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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파산_미국사 산책 6_200217 понедельник

왜 백해무익한 담배를 마약으로 금지하고 단속하지 않을까. 술은 마시면 기분이라도 좋아지지만 담배는 그런 기능조차 없다. 담배는 술에 살짝 기대어 살아 남는 기생충 parasite이다. 담배를 금지하지 못하는 이유를 금주법 the prohibition law이 행해진 미국의 생생한 사례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대부에서 꼴레오네의 죽는 장면이 생생하다. 작은 정원에서 손자와 놀면서 꽃나무를 정리하다가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져 죽는다.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손자와 놀며 일을 하다가 맞이하는 죽음이 얼마나 멋진가. 인생의 마지막은 저렇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고 알카포네의 죽음은 악당답게 비참했다. 1920년 시행된 금주법 the volstead act으로 조폭과 공직자들은 권력과 돈을 함께 추구하였다. 금주법은 주정뱅이를 없애려는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1933년 폐지될 때까지 뉴욕과 시카고를 비롯한 미국 전체를 범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순결한 의도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술처럼 심한 제재를 받지 않았던 담배는 미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뿌리가 뽑혔다. 은근한 혐오와 규제, 높은 담배 가격이 담배 피우지 않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우리나라 담배도 슬슬 그런 길을 간다. 술은 도박처럼 자제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복지사회의 중요한 재원으로 충실하게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20년대 시카고에서 일어난 타락과 범죄의 폭발이, 미국의 가정에서 술의 유혹을 추방해버리려고 한 시도에 직접적으로 기인했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사실이었다. (중략) 만일 사람들이 술을 원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것을 팔려고 하는 놈은 미친놈일 것이다. 나는 좋은 술을 공급하는 게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략 / 1925년 시카고 갱단의 두목이 된 알 카포네는 5년여 동안 2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살해했지만) 경찰에게 걸려든 죄목은 우습게도 연방소득세법 위반이었다. 그는 그 혐의로 1931년 기소돼 11년간 징역살이를 했으며 출감 후 플로리다 주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암살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다가 매독으로 사망했다." (32~5쪽)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인간은 절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낙관주의자는 계속 낙관하고 비관주의자는 계속 비관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최소 2배 이상이 올랐다. 이미 충분히 높은 가격에서 다시 두 배가 올랐으니 여유 자금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투기 광풍에 휩쓸렸다는 이야기다. 우리 주변의 친척이나 친구들도 흐뭇한 미소들을 짓고 있다. 나는 씁쓸하다. 부천의 오래된 아파트는 십 년째 같은 가격이고, 농원 땅은 팔려고 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경제는 학자들의 예측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다만 과도한 경우 모두 같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미국의 대공황이 그렇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그렇다. 미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투기다. 빈곤을 떨쳐냈다는 자신감에 가진 재산을 모두 주식이나 부동산 등 수익성 높은 곳에 투자를 한 대중들이 경제를 비극으로 끌고 갔다. 두 나라의 비극의 경험으로 안전한 은행과 안전한 기업과 안전한 가구들을 지키는 정책들이 계속 만들어졌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의 마지막은 어디일까. 아파트는 미래 수요를 현재로 끌어 오는 사람들에 의해 가격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주택 보급율이 110%를 넘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2, 30대의 젊은이들까지 빚을 내어 또는 부모의 도움으로 서울의 아파트를 사고 있다는 증거다. 50대의 중산층들이 나와 노후와 자식들의 부유한 삶을 위해 서너 채의 집들을 소유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이제는 손주들을 위한 집까지 마련할 상황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은 이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매우 불안하다. 나는 비관주의자이기 때문에 투기의 끝을 보고 투기에 참여하지 못한다. 


낙관주의 경제학자는 그러면 괜찮을까. 그를 따르는 이천 오백 만 수도권 시민들은 괜찮을까. 경제 위기는 생산과잉과 소비 부족으로 온다. 모두가 아파트에 돈을 묻어두게 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시중 유동성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이야기가 섬뜩하다.


"미국 예일대학의 첫 번째 경제학 박사로 미국이 낳은 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린 어빙 피셔(1867~1947)는 "주가가 영원히 높은 고원처럼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며 1929년 미국 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낙관했다. (중략)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오전11시, (중략) 팔아. 빨리 팔아. 얼마라도 좋다. 팔기만 하면 된다. (중략) 피셔는 명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도 사업을 통해 번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중략) 그가 잃은 재산은 1000만 달러(1929년 당시 약 110억원, 현재 가치로 추산하면 ??)로 추산됐다." (52~4쪽)


요즘은 집단지성이라고 해서 사회문제를 대중의 힘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사회문제를, 증오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파국보다는 나은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시대에는 불행하게도 그럴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대중의 힘을 폭력과 광기로 몰아간다. 저항하는 개인은 소외된다.


"일본은 1937년 7월 베이징을 점령하고 12월에는 난징을 점령해 '난징학살 사건'을 일으킨다. 12월 13일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 5만 여명은 다음 해 1월까지 40여 일간 무기를 들지 않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광란의 학살극을 연출했다. 무려 30만 명이 살해됐다. 총살, 난자, 생매장, 불태워 죽이기 등 살해 수법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던바, 중국인은 이를 대도살이라고 불렀다.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고통만 안겨주는 일본이란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란 말인가? 일본인의 유전자에 악마가 숨어 있는 건가? 아니면 약소국들을 괴롭히는 모든 강대국들의 국민들이 다 그런 것인가? 


(중략 / 라인홀트 니부어 Reinhold Niebuhr 1892~1971는 착한) 개인들이 모여 집단이 되면 전혀 다른 특성이 나타난다. 집단으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논리, 새로운 생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집단은 나라일 수도 있고 거대조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거다. 지나친 이상주의자들 또는 도덕주의자들이 그런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개인의 도덕에는 사랑이라는 규범이 적용되지만 집단 간의 도덕에는 정의의 규범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니부어는 처음으로 '집단 이기주의(collective egoism)'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그것이 개인의 이기적 충동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했다. 


(중략 / 집단이 이성과 자기극복의 능력,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능력이 훨씬 결여된 것은) 아마도 책임감이 분산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 니부어는 합리적인 태도는 터득하기 매우 어려운 기술이며) 마르크시즘이나 과학에 대한 신뢰는 악의 근원이 인간의 외부 어딘가에 있다는 그릇된 믿음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77~81쪽) 


제국주의 전사였던 아주 먼(12촌) 사촌형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는 달리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first-class temperament'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뉴딜 정책에 대한 평가는 따로 하고,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군인 연금을 미리 지불해 달라는 '보너스 군대'의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은 확실히 따뜻한 기질이었다. 후버 대통령이 맥아더와 트루먼을 보내 무력으로 진압해서 워싱톤에서 그들을 해산시킨 반면에 루스벨트는 부인 엘리너(이 부부는 서로 미워하게 되고 심한 맞바람을 피우다가 FBI 후버에게 약점을 잡힌다)를 보내 식사를 제공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며 위로했다. 흑인들의 지지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돌아선 계기도 그의 이런 자질과 정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민주당과 루스벨트의 부상은 대공황 시기에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공동체에 기여하려던 정치가들을 대중들이 알아보고 선택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보수주의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북전쟁 이후에 미국 자본주의의 번영으로 인생을 즐겼던 사람들도 대반격에 나선다. 아무리 대공황기라도 부자와 권력자들은 그들의 것을 지켜야 했다. 1934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그들의 반격이 적나라했다. 복지정책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을 사회주의자, 위선자, 이상주의자, 파멸자로 몰아붙이며 거짓 증거들을 들이댄다. 이 반격의 틀은 21세기 현재까지 유효하다.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그(사회주의자 업턴 싱클레어는)는 빈곤층을 위한 복지를 강조했다. (중략) 'EPIC(End Poverty in California)' 프로그램을 강조하였다. (중략 / 싱클레어의 빈곤층 복지 정책 때문에) 미국 전역에 있는 실직자들의 절반가량이 캘리포니아에 오게 될 것 (중략 / 이라며 언론들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기차에 탄 범죄자와 방랑자들의 사진을 실었다. 그 사진은 (중략) 영화 <노상의 난폭한 소년들>에서 따온 스틸 사진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중략) EPIC 프로그램은 캘리포니아를 공산화하기 위한  (중략 / 전략이었으며, 복지정책을 강조한 싱클레어가 사실은 부유한 위선자였다고 주장하며) 베벌리 힐스 등 세 곳에 있는 싱클레어의 저택 사진을 공개 (중략) MGM 스튜디어는 자신의 영화관들에서 5분짜리 주지사 선거 뉴스를 내보냈다. 현관에서 노파를 에워싼 부랑자들의 무리 장면을 조작해서 찍은 '싱클레어 죽이기' 뉴스 (중략 / 를 내보내고, 공화당 후보 메리엄이 패배하면 공산주의가 승리하게 된다고 위협하기 위해) 메리엄이 아니면 모스크바 (중략 / 라고 선전하여) 싱클레어는 37퍼센트의 득표율로 패배했다." (109~111쪽)


대중은 독재자와 신에게 똑같은 찬사를 바치는 것은 이상하면서도 당연하다. 95%의 국민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독일에서 한 장로가 "그리스도께서 아돌프 히틀러의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오셨다" (133쪽)고 말하는 것에서 불과 수년 전 어떤 자치단체의 장에 의해 반인반신으로 추앙된 박정희가 떠오른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말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독재자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법원과 검찰 조직에 충분한 견제가 없다면 정의가 어떻게 왜곡되고 집단 이기주의(collective egoism)와 사리사욕이 채워지는가를 잘 볼 수 있었다. 이미 백년 전 미국에서 에드거 후버가 대통령들과 함께 권력과 언론을 장악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부와 권력과 정보를 공유하며 공생하는 집단들에게 공동체에 헌신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순진하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경쟁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선의의 경쟁이라고 부른다. 


"후버는 루스벨트의 신임을 얻기 위해 (중략) 범죄단을 체포할 때엔 현장에 나가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중략) 언론은 무기력하게 후버의 조종에 놀아났다. 후버는 자신에 대해 잘 써주는 기자들에겐 특종 기사거리를 공급해주는 반면, 자신을 비판하는 기자들은 미행하고 도청하는 등 회유와 협박으로 조종했다. (중략) 미국의 나치 운동을 포함한 우익단체들이 정부 전복을 꾀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루스벨트는 후버에게 최초로 정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대통령과 측근들은 법의 집행과는 거의 무관한 일에도 FBI의 자문을 구하곤 했다. 후버는 '대통령의 정보주머니'가 되어갔다. 백안관을 위한 정치사찰은 FBI의 일상 업무가 되었다. 


노동운동 탄압도 FBI의 영역이었다. 1939년 후버는 그간 범죄조직의 힘을 빌려 노조를 탄압해온 포드자동차의 노조 탄압에도 도움을 주었다. (중략) 1975년 상원정보위원회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루스벨트는 물론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 등이 모두 FBI를 이용해 국가안보나 범죄수사와는 무관하게 정치적 목적으로 도청을 했다고 한다." (163~5쪽)  


책은 빨리 읽어야 했고(반납해야 하니까)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은 많고, 어쩔 수 없이 책을 옮겨 놓는다. 책을 반납하고 났더니 내용이 가물가물. 민주당이 한 번도 주지사를 내지 못한 주의 이름이 아이오와(?). 갤럽의 탄생 순간을 보고 있다.


"남북전쟁 이래 한 번도 주지사를 내지 못한 민주당으로선 큰 기대를 걸긴 어려웠다. 그녀는 대학 교수이자 광고회사 임원인 사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 사위는 자신이 개발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를 조사한 다음 선거운동에 활용함으로써 그해(1932년) 미국 민주당이 미국 최초의 여성 주지사를 배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중략) 갤럽의 예측대로 루스벨트가 61대 37로 승리했으며 이 충격으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끝내 폐간되고 말았다." (186쪽)


게르니카로 유명한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는 유럽과 미국의 무관심과 소련의 배신으로 완성된다. 비트겐슈타인을 비롯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공화정부를 지원했지만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지원한 강력한 폭력 앞에서 무기력했다. 폭력과 전쟁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광기다. 소련도 결국 스탈린의 살육으로 이어졌다. 동물에 불과한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espero. 사회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꿈꾼다. 


"공화정부를 지원하던 스탈린은 챙길 걸 챙긴 뒤 1938년 중반부터 원조를 중단함으로써 사실상 파시스트 반란군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략) 스탈린주의자들이 어떻게 스페인공화국의 금 보관소를 약탈해 갔는지도 설명 (중략) 국제비행대대를 조직하고 대령에 취임했을 뿐만 아니라 소설 <희망>으로 공화정부의 저항을 지지한 앙드레 말로는 파시스트 정권의 승리로 끝나자 "인류는 정의도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용기가 그에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음을 스폐인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안 가 반공주의자로 변신한다. 


(중략) 프랑코는 1939년 6월 국가원수로 취임헤 1975년 11월 20일 사망할 때까지 36년간 스페인을 지배한다. 그의 장기집권의 비결은 가톨릭을 전면에 내세운 점, 개인적으로 축재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은 점, 실용적인 테크노크라트의 등용과 현실주의 외교 노선, '버터와 소형승용차 파시즘'으로 불릴 정도로 민생을 돌본 점 등이 꼽힌다." (196~7쪽)


영화 그린북을 보았다. 천재 negro 피아니스트가 남부를 여행하는 이야기. 돈과 외로움과 여행, 음악을 통해 한 사람은 인종차별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극복하고, 한 사람은 소외된 자신을 극복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소외와 왜곡된 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러니 겸손해야 한다. a first-class temperament라는 루스벨트도 극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위인이나 시민이나 결국 같다. 


"(1936년 4관왕이 된 제시 오언스는) 나를 홀대한 것은 히틀러가 아니라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나에게 축전 하나도 보내주지않았다. (중략) 루스벨트는 물론 후임 대통령 해리 트루먼도 오언스에 대한 칭찬도, 시상도 하지 않았고 백악관 초청도 하지 않았다. 그는 스웨덴 대회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미국육상연맹에서 축출돼 말이나 오토바이 등과 겨루는 깜짝 경주쇼 출연자로 몰락하고 말았다." (230~1쪽) 


금주법이 알루미늄 캔맥주를 만들었고, 대공황이 문고판 책을 만들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문고판이 한참 유행하였다.가난하지만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생존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니 부모님들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만, 문고판 책들에서 어떤 감동도 받지 못했다. 기억이 없다. 그저 몇 권 읽었다는 것 말고는. 대공황기의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래도 기능을 했었던모양이다.


"(1935년) 펭귄북스는 젊은 출판업자 앨런 레인이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 부부와 함께 열차 여행을 하면서 "일반 대중을 위해 싼값에 책을 제공할 수는 없을까"라고 궁리한 끝에 내놓은 것(문고본)이었다. 가격은 당시 담배 한 갑 가격이던 6펜스였다. (중략 / 페이퍼백 혁명은) 활판인쇄술 발명 이후 '독서의 민주화'에 기여한 가장 큰 업적이라는 평가마저 나왔다." (240쪽)


대공황기의 사람들은 유쾌한 무엇을 찾아 헤매었다. 그런 위기들이 아니어도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놀거리를 찾아 헤맨다. 삶의 의미는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으로 찾는다 하더라도 마국 웃을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춤과 쇼. 아직 춤의 세계를 알지 못하니 인생을 더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춤 대신에 운동의 즐거움은 안다. 땀 흘리는 행위가 곧 춤이다.


"(쉬지않고 춤추기 대회에서) 유일한 시간은 화장실을 찾을 때 뿐이었다.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참가자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자 1933년 뉴욕 주지사는 쉬지 않고 계속 춤을 추는 데 합리적인 시간을 8시간으로 규정 (중략) 1939년 3월 3일 하버드대학 학생식당에서 길이 8센티미터 금붕어 한 마리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는 비록 선거에는 떨어졌지만 10달러를 벌었고 (중략) 한자리에서 금붕어 300마리를 먹어치우는 대기록이 등장" (242~3쪽)


나일론이 화학식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발명자의 의식과 회사 이름에서 따왔단다.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은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창조한 말이 없다. 아, 하나 있다. 그리미.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 또 하나 있다. 아뀔레옹. 방귀를 잘 뀌고, 돈을 아껴쓰는 사람.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 


"1938년 9월 28일 종합화학회사 듀폰은 석탄과 물, 공기에서 뽑아냈다는 최초의 합성섬유 나일론의 제품화를 발표했다. 1889년 프랑스 화학자 샤르도네가 레이온이라는 이름의 인공견사를 파리박람회에 전시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지 50년 만의 일이다. (중략 / 캐러더스는) 호텔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지만, 나일론의 발명가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나일론(nylon)이란 명칭은 캐러더스의 허무한 죽음에서 따온 '니힐(nihil)'과 듀폰(Dupont)의 '온(on)'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244쪽)


태평양 전쟁 중에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들을 2년 반 동안 수용했다. 나중에 사과하고 배상도 했다. 중일 전쟁 중에 스탈린도 똑같은 일을 벌인다. 그들은 아직도 사과할 생각조차 없다. 원인을 제공한 일본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정말 끔찍한 나라다.경계해야 한다. 미국은 이런 면에서도 프런티어인가. 계속되는 한민족의 불운이 안타깝다. 우리라도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중일전쟁의 와중에 조선인 중에서도 가장 큰 재앙을 당한 사람들은 러시아 지역에서 살던 고려인(까레이스키)이었다. 가해자는 이미 '피의 숙청'으로 악명을 떨친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은 한인이 일제에 협력하는 것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17만 5000명의 연해주 '까레이스키'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키라고 명령했다. 극동지방에 일본 정보원들이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명목도 덧붙여졌다. 


(중략) 그해 말까지 계속된 이주 길에 추위 굶주림 병으로 1만 1000명이 숨졌다. (중략) 거처도 없이 한겨울에 내동댕이쳐진 탓에 카자흐스탄 이주민 20만 명은 동굴을 파고 추위를 견뎠지만 결국 1~2년 만에 2만 명이 죽었다. (중략 / 1991년 12월 소련 해체 이후) 한국 정부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고려인들을 위한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중략) 고통받은 동포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친일세력에 대한 정의감과 분노가 앞섰기 때문일까?" (262~3쪽)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다른 책들이 너무 재미가 없다. 짜깁기 수준의 책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이렇게잘 짜깁기 한 번 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 글쓰기의 위대한 모습도 보인다. 글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