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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젊은 삶은 끝난 것이 아니다_211231 el treinta y uno de diciembre el viernes_тридцать один Декабрь Пятница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쉽다. 

 

대금은, 고음에서 저음으로 가면서 연주하는 것은 쉬운데, 저음에서 다시 고음으로 가면서 연주하기는 어렵다. 고음은, 정신을 집중하고 아랫배와 입술 주변 근육들에 최대한 힘을 주어야  만들어 낼 수 있다. 고음(역취라고 한다)을 10분 이상 연습해 보면, 입술 주변 근육이 부들부들 떨린다. 소리도 흩어지고, 연습을 계속할 수 없다. 고음은 얻기가 매우 어렵다.

 

대금 전공자들은 강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편안하게 고음을 낼 수 있다. 저음과 고음이 어우러지는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다. 근육들이 편안한 상태에서 촛불 하나를 끌 수 있는 힘으로 소리를 내는 저음(평취라고 한다)만으로는 대금의 맛을 제대로 낼 수가 없다. 아무나 대금연주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강한 근육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질 수 있다. 대금을 취미로 하시는 분들 중에도 전공자들 수준으로 근육을 만드는데 성공하신 분들이 많다. 연습 또 연습으로 가능했다. 무거운 대금을 들고 "근육을 단련하는 고통"을 참으며 "아름다운 음악"을 지향한 결과다.

 

대금을 불기 시작한지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나는 아직 이 근육을 만들지 못했다. 고통과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통을 끌어안고 근육을 한 번 완성하고 나면, 유지하는 것은 대체로 쉽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켜서 역취를 내고 나면, 평취와 저취(아주 낮은 소리)는 소리내기가 매우 쉽다. 그런데, 근육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취와 저취로 연주를 하다가 촛불 열 개를 끌 수 있는 힘으로 소리를 내야 하는 역취로 올라가면 음악이 망가져버린다. 평취에서 긴장이 풀어진 상태로 연주가 이어지면, 입술과 몸은 편한 상태에 금방 적응해 버려 역취로 가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다. 젊음은 삶을 살아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리하여 얻어야 할 것을 어느 정도 얻고 편안해지면, 최선을 다했던 삶의 근육들은 고통받는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젊음으로, 아름답던 도전들의 순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늙는 것이 아니라, 늙어버린다.

 

삶을 고통 속에서 계속 단련한다면, 젊고 순수할 수 있다. 그러나, 파우스트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하는 순간, 삶을 아름답게 가꿔주던 근육들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도전하는 젊음을 가질 수가 없고, 삶의 아름다움도 사라진다.

 

그러나,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도전하는 모습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젊음은, 끝난 것이 아니다. 1년 후 또는 10년 후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이 들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은 삶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과 함께 삶을 즐겨라. 삶의 여유는 누려도 된다. 오직 고통을 포기하지만 말자.

 

젊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멋진 삶을 위한 근육을 단련하는 고통"을 끌어안고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자.

어렵지만, 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