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보낸 여몽정의 파요부를 읽다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순임금은 아버지 고수의 무능과 계모와 이복형제의 핍박에도 죽을 고비를 넘는 지혜를 발휘하며 효를 다했다. 요임금이 두 딸을 보내 결혼생활을 하게 했어도 행복한 생활을 꾸려 나가자 선위한다. 황제가 된 뒤에도 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했고, 이복형제는 제후로 봉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예전부터 불초 不肖 bu xiao 소생이라는 말이 궁금했었는데, 오늘 비로소 찾아보았다. 닮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부모님을 닮지 않아 어리석고 부족하다는 뜻이다.
순임금은 덕으로 모든 사람을 교화시켰다는데, 나는 10년이 넘도록 이웃을 교화하기는 커녕 크게 두 번을 다투었으니 bu xiao 하다.
"여산의 농부들은 밭고랑을 서로 침범하고 있었다. 순이 가서 경작을 하니, 1년 뒤에는 밭고랑이 바르게 되었다. 황하 강변의 어부들이 낚시터를 두고 다투고 있었는데, 순이 가서 낚시질을 하니 1년 뒤에는 손윗사람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동이(東夷)의 도공이 만든 그릇은 품질이 나빴지만, 순이 가서 그릇을 만드니 1년 후에는 그릇이 훌륭해졌다." - 나무위키 중에서
1. 중국인이야기 7 : 김명호 지음 / 한길사(전자책)
천유런의 아버지 천구이신이 태평천국의 난에 가담해 숭고한 이상 즉, 여민동락의 세계를 추구하다 한쪽 발목이 잘리고 카리브해를 떠돌다 트리니다드에 정착하여 천유런을 낳았다. 다시 읽어도 드라마틱하다. 카리브해 지도를 살펴봐야겠다.
"천당이야말로 노예들의 지옥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겠다. 서구인들에게 중국은 천당이나 마찬가지다. 일가를 이루면 조국으로 돌아가라." (7권 13%)
코로나 시기에 이런 문구도 눈에 들어온다. 천유런의 어머니는(중국인이었다) '배운 여자는 덕이 없다'며 천유런의 결혼을 반대했다. 끝까지 함께 하는 덕은 없었던 모양이다.
"하얼빈에 창궐했던 폐 페스트를 박멸시킨 예방학의 권위자 우롄더와 함께 귀국했다. (중략) 고객들에게 사실을 말하기를 요구했고, 그럴 때만 수임했다. 성공한 법관들은 성실한 사기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변호사 천유런은 성실하고 사기성이 없었다. (중략 / 비서 린위탕이 본 천유런) 결정적인 시기마다 남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길을 선택했던 사람 (중략) 남들은 나를 성공한 변호사라며 부러워했다. 그런 말 들을 때마다 환멸을 느꼈다. 천한 직업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자 허전함을 달랠 방법이 없었다. (중략) 광활한 세계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고 싶었다. (중략 / 부인 마리는) 편안한 생활 버리고,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는 곳에 가려는 사람의 슬픈 용기를 막을 힘이 내게는 없다. (중략) 천유런 陳友仁" (7권 13%)
2. 토지 :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 북스(전자책)
말이 많은 것은 불만이 많아서 그렇고, 말은 많이 할수록 거칠어진다. 강청댁의 말은 참으로 거칠다. 나또한 그렇다. 이런 종류의 말과는 다르지만 듣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말 - 거짓말, 탐욕, 어리석음, 권력욕, 이기심, 투기 등등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다. 군자들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겠지만 소인배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거친 말은 어떻게 순화하는 것일까. 부동의 유사성으로 은유를 하거나 먼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밖에. 아니면 "이야기는 다 거짓이고 노래는 참말(2권 90%)"이라 했으니, 노래를 부르자.
"처묵고 할 일 없이믄 나락이나 세지." (2권 22%)
2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고 하니 이번에도 기부해야겠다.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소비도 다시 확대한다. 얼마 안 되지만 이런 노력들이 하나씩 합쳐져야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다. 전공의들은 파업하고 있어도 병원을 지키는 간호사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고, 아이유는 그런 간호사들을 위해 얼음조끼를 선물했다고 한다. 살만한 나라다. 좀 더 노력하면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으니 공덕을 쌓아 죄닦음을 해야 한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된다.
"적선하소 야? 공든 탑이 무너지겄소, 공덕 쌓아서 지옥가겄소. 나날이 짓는 죄는 염불만 가지고는 죄닦음을 못하는 기요. 적선하소" (2권 24%)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 인심이 각박해서 사람들이 악독해졌다고 한다.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니다. 한 번도 사람다운 세상은 없었기에 언제나 인심은 각박했고, 재산을 산처럼 모으려면 아흔아홉 섬 가진 놈이 한 섬 가진 놈의 것을 빼앗아 백 섬을 채워야 한다. 오랜 옛날 신석기 시대 쯤에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요순이 중국을 다스릴 적에는 무력이 보잘 것 없어서 서로 덜 해치며 위로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청동기 문명 이래로 인류는 언제나 싸웠다. 쉽게 얻기 위해서.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살다 보니 무릉도원을 꿈꾼다. 피안의 세계에서. 이만큼 살 만 해졌으니 이제 두 발 달린 짐승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로 생명을 얻은 인간답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변한 기이 아니고 본시부텀 그런 거 아입니까. 지체 높은 최참판댁에서도 본시 재물을 모으기로는, 아 세상이 다 아는 일 아입니까. 숭년에 보리 한 말 주고 뺏은 땅이 새끼를 치고 새낄 쳐서, 그렇기 생각하믄 세상이 그릇되어 그렇다고만 할 수 있겄십니까.” (2권 28%)
나라가 망한 이유는 부패와 무법이다. 나라를 살릴 사람은 지금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망했을 때 나온다. 목숨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와중에 충신과 효자가 나온다. 요즘처럼 철저하게 감시를 받는데도 부패와 범죄가 끊이질 않는 것이 신기하다. 무엇이 파멸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일까. 희노애락애오욕, 칠정이다. 좋은 것이 나에게 자꾸 쌓일 때 냉정하게 둘러보아야 한다. 칠정이 들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벼슬아치들은 구전문사(求田問舍)하고 상것들은 구전성명(苟全性命)에 급급하니 누가 나서서 원수를 막을 건고?” (2권 28%)
정말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지만 인간 말종으로 가는 칠성이가 했음직한 말이다. 사람은 태어난 데로 사는 모양이다. 브라더를 아끼는 조폭은 있을 수 없는데도, 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가족을 위해 험한 짓을 한다는 사람은, 자신의 사악함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해서 감추고 싶어한다. 절대로 감출 수 없다. 가족을 위한다면 사람답게 살려고, 잘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버릴 말이라도, 바람에 쓸려 가버릴 행동이라도 그리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한다는 말이 배지가 불러서 안 묵지 새끼 선다고 안 묵으까. 세상에 버릴 말이라도 그러는 법이 어디 있겄소?" (2권 29%)
이런 문장을 고민 없이 쉽게 쓸 수 있나. 고라니를 흔하게 봤어도 언제나 혼자 다니고 있었는데, 옛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시절이 달라져서 고라니의 습성이 바뀐 모양이다.
"노루와 달리 혼자 다니는 경우가 별로 없는 고라니가 이번에도 두 마리 숲 사이로 숨어서 지나간다." (2권 44%)
1권에 비해 2권은 술술 잘 넘어간다. 거의 겹치는 지혜의 말이 없었는데, 이제는 간간이 나온다. 얼마나 내 몸속에 남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꾸 써야 하는데 잊히니 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