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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그럼 멈추지 맙시다_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 01_201218 el dieciocho de diciembre el viernes_восемнадцать Пятница

TV에서만 보던 칼 세이건을 드디어 책으로 만난다. 역시 오랜 숙제를 푸는 기분이다. 단순히 배우 기질을 갖춘 과학자라고 생각했는데, 편집자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조금 놀라웠다. 과학은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 과학자는 결코 천재들이 아니라고 주장한 파인만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칼 세이건은 과학자였다. (중략) 벽이란 과학을 신비화함으로써 그 보물을 과학자 이외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게 하는 전문 용어의 벽일 때도 있었고, 또는 과학의 계시를 우리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우리 영혼 주위를 에워싼 벽일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이런 높디높은 벽으로 가로막힐 때마다, 그는 마치 현대의 여호수아처럼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그 벽을 무너트리려 노력했다. (중략) 우리가 다른 모든 생물과는 별개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주장이야말로 무엇보다도 큰 비극을 낳는 주장이라고 보았다." (5~6쪽, 편집자 서문 중에서)

 

칼 세이건이 '자연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 Gifford Lectures on Natural Theology'의 녹취록과 함께 보관했던 메모에는, 라이프니츠가  '자연과 은총의 원리 Principles of Nature and Grace'에 써 놓은 유명한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신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막아 버리는 벽이 되어야 하고, 인간은 답을 구할 수 없으므로 신에 의지해 탐구를 멈춰야 한다는 라이프니츠의 메모. 그에 대해 칼 세이건이 붉은색 펜으로 답을 달아 놓았다.

 

"그럼 멈추지 맙시다." (14쪽, 편집자 서문 중에서)

 

"어째서 무(nothing)가 아니라 뭔가(something)가 존재하는가? 왜냐하면 '뭔가'보다는 '무'가 더 간단하기 때문이다. ....... 이것이야말로 우주의 존재에 대한 충분한 이유(충족 이유)가 되며 ..... 그 외의 다른 이유는 필요가 없는 이것은 .....반드시 필연적인 존재이어야 하니,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멈출 수 있는 충분한 이유(충족 이유)를 지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3쪽, 편집자 서문 중 라이프니츠의 신과 신이 세운 벽의 필요성에 대한 구절)

 

자연신학이 natural theology 무엇이기에 수많은 학자들이 이에 관한 강연을 했을까 궁금했다. "기적이 아니라 과학의 뒷받침을 받는 신학"(20쪽, 옮긴이 일러두기 중에서)이란다. 그럴싸한 개념이다. 원래의 강연 제목은 The search for who we were다.

 

1강 자연과 경이

 

플루타르코스의 인용문이 참으로 그럴싸하다.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라면 무신론의 낭떠러지와

 미신의 늪 사이에서 아주 힘든 길을 나아가게 마련이다." (21쪽)

 

미신은 '증거없는 믿음'이고, 가짜 신을 주장하는 사람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진 신이 미신이다. 종교는 미신과는 달라야 한다. 칼라일과 아인슈타인은 우주에 대해 경이롭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신을 경배하는 예배고, 우주를 바라보며 갖게 되는 믿음이(종교가) 과학 탐구의 가장 강력한 동기라고 한다. 종교가 곧 과학 탐구의 동기라는 것이다. 

 

거대한 대도시 서울을 짓고 운영하시는 하느님께서 그 광대한 서울에 떨어져 있는 좁쌀 한 알 같은 지구의 일을 관장하시기 위해서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시고 원죄를 속죄하며 기도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일까. 정말로 하느님을 경배한다면, 하느님이 창조한 거대한 서울의, 끝을 알 수 없는 모르는 것 투성이의 우주를 바라보며, 호기심을 키우고, 지성을 이용해 탐구하며 경이롭다고 찬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만일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느 날 지구 근처까지 커져버린 태양이 폭발함으로써 사라져야 할 우리 모든 생명체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과학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 비록 40억 년 후에나 일어날 일이지만 말이다. 칼 세이건의 생각이다. 멋지다.

 

"혹시나 우주를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겸손 부족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우주와 대면할 때 겸손이야말로 유일하게 정당한 반응일 것이라는 데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겸손이 우리가 경외하는 우주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런 본성을 탐구한다면, 우주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무지나 자기기만이 아니라, 진실에 근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50~51쪽)

 

Star Size Comparison 2 - YouTube : 참 아름답게 잘 만들었다. 순간. 이것을 안다한들 나는 아름답다는 느낌 말고는 또는 하느님이 정말 아름답고 거대하게도 만드셨다는 생각 말고는 어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더 더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 걸까. 너무 거대해서 차라리 도망치고 싶은 공포.

 

 

 

2강 코페르니쿠스로부터의 후퇴 : 현대의 자신감 상실

 

과학의 세계가 어려운 것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구의 운동, 달의 운동, 태양과 빛, 추운 고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의 일상 경험과 완전히 반대로 또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지난 57년 동안은 그런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것이 인간의 첫 번째 특성이다.

 

"과학의 역사, 특히 물리학의 역사는 부분적으로나마 우주에 대한 일상적 경험을 보호하려는 우리의 자연적 성향과 이러한 인간의 성향에 불복하는 우주 간의 긴장의 역사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57쪽)

 

태양과 그 행성들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한 장의 사진 또한 처음 보는 것으로 너무 멋지다.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 뭔가. 이 그림과 이론은 뉴턴의 하느님의 설계이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원래는 불규칙한 형태를 가진 성간운이 회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력에 따라 수축합니다. 즉 자체 중력에 끌려 들어가는 거죠. 각운동량 보존 법칙 때문에 성간운은 납작해져서 원반 모양이 됩니다. 회전축을 따라서는 원심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중력 수축을 막지 못해 더 많이 수축하고 회전 평면으로는 원심력이 작용해 중력을 상쇄해 수축이 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중력의 불안정성이 다수의 물체들을 생성하는데, 이 물체들은 이후 충돌을 통해 합쳐져서 먼저보다 적은 수의 물체들을 생성하게 됩니다. (중략) 궤도상에 남는 물체들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됩니다. (중략) 결국 서로 겹치지 않는 궤도상에 있는 소수의 물체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행성계의 현재 배치가 이 과정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74~6쪽)

 

 

그림 17 태양계 행성들의 형성 과정 (75쪽)

 

인간의 두 번째 특성은 특권계급과 그들의 생각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 계급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며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우주에 대한 생각도 그들이 정리한다. 칼 세이건은 이들 특권 계급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을 등에 업고 코페르니쿠스의 이론과 진리를 두고 싸우고 있다고 한다. 매우 놀랍다. 정치 권력이나 부를 소유한 계급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과학도 지배하려 한다는 상황. 과학이 진리가 아니라 특권 계급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니 말이다. 

 

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지구는 네 가지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변하지 않는 천상의 물체들은 제5원소 quintessence로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틀렸다.

 

2)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며 태양과 같은 별들은 사실상 움직이지 않는다 했고, 그 후계자들에 의해 지구와 태양계, 우리 은하계 milky way galuxy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격하한다. 1572년의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초신성 폭발이 관측된 후로는 천상의 물체들도 변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린 것이다. 다윈과 아인슈타인에 의해 더욱 보강된 논리로.

 

"우리가 결정적인 위치나 속도나 가속도를 갖고 있지도 못하며, 다른 식물들이며 동물들과도 별개의 기원을 갖고 있지 않다" (65쪽)

 

3) 설계 논증이 있다. 이 논쟁에서 뉴턴은, 단순한 시계공이 아니라 엄청난 힘의 소유자인 '하느님'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비록 틀린 주장이라는 것이 위 그림 17에 의해 밝혀졌지만. 

 

 [ argument from design : 무질서한 자연계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질서가 만들어졌다는 다윈의 이론과 정밀하고 질서를 갖춘 우주는 하느님이 만들었다는(정밀한 시계를 만든 시계공과 같은 역할) 이론 사이의 논쟁 ]. 

 

"뉴턴은 혜성 궤도의 분포가 원래 자연의 상태이며, 만약 간섭하는 힘이 없었다면 행성들 역시 그렇게(변덕스럽게) 움직였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행성들이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그것도 똑같은 평면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또한 그와 양립하는 방식으로 자전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초기 조건을 설정해 놓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68~9쪽)

 

"뉴턴은 두 가지 면에서 모두 틀린 것이었습니다. (a) 혜성 궤도면의 카오스적 분포가 이른바 원시 태양계 성운에서도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바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틀렸고, (b) 그가 창조주의 존재를 연역해 냈던 이른바 신의 간섭이 아니고서는, 행성 운동의 규칙성을 이해하는 자연적인 방법이 전혀 없다고 가정했다는 점에서도 틀렸습니다." (74쪽)

 

4) 인간 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발상과 싸우는 가장 최신의 논리가 인간 원리 anthropic principle 다. 이 우주가 워낙 잘 조정되어 있어서 인간의 발생과 진화를 위한 140억 년의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으로부터 받은 충격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적어도 우주는 인간의 탄생을 위해서 teleologically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란다. 

 

"만약 뭔가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그러니까 자연 법칙이 약간 달랐다거나, 이런 자연법칙들의 작용을 결정하는 상수가 약간 달랐다면, 우주는 지금과 워낙 달라져서 생명과 양립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입니다. " (77~80쪽)

 

인간 원리에 anthropic principle 맞서 여전히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칼 세이건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제시한다. 단, 이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니 유의해서 들어봐야 한다. 인간 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코페르니쿠스의 논리에 저항하지만, 칼 세이건은 이러한 추정과 가능성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을 받아들이자고 권유한다. 겸손하지만 매우 강력한 주장이다.

 

1) 상상력의 실패 : 우주가 지금과 다른 상황에서도 생명체는 만들어 질 수 있다.

2)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어떤 새로운 원리가 있을 수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이 만들어진 것처럼.

3) 우주는 많고,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우주는 우리의 것과 같은 자연법칙을 반드시 갖게 될 것"(86쪽)이기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세계도 있을 수 있다.

 

인간 원리에 대해 던지는 칼 세이건의 두 가지 질문도 매우 흥미롭다. 먼저 답을 생각해 보고 읽어야 할지 그저 읽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생각을 해 보든 않든 일단 멈춰 보자. 오늘은.

 

인간 원리에 따르면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우주를 창조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졸지에 하느님은 '서투른 우주 기술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멸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위험한 운명론이 존재한다고 한다.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