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5일) 오전에는 어머니와 한 시간 반 동안 현미에 섞인 뉘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스크린을(무안 c 91 : 어느 세월에. 주 1회의 운동으로는 성과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여자 프로골퍼들도 하루에 열 시간을 연습한단다. 뭔가 변화를 줘야 한다.) 치고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논으로 나갔다. 흑미 논에 깔아 놓은 짚을 걷으러 갔다. 한 줌 한 줌 짚을 모으는데 일은 거의 진척이 되지 않고, 비를 많이 맞아서 젖은 부분도 많다. 볏짚의 심을 뽑아낼 부분만 걷어올까 하다가 내년 모내기에 걸리적거릴 것을 생각해서 젖은 볏짚도 모두 걷어내기로 했다. 집으로 가져와서 하우스에 넣어놓고, 나머지는 밭으로 옮겨 쌓아 놓았다. 그리고 부직포를 가장 짧은 줄부터 시작해서 8줄을 걷었다. 한참을 일했는데도 일한 흔적이 나지 않는다.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부직포를 걷으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눈에 띄는 시멘트 돌들을 전부 걷어내고 있다. 지나치지를 못한다. 지난 2년 동안 제법 많은 돌을 걷어냈는데도 이곳의 돌들은 아직도 많다. 어느덧 해가 진다.
오늘 아침은 열 시가 넘어서 밭으로 갔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를 다녀올까 하다가 그러면 오전 내내 책이나 보고 뒹굴거려야 해서 오늘은 택시를 타고 가시게 했다. 어제보다 두 이랑 많은 열 개의 부직포를 걷어내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일한 흔적이 나면서 부직포 걷기도 끝나가는 느낌이 든다. 아직 비닐을 걷지 않아서 모든 일을 끝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최근 2주 사이에 정력의 변화가 느껴진다. 자연 수명이 다한 것인지, 근력의 약화로 그리된 것인지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근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노동과 운동이 필요하다. 자전거 타기도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날이 추우니 내년 봄으로 미루도록 하자.
천재와 이야기를 하다가 과학에 바탕을 둔 철학만이 제대로 된 철학이라는 주장은 과도하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미학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 미학으로 완성된다는 것은 사유 그 자체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증거다. 과학 철학과 또다른 영역으로 사유의 철학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림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멋진 자작나무 유화를 보고 너무 실감이 나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거친 물감 덩이였다. 그 물감 덩어리를 보고 감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발짝 떨어져서 물감 덩어리를 보면 확실히 살아 움직이는 자작나무를 보고 감탄하게 된다. 눈과 뇌가 합동으로 물감 덩어리를 제대로 구별해 내지 못하고 실재하는 자작나무를 창조해 내겠지만 두 가지의 합동작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오직 예술가의 오랜 수련으로 합동 착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존재는 그 전 단계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그저 감탄한다.
예술 활동은 근육 운동으로 이루어진다. 음악은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희열을 느낀다. 음악하는 과정이나 감상자의 위치에서 모두 즐겁다. 그림이나 조각은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결과를 통해 환희를 맛볼 수 있다. 다만 결과가 좋을 때. 음악이라는 예술은 노동처럼 근육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그림은 노동처럼 근육을 사용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결과가 좋으면 커다란 쾌감을 준다. 즉시 즐거움을 얻으려면 음악이 좋다. 오래 묵혀둔 즐거움을 위해서는 그림이 좋다. 성질 급한 시대라면 아무래도 음악이 더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누구나 젊었을 때 춤과 음악에 쉽게 빠지는 것이 이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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