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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소농들의 설 자리가 없다_210518 el dieciocho de mayo el lunes_восемнадцать май понедельник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주말에 광주에 참배를 갈 계획이다. 친구 두 명이 함께 참배하기로 해서 더욱 든든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의 오월 영령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분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애국심을 본받고 계승해야 한다.

 

광주 5 18 기념 공원에 가서 참담한 이야기를 들었다. 1980년 5 18 당시에 총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중 몇몇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어린 나이에 총상을 입고 잘려나간 다리가 자꾸만 자라나서 매 2년마다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어린 그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결국. 어떻게 이 원한을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선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11시 반에 음성에 도착했다. 8시 반에 간신히 눈을 뜨고 9시 반에 논으로 갔다. 물을 빼느라고 논두렁의 일부가 심하게 훼손되었다. 음. 운동할 거리가 또 생겼군. 써레질 상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좋은 기계로 했으면 훨씬 잘할 수 있는데, 기계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주고 낮은 품질의 일한 결과를 얻어야 한다. 소농들이 사라지는 근본 이유다.

 

금왕농협 육묘장으로 가서 소담이 모 65판을 받아다가 논둑에 깔았다. 한 시간이 걸렸다. 모 상태가 대체로 작년처럼 좋았으나 대여섯 개는 누렇게 잎이 떴다. 모판 하나는 뭉개져서 틀을 반납하면서 바꿔왔다. 이어서 삼성 덕정 육묘장으로 가서 백옥 찰벼 모판 50개를 가져왔다. 작년 모 보다는 상태가 매우 좋았다. 마음에 든다. 모판도 튼튼하다. 두 시간에 걸쳐서 모판 작업을 하고 났더니 허벅지 근육이 흐물거린다.

 

5시부터 준비를 해서 논에 도착하니 5시 반이다. 메벼 논 입구를 정리하다가 배수로 터 놓은 것을 막고 나니 벌써 6시가 넘었다. 흑미 논의 일부를 정리하니 7시, 다시 메벼 논의 서쪽 논바닥을 일부 고르니 8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논 바닥의 흙이 드러난 곳에서 흙을 긁어다가 깊은 곳을 메꿔 나가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엄청나게 깊지는 않다. 다만 논가에 흙이 너무 쌓여 있는 곳이 많다. 긁개로 흙을 긁어오려고 해도 너무 흙이 많아서 힘이 들다. 삽으로 해 보았으나 달라붙어서 잘못하면 허리 다칠 지경이다. 포기할 곳은 얼른 포기하고 쉽게 작업할 곳만 찾아다니며 작업했다.

 

해가 지는 것이 반갑다.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반장한테 전화를 했더니 논에 물 대지 말고 모판을 말려 달라고 한다. 모는 내일 오후에 심기로 했다. 반나절을 더 논바닥을 고를 수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80년대 그 후의 삶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