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원에 대한 입장은 호불호가 갈린다. 인간은 원래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자유로운 유목민이지만 nomad, 결국 정착해야 한다. 가족과 친구들 때문에 유목민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유목민으로서의 자유를 잃을 필요는 없다. 동생은 가원을 소유하기보다는 여기저기 아름다운 곳의 집과 땅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고 한다. 젊고 건강한 시절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내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여섯 달 치 임대료만 가지고도 200㎡ 내외의 가원을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노마드 시기에 가장 좋아하는 곳에 가원을 마련해 두었다가 노마드가 끝나고 나면 정착하면 되는 것이다.
가원은 부의 재분배를 통해 모든 가정의 생활 안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반이다. 부자들은 아름답고 멋진 곳에 가원을 소유하여 별장처럼 운영해도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무상 제공하는 가원에서 생존 문제 해결을 위한 터전을 확보한다. 소유한 가원은 매매가 되어 재테크의 수단으로도 활용하겠지만, 무상임대로 얻은 가원은 재테크의 대상이 될 수가 없어서 투기가 불가능해진다. 모든 시민들이 행복을 위한 균등한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가원이 꼭 필요하다.
아들들은 서울에서 우리는 부천에서 출발하여 일죽터미널에서 만나 족발과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농원으로 들어갔다. 동생 부부와 누나가 먼저 와서 어머니와 저녁 식사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10시가 다 되었다. 마침 연태 고량주 한 병을 동생이 사 가지고 왔기에 족발과 회, 소라 주변에 둘러앉아 나눠 마셨다. 8명이 모였다. 일하느라 조카는 내려오지 못했다. 누나가 그동안 80만원의 임금을 받고 일을 했는데, 120만 원을 받게 되었다며 앞으로 가족회비를 5만 원씩 내겠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공동 회비가 늘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 교사 노조가 안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대는 올 것이다.
그리미와 우주신의 생일 축하로 아침을 시작했다. 양가 집안의 어른들이 노환으로 계속 힘들어 하시니 마음이 무겁다. 비가 내린다고 아들들이 좋아한다. 일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동해 바다를 가자고 제안했으나 날씨가 나쁘고 너무 멀어서 힘들단다. 어머니는 동생과 닭을 사러 나가시고, 우리는 앉아서 놀 궁리를 하다가 비가 그쳐서 일단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오늘 과제의 핵심은 오일 스테인 제거 작업이다. 지나 수요일에 혼자 작업을 하다가 몸살이 날 지경이 되었고, 발목 관절이 나가서 하루 동안 걷지를 못했다. 남자 네 명이 돌아가면서 작업을 했더니 한결 수월했다. 게다가 작업 기술도 늘어났다. 처음에 나는 강력한 물살로 점사를 했는데, 천재의 제안으로 선사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이 높았다. 게다가 오일 스테인은 한 번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물을 분사해야 우러난다. 군산 삼촌이 보내 주신 고압분사기가 제대로 한몫을 톡톡하게 해 냈다.
논에 널부러져 있던 부직포를 걷어서 하우스 앞 밭둑에 덮어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았다. 오일 스테인을 제거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지만 다음 주에 밭을 갈아서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누나와 동생이 비를 맞으며 작업을 시작했고, 쉬고 있던 천재가 합류하면서 일의 진행 속도가 빨랐다. 부직포 걷는 작업이 매우 먼지가 날리는 일인데, 이슬비를 맞으며 하니까 먼지가 덜 날려 훨씬 수월해 보였다. 누나는 한 가지 일이라도 더 해 주고 가야 해서 부지런을 떨었는데, 옆에서 지켜보자니 감기 걸릴까 걱정이 되었다.
돌탑을 쌓는 과제도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었다. 철망으로 된 담장 틀을 사서 그 안에 돌과 흙을 채워 운치 있는 담장과 화분을 만들기로 했다. 가격도 저렴해서 매우 좋은 제안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담장의 설치 위치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한 번 설치하고 나면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려우므로 아주 좋은 위치여야 한다. 일단 첫 번째 드는 생각은 개복숭아 나무 옆이다.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으며 이것저것 의논을 한다. 집 외벽을 칠하는 과제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외벽색의 결정이었다. 흰색, 민트색, 투명색 등등. 이건 정말 어렵다. 추첨을 통해 아예 그 사람이 원하는 색으로 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장에 가서 자목련나무도 한 그루를 사 왔다. 일하느라고 심지를 못했다. 오후 2시부터 오일 스테인 제거 작업을 했다. 오후 6시 반까지 이슬비와 차가운 날씨를 견디며 교대로 열심히 한 결과 동쪽과 북쪽 외벽을 제외하고 전면부의 오일 스텐인을 모두 제거하였다. 몸이 으스으슬했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났더니 안정이 되었다.
제수씨와 그리미는 하우스 안의 시금치를 전부 캐서 다듬어 가정별로 나누어 놓았다. 남는 시간에는 쑥을 캐서 저녁 시간에 닭도리탕과 함께 먹으니 향긋해서 좋았다. 다들 봄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진도에서 올라온 수선화가 자리를 잘 잡아 주어서 모두에게 기쁨을 주었다. 작은 꽃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부드럽게 흔들린다.
집 앞의 땅을 구입하는 과제는, 일단 우리 논밭이 팔리고 나서 여유자금이 생긴 다음에 구입하기로 했다. 만일 땅을 먼저 구입해야 한다면 누나와 천재, 공금에서 자금을 융통하고 1%의 이자를 공금에 지불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땅은 천 평이 아니므로 300평만 사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오락시간. 보드게임 도블과 낱말 맞추기를 하려고 했는데, 도블이 워낙 강력해서 도블만 하다가 끝났다. 웃느라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결국 나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다음 가원의 날에는 낱말 맞추기를 최우선 오락으로 하기로 했다.
역시 인간은 놀아야 한다. 일만 열심히 했으면 힘이 들었을텐데, 깔깔거리며 웃고 났더니 일한 기억은 사라지고 즐거운 기억만 남았다.
부천으로 돌아와서 아들들에게 5만원씩 노동 임금을 지불했다. 농원에서의 일은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굳이 시간을 내어 참여했으므로 격려하는 차원에서다. 게다가 용돈도 주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용돈을 대신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200㎡ 내외의 가원을 소유하거나 무상임대하는 그날까지 계속 즐거운 '가원의 날'을 만들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