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다산의 마지막 습관_조윤제_221001 el un de octubre el sábado_oden октябрь Суббота

1. 현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민주주의 혁명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다산은 야만인일까? 고리타분하게 효제孝悌만을 근본가치라 했으니, 철 지난 보수주의자일까? 아니라면, 정치와 인륜의 근본 진리는, 적어도 공자 이래 동양에서는, 이미 확정되었을까? 다산이 답한다.

 

"세상에는 제일로 경박한 사람이 있으니,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지목해 ‘쓸데없는 일’이라 하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두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한다." (계고 중에서)

 

현실을 보면, 5평 월세에 사나 천 평 대저택에 사나 부모가 병들면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1년에 열 번 정도 만나야 하는 상황이니 감히 효를 논할 수도 없고, 진보진영이다 보수진영이다 해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의논할 일이 생기면 상대방을 헐뜯고 있으니 어떻게 감히 제(공경)를 논할 수 있나.

 

효제를 논할 수 없다면 선현들이 보시기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고리타분하다라고 치부해버리면 인간세상은 점점 쇠락의 길로, 야만의 길로 방향을 튼 것이라 평가할 것이다. 고리타분할까 망해가고 있을까?

 

2. 습관에 대해 조윤제가 정리해 놓은 이 두 개의 문장이 좋았다. 

 

습관은 하루하루 내려앉아 나를 가두게 된다. 습관이 나에게 내려앉은 것은, 내가 그 습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습관에 갇혀 사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그런 즐거운 습관들이 모여서 내 운명을 결정한다. 즐거운 습관으로 만들어진 내 운명 속에서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이게 아닌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의 습관 속에는, 나를 망치고 해치는 것도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습관을 매일같이 점검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내 운명은 매일 새로워진다.

 

"하루하루 내려앉아 나를 가두게 된 껍질,

  습관" (속표지 중에서) 

 

"습관이 내일의 운명이 된다면,

  나는 매일 새롭게 운명을 시작할 것이다." (속표지 중에서) 

 

3. 동양 고전에서 요즘들어 눈에 들어오는 주제는, "함부로 하지 마라"다.

 

온화한 말투와 신중한 행동, 학문에 대한 사랑, 효제의 강조 등등이 모두 "함부로 하지 말라"와 연결된 것으로 들린다. 나와 부모를 비롯한 가족을 함부로 하지 말고,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친구처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도 함부로 대하지 말자.

 

4. 이 책은 한 번에 읽을 책이 아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몇 문장씩 읽어 나가며,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소학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동양 고전의 경구들을 집대성한 것이라서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당연한데,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

“근세의 학자는 겨우 학문을 한다는 이름을 얻으면 몸가짐을 무겁게 하며 하늘의 이치를 말하고 음양의 도를 이야기한다. 벽 위에 태극팔괘太極八卦(주역의 이치)와 하도낙서河圖洛書(고대 중국 예언서의 기본이 된 책)를 걸어놓고 자기 말로는 궁리해 살핀다고 하며 어리석은 자들을 속인다. 그러면서 부모가 추위를 호소하고 굶주림을 참으며 질병으로 신음해도 살피지 않고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궁리해 살피는 것이 부지런하면 할수록 학문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진실로 능히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반드시 배웠다고 할 것이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 중에서)

 

전자책은 읽기와 정리에 편리해서 좋은데, 종이책의 쪽수와 맞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출처를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 각 글이 속하는 장을 먼저 밝히고 정리할 수밖에 없다. [   ] 로 묶어서 책의 장을 구분한다.

 

월말 김어준 22년 7월호에서 박문호가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상과 함께 하는 호기심 천국'에서 먼저 이해하고 정리한 다음에, 이곳에 필요한 형태로 보완하도록 하겠다.

 

[ 시작하는 글 ]

 

마음 공부로서의 집필. 무엇을 쓴다는 것이 다산에게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쉽지만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글 쓰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온갖 기억들로 가득한 정신을 가다듬어,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과정, 집필.

 

그렇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일까?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가능할 것이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노래를 배우듯이, 게임을 하듯이, 그렇게 하면 가능하다.

 

쓴 글의 품질은 어떨까? 제대로 된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다산처럼 좋은 글을 쓸 것이고,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면 부족한 글을 쓸 것이다. 좋은 글이거나 부족한 글이거나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똑같다. 최선을 다한 글이기 때문이다. 글을 써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어야 한다면,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을 글을 쓰도록 하면 될 것이고, 노래나 게임처럼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공부한 수준에서 열심히 쓰면 된다. 글은 자기를 관찰하고 정리하는 것이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수단이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그 어떤 마음공부에서도 찾지 못했던 마음의 안정을 집필에 몰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마음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림으로써 마음을 다스렸던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라도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만날 때가 있다. 스스로 초래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혹은 환경 때문에 전혀 뜻하지 않게 맞닥뜨릴 때도 없지 않다.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하기도 어려운 재해도 뜻하지 않은 순간에 다가온다. 누구나 이런 힘든 상황이 닥치면 마음의 고통을 겪고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이때 마음을 바르게 잡을 수 있으면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끝내 마음을 잡지 못하면 휩쓸려 무너진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은 소학 강의다. 안그래도 <소학>을 한 번 읽고 싶었다.

 

"주자는 《논어》 , 《맹자》 , 《예기》  등 백여 권의 고전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추려낸 다음 교육(입교立敎), 인간의 길(명륜明倫), 수양(경신敬身), 고대의 도(계고稽古), 아름다운 말(가언嘉言), 선행善行의 여섯 편으로 묶었다."

 

[ 입교(立敎) ]

 

1.爲學日益 爲道日損 (웨이슈에 리이 wéixué rìyì 웨이다오 리순 wéidào sǔn : 노자 도덕경 48장

   학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이고, 

   도는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이다.

 

   지식은 두루두루 넓고 깊게 공부하여 외우고 종합하는 것이며,

   깨달음은 편견과 아집과 헛된 욕망을 덜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를 더 나아가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혼란스럽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식을 얻고, 지식을 종합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통해 지식이 더 깊어진다.

   삶은 그런 순환의 과정이다.

 

 

2. 博學不敎 內而不出 두루두루 배우되 가르치지 않으며, 갈무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 禮記 > 內則

 

학문의 깊이만 추구하고 폭넓은 배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폭넓게 배우기만 하고 깊이가 없다면 내세울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 예전의 학문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오늘날의 학문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조윤제는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을 예전의 학문에 무게를 두고 해설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의 해석 중에서, 자신을 위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쓰여지는 학문을 하라는 해석이 더 깊은 해석으로 여겨졌다.

 

순자가 했다는 이 말 또한 재미있다.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서 온몸으로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겨우 네 치에 불과하니, 어찌 일곱 자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3.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천륜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믿어서도 안 되며, 정성을 다해 나를 섬기더라도 절대 가까이하지 마라. 끝내 은혜를 배반하고 의리를 망각하니 아침에는 따뜻하게 대하다가도 저녁에는 냉정해지기 때문이다."

 

“신중하라, 한겨울에 내를 건너듯이. 두려워하라, 사방에서 에워싸인 듯이(여혜 약동섭천 유혜 약외사린 與兮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다산은 이 구절에서 앞의 두 글자를 따서 당호(여유당)로 삼았다." 

 

4.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 在正其心

 

5. 자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무늬도 바탕만큼 중요하고 바탕도 무늬만큼 중요합니다.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에 털이 없다면, 개와 양의 가죽과 다를 바 없습니다.”

 

6. 弟子入則孝, 出則悌,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7. “진부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나 지루하고 쓸데없는 주장 따위는 한갓 종이와 먹을 낭비하는 것이다. 직접 진귀한 과일이나 채소를 심어, 먹고살 도리를 넉넉하게 하는 것만 못하다.”

 

[ 명륜 明倫 ]

 

우정은, 친구 즉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우정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서로 공경하며 겸손하게 배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편하게 어깨를 치며 낄낄거리는 것만으로는 우정을 이어갈 수 없다. 함부로 비난하고 가르치려해도 친구가 될 수 없다.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나간다면,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이 나타나더라도 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적이 된다는 것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지 않는 대상이다. 적은 미워하고 배제하고 강탈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여야 할 대상이다. 사람 사이에 적은 없어야 한다. 히틀러는 인류의 적이고, 일제 군국주의자들은 반성하지 않는 적이다. 그들은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2020년대의 한반도에는 친구로 만들어야 할 두 개의 대상이 있다.

 

첫째, 서로 다른 정치의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윤대통령이 이재명과 문재인을 감옥에 넣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윤대통령을 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려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영원히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그들과 다른 정치 철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친구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들도 우리를 친구로 맞이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이상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 하지만, 서로 공경하려고 노력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 박정희, 이승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하다. 그들은 적이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적이 아니다. 우리의 적들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이다. 이 정도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

 

둘쨰, 남북이 우정을 쌓아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남과 북의 사람들은 냉전시대와 전쟁을 통해 적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지금 서로를 죽이려 한다면 서로에게 적이 되는 것이고, 서로를 평화의 동반자로 인정하려고 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36년 동안 노예처럼 착취하고 개돼지처럼 죽였던, 일본과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상황을 돌아보자. 말과 역사와 전통을 함께 한다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공경하고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친구가 될 수 있다. 내가 친구가 되려고 해도, 김정은이 우리를 적으로 여겨서 끊임없이 도발을 하기 때문에 나도 그를 적으로 대하면, 남과 북은 영원히 친구가 되지 못한다.  내가 북을 충분히 경계하면서 친구로서 끌어안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북이 우리를 친구로 대하려는 마음이 생겼을 때 비로소 친구가 될 수 있다.  

 

8. “근래에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천박해져서 서로 기뻐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지내는 것을 뜻이 맞는다고 하고, 원만해서 모나지 않은 것을 서로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우정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오래도록 우정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서로 공경해야 한다.” 

 

9. “오늘날은 부드러운 태도로 아첨 잘하는 사람을 사귀며, 서로 어깨를 치고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을 의기투합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한 마디 말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방 화를 낸다. 벗을 사귈 때는 서로 몸을 낮춰 겸손한 태도를 가지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벗 사이에 공경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만이 날로 친해져 서로 발전시켜주는 효과를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다.” (장자전서)

 

[ 경신 敬身 ]

 

10. “세상을 뒤덮는 공로도 ‘뽐낼 긍矜’자 하나를 당하지 못하고, 하늘에 가득 찬 허물도 ‘뉘우칠 회悔’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채근담 중에서)

 

멋진 말이다.

 

긍은 긍지 矜持, 실패를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입신양명하여 생기는 오만한 마음도 경계하며 누를 수 있는, 듬직한 힘이다.

회는 참회 懺悔,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반성하고 사죄함으로써 더 이상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힘이다.

 

말씀대로 실천할 수는 없겠지만 가슴에 새겨둘 만하다.

 

11. "재물을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베푸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도둑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고, 불에 타버릴 걱정도 없고, 소나 말이 운반해야 할 수고로움도 없이 자기가 죽은 뒤까지 가지고 가서 천년토록 꽃다운 명성을 전할 수 있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 중에서)

 

멋진 방법임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모아야 이렇게 멋지게 베풀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가끔 친구들을 보면서 '참,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2. "노나라 애공이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안회라는 제자가 배우기를 좋아해서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단명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그 후로는 아직 배움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불천노 불이과 不遷怒 不貳過’라는 유명한 성어가 실린 고사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모두 배움이 부족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공자의 답변이 이해하기 어렵다. 어려우면서도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겸손하여 배움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의 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배울 것이 무엇일까를 찾느라, 화를 낼 틈이 없을 것이다.

 

13. "악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함께하기에 피할 수 없으니 어두운 곳에서도 항상 스스로를 반추하라. (중략) 어떤 사람이 아홉 가지 일은 모두 악한데 한 가지 일이 우연히 착하다 해도 그는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또 아홉 가지 일은 모두 착한데 한 가지 일이 우연히 악하다고 해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항아리가 그 전체는 모두 깨지고 주둥이만 온전하다 해도 깨진 항아리라고 하며, 그 전체는 온전한데 오직 구멍 하나만 뚫렸어도 깨진 항아리라고 합니다."

 

혼자 있을 때, 샤워할 때나 운전할 때, 반성을 하다 보면 자꾸 틱이 발동을 한다. 소리를 지른다. 왜? 부끄러워서.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는 잘못들이 있다. 험한 말투와 욕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분노, 사소한 욕심들, 욕망들, 절제되지 않은 술 등등.  아홉 가지를 잘 하고도 한 가지를 잘못해서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분하지 않다. 스스로 부끄러워 쏟아지는 틱 증상들을 보면.

 

고루하다, 다산의 이야기들은. 인간을 너무 옥죈다, 야만에서 이제 막 벗아나고 있는 짐승들일 뿐인데. 먼 미래를 놓고 보면 분명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아니다. 왜?

 

1) 생산력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 안락한 생활을 위해 가져야 할 것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짐승처럼 싸우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들을 짐승처럼 다룬다. 생산력의 고도화를 위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2)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 70억이 넘는다. 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작은 지구 위에서 신선과 같은 삶을 바라며 살고 있는데, 어떻게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한국과 일본처럼 인구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야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이 발휘될 수 있다. 사람 귀한 줄 알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농원에 있으면 사람이 그립다가 부천에 가면 사람들이 걸리적거린다. 지금 우리들은, 아마도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걸리적거릴 것이다.

 

14. "“군자는 때에 맞게 행동하고, 소인은 기탄이 없다(군자이시중 소인이무기탄야君子而時中 小人而無忌憚也)”라고 실려 있다. 기탄이 없다는 것은 거리낌이 없다는 것으로 때와 상황에 맞지 않게 나서는 것을 말한다."

 

15. “남을 사랑하는데 친해지지 않을 때는 자신의 인자함을 돌아보라. 남을 다스리는데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자신의 지혜를 돌이켜보라. 남을 예로써 대하는데 화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이켜보라. 행했는데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스스로에게 돌이켜 그 원인을 보아라. 내가 바르면 천하가 내게 돌아온다.” 

 

반성하는 방법은 그렇다.

 

16 “마음에 도를 구하고자 하면서 입과 몸의 봉양이 남만 못함을 부끄러워하면 그 식견과 취향의 비루함이 심하니, 어찌 함께 도를 논할 수 있겠는가?"

 

나는 큰 차를 사고 싶은데, 작은 차를 사자는 그리미가 대비되는 장면이다.

 

17. "손가락이 남들과 다른 것은 싫어할 줄 알면서, 마음이 남들과 같지 않은 것을 싫어할 줄 모르니, 이것을 두고 일의 경중을 모른다고 한다."

 

내 마음이 곧 다른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50평생을 살았다. 이제 비로소 알겠다. 나는 나의 기대와 희망 속에 살고 있다.

 

[ 계고 稽古 ]

 

18. "군자에게는 종신토록 근심하는 것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근심은 없다. 걱정하는 일이란 이런 것이 있다. 순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순은 천하에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일개 시골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근심할 만한 일이다. 근심한다면 어찌해야 할까? 순과 같이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 군자는 다른 근심할 것이 없다."

 

19. "비록 폐족이 되었다고 해도 시골로 숨어들면 세상과 단절이 되고 만다. 점차 타성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게 되므로, 더 큰 이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보고 듣는 것이 많은 곳에 머물러야 한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시대적 상황을 개관하고, 문화적 안목을 잃지 않고, 재도약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어야 한다."

 

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