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정신노동만을 한다면, 깨달음이 적을 것이다. 연역으로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없고, 귀납으로만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념에 대한 깨달음은 육체노동으로 자연과 접촉하면서 얻을 수 있다. 밤에 별들을 관찰하면서 꾸준히 기록을 해 나가면서 놀라운 깨달음을 얻은 것도 결국은 잠을 포기한 육체노동의 결과다. 육체노동은 자연과의 교감이다. 그것을 즐김으로써 인간은 행복한 깨달음의 세계에 살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물질의 세계에는 안락함이 있다. 그 편안함에 길들여지게 되면 개나 고양이처럼 무욕의 행복에 빠져 살 수도 있다. 인간의 길을 갈 것인가 개와 고양이의 길을 갈 것인가는, 인간이기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어느 선택도 비난받을 수 없는 각자의 길이다. 그것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다.
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02 환경 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한국어 판 서문에 쓴 글이 갑자기 생각난다. 모든 고유 문자들의 다양성에 기뻐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한글에 대해서도 각별한 기쁨을 느꼈던 모양이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외국어가 단 하나도 없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기쁨은 각별하다.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가장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는 그동안 그토록 많이 들어왔던 한글을 가는 곳마다 보면서 세종이 발명한 그 유명한 문자를 읽는 방법을 배웠던 일이었습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한글은 전세계 언어학자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고안된 문자 체계라는 어쩌면 당연한 칭송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9쪽)
뉴기니 섬에서 배를 타고 건너간 사람들이 뉴질랜드, 채텀제도, 피지, 통가, 마르키즈제도, 소시에테제도, 하와이, 이스터섬까지 퍼져 나가는데 2천 년 정도가 걸렸으며, 이들 태평양의 섬들을 폴리네시아라고 한다. 뉴질랜드만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덩어리고, 나머지 섬들은 산호초가 자라나서 만들어진 환초섬이거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뉴기니 섬의 사람들은 폴리네시아인이 아닌 모양이다. 더 읽으며 확인해야 한다.
재미있는 우연은, 아메리카 대륙의 초입인 알래스카에 인류가 발을 디딘 것이 BC 12,000년이고, 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섬에 인류가 최초로 발을 디딘 것은 BC 1,200년의 일이다.
"그 섬들은 배로 건너갈 수 있는 범위에서 훨씬 벗어난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가 BC 1,200년경 뉴기니 북쪽 비스마르크제도에서 농경, 어업, 항해 등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일부 섬에 도달할 수 있었따. 그들의 후손은 그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사살상 태평양에서 주거가 가능한 모든 육지에 이주하여 살았다. 그러한 과정은 AD 500년에 이르러 거의 완수되었으며 1000년경 또는 그 직후에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몇 개의 섬에도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75쪽)
다양한 환경에 놓인 폴리네시아의 섬들이 인간의 진화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환경에 따라 수렵채집민이 되기도 하고, 복잡한 정치조직을 갖춘 농경 사회로 발전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보다 인구가 많고, 방글라데시 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과 약탈도 벌어졌다. 1835년의 마오리족에 의한 모리오리족의 약탈과 살육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마오리는 왜, 어때서요라고 반문한다.
"18세기에 유럽인들이 들어올 무렵 통가의 추장 사회나 국가는 이미 제도와 제도를 연결한 하나의 제국이 되어 있었다. 통가제도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섬들로 이루어졌고 몇 개의 큰 섬들도 지형이 분열되지 않았으므로 각각의 섬은 한 명의 추장을 중심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통가제도에서 가장 큰 섬(통가타푸 섬)의 세습 추장들이 제도 전체를 통일했고 결국에는 제도 바깥에 있는 섬들도 최고 800km 가량 떨어진 거리까지 정복했다. 그들은 피지 및 사모아와 장거리 교역을 했고 피지에는 통가인의 정착촌을 만들었으며 피지의 일부를 공격하여 정복하기 시작했다. 이 해상 원시 제국의 정복 및 통치 활동을 수행한 것은 150명까지 탈 수 있는 대형 카누를 갖춘 해군이었다." (87~8쪽)
미국이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하와이를 정복하는 부분을 읽을 때 매우 슬펐다. 평화로운 하와이 섬을 그렇게 군사력으로 정복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정복은 미국에 의해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하와이가 미국의 한 개 주로서 지위를 충분히 누린다면 식민지 정복과는 다른, 노예사냥과는 다른 그런 일이었다. 하와이로서는 오히려 행복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은 제국주의는 모든 세계의 공통 속성이 아닐까. 비록 야만스런 일이지만.
"유럽인들이 들어온 이후 하와이 섬의 왕 카메하메하 1세는 유럽의 총기와 선박을 사들여 마우이 섬과 오아후 섬을 차례로 정복함으로써 가장 큰 섬들을 신속하게 통합해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독립을 지킨 카우아이 섬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우아이의 추장이 카메하메하와 협상 후 합의를 보게 되어 마침내 하와이제도의 통일이 완성되었다." (88쪽)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발전이 단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생산의 여유가 생기고 노동하지 않는 전문 집단이 생겨나면서 제국과 문자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글이 위대한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온 결과이다. 좋은 위치에서 야만을 벗어나 문명으로 발전해 갈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폴리네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도 불과 3200년 동안 발전한 것이 고작이다. 인간이 가장 늦게 살기 시작한 대륙(남북아메리카)에서도 최소한 1만 3천 년이 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만약 몇천 년 정도만 더 있었다면 통가와 하와이도 어엿한 제국 수준에 이르러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싸웠을 것이고 고유의 문자를 만들어 제국을 다스렸을 것이다." (91쪽)
03.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오늘까지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과 노무현,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정은과 트럼프의 행보가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이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통령이나 수령 한 사람쯤 사라져도 국가는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었다. 너무도 유명한 사건을 돌이켜보면.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의 생포와 처형 사건이 1533년에 피사로에 의해 저질러졌고, 잉카제국은 멸망했다.
"168명의 스페인 오합지졸을 거느린 피사로는 낯선 땅에 들어섰다. (중략) 아타우알파는 수백만의 백성이 있는 자기 제국에 버티고 있었으며, 더구나 다른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막 승리를 거둔 8만 대군이 그를 둘러싼 형국이었다. (중략 /피사로는 엄청난 양의 황금을) 몸값으로 받은 후에 약속을 저버리고 아타우알파를 처형하고 말았다." (93쪽)
전쟁이 벌어지면 일단 이겨야 한다. '송양지인'은 한가한 소리다. 비겁하고 비열한 것도 없다. 화학무기, 원자폭탄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기더라도 전쟁의 끝은 끔찍한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현대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아타우알파와 피사로의 전쟁은 온갖 비열한 것의 총동원이었다. 평화를 가장하여 비무장을 유도하고, 신앙을 가장하여 기습공격의 명분을 만들어냈다.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했으며, 포로에 대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매우 슬프고 치가 떨린다.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평화를 이용해 기습공격을 하려는 또 다른 피사로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정치 환경에서도.
아즈텍이나 잉카문명의 멸망은 슬픈 일이지만 야만의 시대에 벌어진 어쩔 수 없는 비극이었다. 인간은 탐욕스러워 제국을 건설해야 했고, 더 많은 노예와 안락을 추구하는 사피엔스의 탐욕은 끝을 알 수 없다. 노자에 이런 말이 있다. 위학일익하고 위도일손한다. 배우고 익히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추구하면 나날이 스러진다. 인간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욕망을 포함한 모든 것은 나날이 커져 간다.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그 욕망을 감당할 수는 없다.
"피사로가 성공을 거두게 한 직접적 원인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 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문자 등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는 그러한 직접적 요인들을 함축하고 있다."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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