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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땅콩을 까면서도 선택을 해야 한다_200407 el siete de abril el martes

마늘밭에 물 agua mineral을 줘야 하는데, 밤 기온이 거의 영하로 떨어져서 다음 주에 주기로 했다. 양파밭에 흙을 올려야 하는데, 비닐을 걷지 않은 상태에서 해야 하는지 검색해 봐야겠다. 검색해 보니 3월 하순에 다들 비료를 뿌리고 흙을 올렸다. 풀도 예방하고 습기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물은 다음 주에 주더라도 오늘 오후에 흙은 올려야겠다. 마늘이든 양파든 흙을 올려주는 좋다고 한다. 상토 흙을 가지고 한 번 시도해 볼까 싶다.

 

오전에는 부직포를 덮을까 하다가 땅콩을 까기로 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땅콩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장인어른만 변비에 효과가 있어서 땅콩을 드신다. 심지 말까 생각도 했지만 씨앗도 보존하고, 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잘 자라는 땅콩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이기 조금이라도 심기로 했다.

 

이 땅콩을 언제 다 깔까 싶었다. 게으른 눈이 매우 피곤해 한다. 펜치로 껍질을 쪼개어 알을 꺼냈다. 9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오전 중에 끝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머니가 합류하시면서 일이 급속하게 진행된다. 어머니는 씨앗으로 쓸 좋은 땅콩과 먹을 땅콩을 구분해 놓아야 한다며 두 개의 그릇을 꺼내 놓으셨다. 이때부터 손과 눈과 머리가 바쁘게 일을 한다.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선택 사항을 늘렸다. 버릴 것. 작고 말라비틀어진 것은 먹을 것도 없으니 그냥 자연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3가지로 분류해야 하니 업무 집중도는 높아지는데 은근히 피곤하다. 펜치로 작업하니 일이 더딘 것 같아 그냥 손으로 작업했다. 잘 되다가도 딱딱한 땅콩들이 나타나면 다시 도구를 써야 한다. 펜치와 맨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손이 아프지 않도록 작업했다. 펜치냐 맨손이냐, 이것 또한 선택이다. 끝없는 선택. 대충 하려고 하는데 대충 하기도 어렵다.

 

1시간을 하고 났더니 반도 더 한 것같다. 앞으로 십분 정도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은 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눈은 말하고 있다. 아니었다. 30분을 더 하고 서야 끝이 났다. 100분 만에 땅콩 까는 일을 끝내고 제주도에서 사 온 감귤 과즙 과자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과자는 너무 바삭해서 기대한 맛이 아니었다.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2시 반에 다시 밭으로 갔다. 이랑에서 도로로 넘친 흙을 퍼다가 태양광 옆 밭에 쏟았다. 다섯 수레를 하고 두 개의 축분 퇴비를 뿌리고 났더니 숨이 차다. 어머니는 딸기를 전부 뽑아서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신 다음에 딸기를 다시 옮겨 심으셨다. 이랑에 부직포도 깔아야 할 모양이다. 바질이 많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노력으로 거의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부직포를 덮으려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tengo estress. 이랑의 폭과 길이가 전부 다르니 부직포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성질이 난 것이다. 생각을 바꿨다. 작은 이랑에서부터 차근차근해 나가되 길이가 맞지 않으면 자르거나 이어 붙이기로. 그러고 났더니 훨씬 마음도 편안하고 작업 속도도 늘었다. 어차피 내용연수가 지난 부직포니 마음대로 자르고 이어 붙여서 쓰자.

 

아니다. 이번에는 고랑의 경사도가 마음에 걸렸다. 물이 잘 빠지려면 경사가 잘 나 있어야 하는데 몇몇 고랑이 경사가 반대로 나서 물이 고일 것같았다. 다시 삽을 들고 세 개의 고랑을 손보고 부직포 작업을 했다. 쪼그려 앉아서 작업을 했더니 진도는 나가지 않고 일이 매우 더디다. 허리와 무릎이 너무 아프다. 바람도 거세서 두껍게 입은 옷이 춥게 느껴진다. 6시 20분에 작업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업하는 내내 음악을 듣는 대신에 스페인어 입문 과정을 들었다. 두 세 번씩 들은 부분은 잘 이해가 되고 다시 외우는데도 도움이 되는데, 처음 듣는 부분은 아무래도 흘려듣게 된다. 작업하면서 공부를 하려면 복습하는 것이 낫겠다.

 

아들들과의 점프샷. 오키나와. 셋이 이런 놀이를 하며 논 기억은 나는데, 장소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행복했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