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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친구와 바람에 날린 비닐을 다시 씌우다_110408~0411 el ocho de abril el viernes_Восемь апрель Пятница

나이가 들수록 생활이 안정되어가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옛날에 고생하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운과 실력이 조화를 이루어 고난을 극복하고 현재에 이르는 기나긴 이야기다. 이런 긴 이야기를 하려면 술도 필요하고 일도 필요하고 휴식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무일농원이다. 이제는 농원이라 이름붙이기는 어렵고 가원이다.

 

여유를 찾은 친구도 전원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금해서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언제나처럼 일은 최소로 줄이고, 즐거운 가원가꾸기에 매진하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일터나 근거지에 가까운 곳에 가원을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가원이 가족들의 근거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방문 자체가 일이 된다. 가원에 가고 사는 일이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께서 커다란 토종닭으로 백숙을 해 주셔서 배가 빵빵하도록 먹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도저히 일을 나갈 수가 없다. 휴식을 취하며 친구의 판소리를 듣는다. 심봉사 눈뜨는 장면과 갈까보다. 지난 번보다 실력이 좋아졌다. 야외에서 듣는 것보다 우리 거실처럼 높은 천정에 나무 흡음재가 달려있는 집이 훨씬 듣기에 좋았다.

 

바람에 날아간 비닐을 다시 덮는다. 지난 월요일에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을 할 수 있다. 힘들고 거친 숨이 몰아진다. 농부들은 늘 이런 일을 한다. 묵묵하게. 그들의 과묵함은 안타까움이면서도 견디는 힘이다. 신이 나지 않으니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일하고 났더니 더 이상 날아간 비닐은 없다. 힘든 일을 힘들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함께 해 준 친구가 고맙다. 그의 몸매가 아름답지 않아 걱정이다.

 

이상한 것이 배가 꺼지지 않는다. 소화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다. 샤워를 하고 차가운 물로 더운 몸을 달랜다. 신기한 것은 이제 찬물과 찬 커피를 마셔도 속이 불편하지 않다. 그동안 꾸준히 뜨거운 물을 마심으로써 좋지 않던 속을 잘 달래 준 모양이다.

 

친구를 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가면서 사는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누었다. 인간은 수다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우연히 후배가 전화를 걸어와 또 한참 동안 서로를 위로하였다.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든든한 마음이 든다. 후배의 딸은 잘 견뎌내고 있지만, 가끔씩 인종 차별을 느낀다고 한다. 독일에서 5년이나 살았으면 그들의 문화에 잘 적응하였을텐데도 차별받는 상황은 무감각할 수 없다. 그때만다 달라들어서 적극 항의하는 것이 맞는지 참는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외국 유학은 포기하는 것이 좋은지도 알 수 없다. 세계는 교류해야 하는데, 차별을 받으면서까지 외국에서 공부를 해야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잘 이겨낸 사람들의 위대함은 알겠는데, 그 고난을 무릅쓸 필요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연은 차별하지 않고 고통과 동시에 기쁨을 준다.

 

월요일(11일) 오후에는 강낭콩을 심었다. 우리 씨앗이 없어서 이웃집에서 빌려 심었다. 두 줄을 다 심지 못해서 아쉽지만 무엇이든지 맞춰서 심기는 어렵다. 날이 뜨거워서 5시까지는 땀이 흘렀다. 이제부터는 새벽에 일어나서 일해야 할 모양이다. 옥수수를 심을 구멍을 파 놓는 것까지 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로 빵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이미 빵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밥으로 사는 나이지만 논을 팔고 났더니 식량 위기가 오는 것이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전쟁이 길어지고 많은 희생이 났다. 푸틴과 젤렌스키라는 두 전쟁범죄자는 처벌되어야 마땅한데, 어느 쪽도 처벌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희생이 크다면 차라리 러시아가 소형 전술핵을 사용해서 아예 굴복시킨 것은 어땠을까. 핵 폭탄이 터지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두 달이 넘도록 시민들이 죽음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 핵폭탄은 안되는데, 길고 고통스러운 재래식 전쟁을 가능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전쟁을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을까. 푸틴과 젤렌스키를 지지하는 각각의 국민들은 이 고통을 어떻게 감내하고 있을까. 끔찍하다.

 

전쟁은 답이 없다.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누군가와 이재명의 호소가 과연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