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제법 쌀쌀하다. 깨어났지만 일어나지 않고 뒹굴거리다가 마을회관 화장실을 다녀와서 한 시간 가량 공부를 하고 났더니 공사하는 분들이 들어온다. 어머니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공사 계획을 확인한 다음에 가방을 들고 나왔다. 마을 입구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공부를 하다가 점심 겸 해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음성에 다녀왔다.
이발을 하고 돌아왔더니 공사는 마지막 작업이다. 4시가 다 되어간다. 공사가 끝날 때쯤 해서 친구와 후배 부인이 함께 들어온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 5시가 다 되어 친구와 함께 참깨를 심으러 갔다. 꽤 많은 양을 심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둘이 했는데도 작업 속도는 매우 느리다. 7시가 다 되었을 즈음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그냥 일을 하려다가 참깨가 젖어버리면 안 되겠기에 철수한다.
참깨는 언제나 힘이 든다. 모종을 하지 않으면 5개 정도의 씨앗을 심어서 2~3개의 새싹만 남겨도고 제거해 줘야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런데 이 숫자를 맞추기가 정말 어렵다. 작년의 경우에는 3~4개의 씨앗을 넣었더니 새싹이 나오지 않은 확률이 30%는 되었다. 결국 모종한 참깨를 다시 심어야 한다. 새싹이 나온 곳도 너무 많이 나온 곳은 전부 솎아주기를 해야 한다.
이번에는 혁신을 했다. 일단 서서 구멍을 뚫는다. 장갑 낀 손으로 씨앗을 앉힐 위치를 적당한 깊이로 골라준다. 앉거나 허리를 구부려 작업한다. 파이프를 대고 씨앗 5~7개를 구멍에 흘려 넣어준다. 계속해서 서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씨앗 바구니를 땅바닥에 내려놓아야 해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해야 했다. 내일은 씨앗 주머니를 옆에 차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흙을 살짝 흘려서 씨앗을 덮어주는 것으로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심으면 일단 무릎과 허리가 덜 아프다. 기천문으로 단련된 친구는 쪼그리고 앉아서 씨앗을 심어도 괜찮다고 한다.
친구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다. 비전문가가 이렇게 씨앗을 심어도 되느냐는 것이다. 괜찮다. 정성 들여 심으면 농사 초보의 씨앗이 훨씬 더 좋은 결실을 맺는다.
저녁을 먹으며 친구 딸 결혼한 이야기, 우리 식구들 사는 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공부이야기를 시끄럽게 떠들다가 샤워실로 사용할 마을회관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대학은 점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학원은 더더욱. 경쟁력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 새로운 교육의 장이 펼쳐질 수 있다. 학생 인구의 30%가 줄어들고 앞으로 90년대의 절반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60%의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대학원은 더 많이. 그 와중에도 학위 장사와 학위 세탁으로 돈을 버는 대학들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하루 재미가 있을 것이다. 곧 사라져야겠지만. 동서양 고전을 아우르고 인문학에서 첨단과학까지 폭넓은 지식과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기관만이 몇몇 대학과 함께 살아남을 것이다. 2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게 될 것은 분명하다. 아예 대학이 필요 없고 교육 내용만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훌륭한 강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