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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내년 농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_201026 el veintiséis de octubre el lunes_двадцать шесть понедельник

누워서 토지 4권을 읽으며 쉬다가 마당으로 나가서 벼를 저었다. 들어오면서 씹어 보았더니 단단하면서도 부스러지는 느낌이다. 제대로 속이 차지 못하여 싸라기가 된 느낌이다. 깜부기가 거의 붙어있지 않아서 벼는 황금색으로 참 예쁘다. 깜부기가 많이 붙은 벼가 예쁘다는 농부들의 말이 맞을까. 아니면 지난여름에 내가 없는 사이에 드론을 이용한 방제 작업을 했다고 하니 그 영향일 수도 있다. 물어도 벼는 대답하지 않으니 알 수 없다. 마당을 남북으로 짧게 왔다 갔다 하며 벼를 저었더니 쓸데없는 노동 손실이 일어난다. 길게 길게 저어주는 것이 맞겠다.

 

낫 한 자루를 들고 걸어서 논으로 갔다. 긴 물장화를 신고 갈까 하다가 그냥 장화를 신기로 했다. 논에 갈 때는 항상 물장화를 신기로 결심했는데, 갈아 신는 시간이 잠깐 아까워서 그냥 나왔다. 아니면 무릎까지 빠지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하는 작업은 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메벼 논의 콤바인 준비작업은 매우 쉬웠는데, 찰벼 논은 양도 많고 어려웠다. 일단 두 개의 논으로 나눠져 있어서 작업해야 할 곳이 두 배다. 발이 빠지지 않는 곳은 쉽게 일을 끝냈는데, 문제는 회전하는 부분에 아직도 물이 솟아나고 있다. 바로 옆의 배수로 바닥이 높아서 물이 잘 빠지고 있지 않다. 배수로보다 논바닥이 높아야 하는데 지난여름 계속해서 쓸려 내려오는 흙이 배수로 바닥을 채웠기 때문이다. 40미터 정도의 배수로를 따라서 논바닥이 척척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곳도 벼를 베어 놓아야 콤바인을 돌리기가 쉬운데 장화를 신고 작업을 하면 빠질까 싶어서 작업하지 않았다. 내일이라도 다시 한번 와 봐야겠다.

 

메벼 논의 물 흐르던 부분을 장화를 신고 들어갔더니 발이 푹푹 빠진다. 트랙터 작업을 하면서 깊게 논을 간 후폭풍이다. 내년에는 가볍게 작업을 하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될까. 겨울이 지나고 굴삭기 작업을 좀 해서 눌러 놓으면 써레질 작업과 이앙 작업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 놓아야 한다. 내년에는 굴삭기를 이틀 빌려서 작업을 해야겠다.

 

내년 농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1) 2024년 10월 60세가 되는 날까지  정부 보조를 받아 국민연금을 납부하려면 농사를 계속해야 한다. 24년 이후로는 연금 납부를 할 필요가 없다. 2) 땅을 임대해 주자니 그동안 무농약 무제초제로 농사를 지은 땅이 아깝다. 금방 농약으로 더럽혀질 것이다. 인삼밭에서 적당한 가격(연간 평당 2천 원)으로 임대한다면 임대해 줄 생각이다. 3) 땅을 매각하자니 적당한 임자가 나서지 않아 언제 팔릴지 알 수가 없다.

 

농사를 계속해야 한다면 어떻게 일을 줄일 수 있을까. 합계 약 350만 원의 비용을 추가하면 가족들과 내가 해야 할 일을 70% 이상 줄일 수 있다.

 

1) 굴삭기 트랙터 이앙기 작업을 외주를 주면 된다. 굴삭기 50만 원, 트랙터 35만 원, 이앙기 35만 원 합계 12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2) 참깨와 들깨, 고추 심고 거둘 때 인력을 고용하면 된다. 각 2명씩 12명의 인력을 고용해야 하니 12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3) 논 김매기 할 때 인력을 고용하면 된다. 대체로 5명씩 두 번 김매기를 하면 10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매출 천만 원의 농사를 지으면서 350만 원의 추가 비용은 감당하기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삼밭 임대인데, 우리 논밭이 인삼 농사짓기에 좋은 상태가 아닌 모양이다. 두 명의 인삼 농부가 다녀갔지만 계약하자는 말이 없다. 논과 밭으로 임대를 하게 되면 임대료가 없다. 임대해서 농사짓는 사람들도 투입비용이 있어서 임대료를 납부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감당이 가능할 정도의 힘을 들여서 농사를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쁜 꽃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일까. 꽃나무도 심어놓고 마는 것이 아니라 풀을 잡아주고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애써 심어놓은 나무들이 잘 자라주면 더 바랄 것이 없는데, 병충해로 쓰러져가면 그것도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는 것은 30년 이상을 땅의 기능을 상실하고, 비용 투자를 위해서는 빚을 감당해야 한다. 나쁜 대안이다. 농업용 창고를 짓는 것은 어떨까. 창고 건축비는 평당 100만 원만 잡아도 수억 원이 든다. 역시 부채다. 답이 아니다.

 

휴경을 하는 방법이 있다. 제초 관리만 하면서 1년 정도 농사를 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코로나로 아주 긴 겨울이 될 테니 지혜를 모아 내년 농사를 나 홀로 감당이 가능하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농사를 짓고 싶은데, 답을 찾지 못하겠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지 않으려면 땅은 파는 것이 맞는데, 선뜻 그러지를 못한다. 정이 들고, 비싼 값에 팔려는 욕심도 나고, 깨끗한 땅을 지키려는 공공의 의무도 생각나고 등등 아주 복잡한 심경이다.

 

부천 식물원의 석림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