙의 차이로 승리한 윤 대통령이 잘 해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Gunia is a TIME staff writer
김남국의 글에서는 열정과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발표 당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6개월이 흐르고, 그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밋밋함이 사라지고 강렬함이 느껴진다. 품위를 갖춘 냉정한 미래 예측. 게다가 2017년에 쓴 글의 글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양자론의 통찰이 느껴진다.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시한 우리나라 정부 형태의 원안은 의원내각제였다. (중략 / 이승만은) 장외 정치투쟁을 선언하였다. 그날 밤(중략 / 어쩔수없이) 대통령중심제로 급히 바꾼 헌법 초안을 통과시켰다.
의원내각제는, 정치지도자의 훈련과 정치의 연속성, (시민의) 지지와 (시민) 대표의 일치 차원에서 장점을 가진 제도다. 의원들은 정부의 각 부처를 돌면서 국정 현안을 파악하고 정책 결정의 훈련을 통해 지도자로 성장한다. 또한 국민의 지지와 정당의 지지가 불일치할 때, 언제든지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을 통해 새로운 선거를 시행함으로써, 지지와 대표를 일치시킬 수 있다. 특히 의원내각제는 일찌감치 전문정치인의 길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정치와 비정치 영역을 뚜렷하게 분리하여 사회 각 분야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만든다. (중략) 그러나 아무리 이론으로 좋은 제도라고 해도 국민이 싫어하면 도입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원내각제에 대한 지지가 낮은 이유는, (중략) 국회의원에 대한 낮은 신뢰와 그들이 재벌과 결탁해 권력을 사유화할 경우 국민이 직접 견제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대통령중심제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책임정치 구현의 장점이 있지만 (중략) 대통령 개인의 자질에 따라 정부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중략) 8년마다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현실은 16년 만에 정권교체가 겨우 가능할지 모른다. 한 세력이 16년을 집권하면 승자독식의 정치문화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반대편은 인적·물적 토대가 붕괴하여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략) 최근 시작된 개헌 논의에는 (중략) 시민참여형 개헌이 필요하고 또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중략) 헌법이라는 문서의 계약 당사자로서 시민들의 선택이 개헌 논의의 중심을 이뤄야 할 필요가 커진다.”
북아일랜드에 관한 글도 좋았는데, 특히 이 부분이 내가 요즘 관심을 키우는 분야다.
"서로가 상대방을 배제하려는 정책을 지양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한다."
친구론에서 이미 많이 밝혀왔듯이 '배제론'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은 적다. '공존론'과 '친구론'으로 모든 논의와 논리가 집중되어야 한다. 북아일랜드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이 원칙에만 합의하지 말고, 쉬운 정책 하나만이라도 합의하고 실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생학과 물리학의 세계가 만나야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서로를 끌어당겨야 세계가 변한다.
“북아일랜드는 식민지배와 내전을 거쳤고 구교도 공화주의자와 신교도 통합주의자 사이에 폭력적인 갈등이 지속됐다 (중략) 1922년 아일랜드의 공식적인 독립 이후 영국의 일부로 남은 북아일랜드는 자치정부를 구성해왔지만 신교도와 구교도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었고 1972년 영국 정부가 자치권을 회수하고 직접 통치를 선언함으로써 또 다른 갈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중략) 갈등은 1998년 성금요일 협정으로 큰 고비를 넘게 된다. 이 평화협정의 주요 내용은 적대적인 세력의 상호 인정을 통해 권력분점 정부 구성에 합의하고 아일랜드는 헌법 개정을 통해 북아일랜드를 포함하던 영토조항을 수정하면서 서로가 상대방을 멸절하는 통일을 배제하고 평화적 공존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원인은 정책, 리더십, 국제적 차원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정책적 요인으로 이 협정은 북아일랜드 내 다양한 정당 및 시민단체가 합의한 다자협약과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맺은 국제협약의 두 가지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즉 시민사회를 평화협정의 주체로 이끌어내는 공동체 교섭 과정을 통해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가장 독특한 모습인 다자협정이 체결되었고 이 다자협약의 이행을 정부 사이의 조약을 통해 보장하는 형식을 취했다. 물론 양국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2007년에 성립된 진정한 의미의 첫 연립정부는 급진파인 신페인과 민주통합당 사이에 구성되었다.
(중략) 북아일랜드는 이러한 노력들이 합쳐져 평화협정 이전 30여년 동안 3천여명이 사망했던 끔찍한 시기를 지나 더블린 출신의 버나드 쇼가 <존 불의 다른 섬>에서 그렸던 “사실이 너무 잔혹하지 않고 꿈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 나라”에 더 가까워졌다.” (145~7쪽)
[ 국민국가의 국경통제에 대하여 ]
국민국가의 틀 내에서 시민권을 강화해 온 역사는, 세계 인권을 강화하려는 노력과 배치된다는 역설을 안고 있다. 재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가, 세계시민의 보편인권을 덜 훼손하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이 역설을 해결해 갈 수밖에 없다.
"(자유방임주의는 비공격성의 원칙에 따라) 개인이나 개인 소유의 재산에 대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 사용을 위협하지 않는 한 국가에 의한 강제력의 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화주의자들은 세계 차원의 분배의 정의가 아직 구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중략 / 그래서) 재분배가 일어나는 경계를 기준으로 (중략) 정의의 단위로 기능하고 있는 국민국가는, 새로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는 외부인에게 시민이 되는 자격을 제시할 수 있고, 가입을 제한할 수도 있다. (중략) 국민국가의 경계를 아무나 횡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략)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인권을 세우려는 노력(은 /중략 / 시민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근대국민국가의 출현에 의해 본격 고양되기 시작했다는 역설이 자리잡고 있다. (중략) 인종과 문화를 중심으로 외부에 대해 배타성을 심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해온 잘못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 (220~1쪽)
[ 일본 전쟁범죄의 상속 책임 ]
일본 극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쟁범죄 지우기" 시도는, 그들이 찬양하기 원하는 전쟁범죄자들 때문에 영원히 잊혀지지 못하는 역사가 되고 있다.
"일본 보수진영이 전후세대의 책임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전범을 추모하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통해 과거 전쟁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전후세대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모순적 행동이다." (224쪽)
[ 그리스 사태로 본 유럽 통합 ]
'정밀한 제도로 역사의 우연인 전쟁도 제어할 수 있다'는 장 모네의 '유럽 통합에 의한 세계평화'는, 번영하려는 자본가들의 욕망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유럽을 건드려 "적이어야만 하는 러시아"를 자극하여,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전쟁을 치르게 하는 것을 보면, 유럽 통합의 본질을 분명하게 엿볼 수 있다. 유럽 시민들이 성장하지 않는 한, 세계는 유럽에서 시작된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본주의가 인류를 구원한 구세주임을 인정한다면, 유럽과 미국 자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전쟁도 회피하기 어렵다.
" 유럽 통합의 속도와 수준을 결정하는 주체는 (중략) 충분한 연대감을 갖고 나서는 유럽의 시민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유럽 시민은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그리스의 실패를 공동책임지기 위해 손해를 감수할 만큼의 연대감을 갖지 않는다. (중략 / 그러나)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제적 이해가 결국 유럽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더 설명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228쪽)
[ 권위주의의 귀환 ]
민주주의 역사 70년으로는 권위주의의 귀환을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의 미래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판단을 유보한 50%의 시민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귀환한 권위주의를 다시 차가운 겨울 바람 속으로 보내 버릴 수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오늘 또 우리는 찬 바람을 맞으며 길 위에 서야 할 것이다. 피곤한 일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유로운 내면의 가치를 지지하고 다른 사람과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만이 민주주의 후퇴와 권위주의 귀환을 저지하는 강한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43쪽)
[ 공공성의 빈곤 ]
공적영역의 확대는, '도덕적 과부화 ethical overburden'와 '다수의 전제 tyranny of majority'로 인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저하한다는 김남국의 주장에 공감한다. 개인의 행복과 발전을 중시하면서도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공성을 주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시민들로 국가를 채워나가는 방법 말고는 없다.
"(직시해야 할 현실은) 개인과 가족의 이해가 동심원적으로 확장되어 지역주의가 되었고, 권력을 사유화한 배타적인 지역 패권주의가 국가 이익이라는 공공성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공정한 규칙과 공동의 이해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개인들로 가득 채워진다면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246쪽)
[ 공론장 없는 법치의 위험성 ]
몽테스키외는 법에 근거해서 법관이 판단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여, 재판 과정에 반드시 시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했다. 법 기술자들의 세계는,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에 의해서 주어진 세계다. 주권자인 시민 위에 서려는 어떤 법 기술자들의 노력도, 반드시 좌절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통해.
"법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법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고 시민 생활 속에서 변화하고 자라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는 공론장이 없는 법치는 법을 위한 법치에 그칠 수밖에 없어 맹목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267쪽)
[ 폴란드 촛불집회와 한국의 촛불혁명 ]
한국 사회에서 혁명은 불가능하고, 혁명이 있어서도 안된다. 그렇더라도 혁명에 대한 기대는 접을 수가 없다. 복숭아꽃 만발한 봄날의 세상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그래서, 비록 무력한 대통령 하나를 끌어내린 것이기는 하지만, 2016년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를 "촛불혁명"이라 부르는데 찬성하게 되었다. 이제는 촛불혁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어야겠다. 극우들의 준동을 막을 수 없는 현실에서, 극우들과 함께 정치 활동을 이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촛불혁명은 촛불집회로 격하되어야 한다.
"폴란드는 열강에 둘러싸여 시달리면서도 민주화를 이룩했고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사법 개악 시도에 반대해 촛불집회를 통해 저항하는 모습도 한국과 닮았다. 다만 한국은 촛불집회 대신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두 축은 ‘재벌’과 ‘미국’일 것이다. 혁명이 기존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이 두 축에 대한 도전이 없다면 혁명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어렵다. 촛불집회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한 것은 맞지만 부풀려진 개념을 쓰면서 현실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이상이 현실을 견인할 것을 기대하지만 때로 이상은 무기가 되어 현실을 파괴하기도 한다." (우리의 연민은 왜 쉽게 사라질까? 156쪽)
[ 정치인은 왜 거짓말을 할까 ]
그래서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대안적 사실'이 가장 유명한 말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제부터라도 도덕이라는 단어를 저 멀리 던져버려야 한다. 꿈은 스스로 알아서들 꾸게해야 한다. 진보정치인들이 꾸는 꿈이, 오히려 실현불가능한 더 큰 거짓(대안적 거짓말=실현불가능한 꿈)일 수도 있다. 진실과 대안적 사실(거짓말)을 동시에 주장해서, 국민들을 의제적 기쁨에 춤추게 하거나 극우 지지층을 혼란스럽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정치는 원래 그런 '쇼 비즈니스(강준만)'의 세계다. 진실을 추구하려면, 대학으로 들어가거나 산림에 은거해야 한다.
"정치인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공리주의적 이유를 제시한다. 거짓말을 통해 공익을 늘리면 유능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중략) 거짓말은 시민들 사이의 상식적인 소통경로를 파괴함으로써 진실의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해친다. 현실정치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포의 조장이나 전략적 은폐가 항상 존재한다. 진실만을 추구하는 도덕성이 역사의 진보를 보장하지 않지만 도덕성 없는 유능함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168쪽)
[ 반이민 선동에 대하여 ]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가의 대부분은 이민 국가다. 다양한 인종이 경쟁하고 화합하며 살아갈 때, 문화의 혁신이 이루어진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처럼 총기 규제가 강력하면, 미국과 같은 난사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미개하고 부담스런 인종은 없다. 우리는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다. 논리를 제시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풍요롭게 살고 싶으면 그냥 마음을 열자.
"이민 및 난민의 증가와 복지국가의 앞날을 연계하는 것은 반이민 진영의 가장 강력한 논리다. 이 논의의 전제는 다양성이 증가하고 정체성의 정치가 강해지면 이질적인 시민들 사이에 합의가 어려워지고 재분배 정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복지국가는 쇠퇴한다 (중략) 우리가 이룩한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중심으로 이주자들이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가 되어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 (195쪽)
[ 국민이 된다는 것 ]
국가는 사회의 이익 충돌과 복지, 비용과 이익의 재분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약 시스템이다. 그런데, 주체인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든 국가가, 임의로 주체인 시민들을 배제하여 인간 이하로 만들어 버린다. 끔찍하지 않은가? 국가의 움직임을 정치로 제어하지 못하면, 우리를 지켜주던 리바이어던이, 불가사리가 되어 우리를 내칠 것이다. 피곤한 정치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왜? 나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 정치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연 상태의 인간에 대해 홉스는 외롭고, 가난하고, 형편없고, 잔인하고, 부족하다고 묘사한 바 있지만 한나 아렌트는 아예 인류의 범주로부터 추방당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략 / 무국적자는) 도덕과 법 사이의 모호한 공간에 버려진 이들을 가리켰다. 국가가 없다는 것은 곧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125쪽)
[ 약소국의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
남북 분단과 대립의 시작은, 얄타회담에서의 강대국 이익 중심의 국제정치였다.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기 보다는 이것 하나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폴란드, 한국, 베트남 등 약소국의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귀결되어 가던 1945년 2월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만났다. (중략) 스탈린이 폴란드 국경선을 300Km 서쪽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고 루즈벨트는 이에 동의했다. 이른바 커즌 선으로 불리는 폴란드 동쪽의 영토를 소련이 차지하고, 대신 오데르 나이세 강 동쪽의 독일 땅을 폴란드에 줌으로써 1200만여 명의 강제이주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결정이었다. (중략) 미국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폴란드 영토문제에서 소련의 주장을 용인해 줬다는 점 (중략) 미군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보다 소련군이 대신 희생해 주기를 원했고 그만큼 미국에게 소련의 대일전 참전은 중요했다.
(중략)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후인 1945년 8월 8일에서야 대일 선전포고를 했고 다음 날인 9일 만주전선에서 157만여 명의 병력으로 일본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참전의 대가로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의 섬 등을 보장받은 소련군은 예상 밖의 속도로 빠르게 남하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38선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분할점령안을 제안하게 만들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시작점이 되었다. (중략) 국제정치에서 누군가 우리의 이익을 대신해 중재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122~4쪽)
[ 행운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 ]
어느 날 나는 부자집에서 태어나서 유복하게 살았고, 죽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내 친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행운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가 내 친구의 부모가 해주지 못한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해 주어, 내 친구가 아플 때 치료해 주고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익히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복지국가를 설계한) 영국 이론가들은 국가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모든 노동자가 신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회 구성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복지, 재분배) 제도 아래서 노동자 계급은 자부심을 갖는 노동자로 대를 이어 재생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함께 치른 2차 세계대전 직후 강한 사회적 연대에 근거해 가능했던 이와 같은 합의는, 1979년 마거릿 대처 총리의 등장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면서 완전히 무너진다." (120쪽)
[ 돌파구를 만든 애매모호한 합의, 돌든모호 constructive ambiguity ]
돌든모호 constructive ambiguity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constructive ambiguity가 현대의 복잡한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서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개념은 ‘건설적 모호성’(constructive ambiguity)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신·구교도 사이의 폭력적인 갈등으로 3000여명이 희생된 불행한 역사를 끝맺은 1998년의 성금요일협정은 (중략 / 제7조는) 모든 관련 당사자는 무장해제가 협상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서로 노력하며 국제위원회의 감시 아래 2년 안에 완전한 무장해제를 이룬다고 짧게 언급했다. 이러한 모습으로 7조가 써진 데 대해 아직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어려운 사안을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에서 간략하게 언급함으로써 협상참여를 쉽게 만드는 ‘건설적 모호성’을 보인다고 평가한다. (중략) 협정 이후 12년 만에 끝난 무장해제를 협정의 우선조건으로 제시했더라면 1998년의 역사적 협정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략) 토니 블레어는 1998년 평화협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장단체 수감자가 석방되기 전 아일랜드공화국군의 무장해제가 이뤄질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중략 / 블레어의) 거짓 호소는, 도덕적으로 잘못됐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위가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중략) 데카르트는 그의 책 ‘방법서설’에서 “문제가 복잡하면 나누라”고 했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미완으로 남겨둔 채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낼 미래세대의 지혜에 맡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탈진실 시대의 정치 ]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모두 거짓을 말한다.
1) 거짓말 = 대안적 사실 : 알면서 거짓을 말하기고 하고,
2) 무지로 인한 거짓 :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로, 몰라서 거짓을 말하기도 하고 ,
3) 실현 불가능한 꿈 또는 불가능한 기대 = 거짓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거짓대안이라도 블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잘 포장해서 전달하면, 우연히 실현될 수도 있다. 실현불가능한 꿈도 같이 꾸다보면 실현할 방법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거짓 대안이라도 잘 포장해서 전달할 방법을 찾아보자. 특히 남북간 '교류와 여행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어서 거짓 대안이지만, 정말 우연히 어떤 해결책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돌든모호를 만들어도 좋겠다.
2년 안에 남북한 자유여행을 실시하고, 북한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로, 남한을 거쳐 일본과 태평양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탈진실이라는 개념은, 누구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맥락과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의 상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중략) 진실을 무시하고 시민들의 선입견과 감정을 이용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반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도전받기 시작했다.
(중략) 사람들은 누구나 정치적 편견을 갖고 있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SNS는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어 폐쇄적인 개인적 연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중략 / 그러다보니) 진실산업(fact industry)이 팽창한다.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마케팅과 더 나은 홍보 및 선전과 함께하기 때문에 승리한다. 토니 주트의 언급처럼 우리 모두 거짓을 말하고 그들 역시 거짓을 말한다." (10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