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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토론에서는 승리해야 한다_트로츠키_200129 쓰리다

검찰과 정부의 싸움이 끝없이 계속된다. 조국 가족이 모두 기소되었고, 검사들은 옷을 벗거나 인사조치되었다. 청와대 비서관들도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범죄혐의가 있으니 조사를 하고 기소를 하겠다는 검찰의 논리는 합당하다. 다만 피의자들의 소환도 제대로 못하면서 언론과 결탁해 계속해서 피의사실을 흘리거나 왜곡하는 것은 문제다. 그것도 논리에 맞지 않게. 예를 들어 이렇다. 코링크 PE의 대표이사 이상훈은, 법정에서 투자자인 정교수의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는데, 정경심 교수가 전화해서 압박을 받는 것으로 표현해 버린다. 마치 정교수가 코링크의 실질 소유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증언을 왜곡하는 교묘한 수법이다.


중남미 역사를 읽다가 멕시코에서 레온 트로츠키가 암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와의 친분도 깊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제법 두툼한 그의 전기를 빌려 왔는데, 영 재미가 없다.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글쓰기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지난 번에 빌렸던 스탈린 전기도 도저히 재미가 없어서 20%도 읽지 못했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어렵게 읽은 것을 보면, 서양의 전기 작가들의 글쓰는 솜씨가 문제일 수도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를 다룬 책을 마치 나무조각을 씹는 기분으로 읽어야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재미있는 부분이 나온다. 트로츠키가 17세를 전후해서 니콜라예프의 슈비고프스키 그룹에서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 혁명가로서 정치 토론을 활발하게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이런 식의 토론 전략을 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19세기는 그런 시대였을 것이다.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대결의 시대였고, 폭력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야만의 시대였다.


"료바(트로츠키)는 마치 군사 작전을 앞둔 것처럼 논쟁에 대비했다. 그는 논쟁 기술을 키우려고 쇼펜하우어(1788~1860)가 쓴 [논쟁의 기술]을 꼼꼼히 읽었다. (중략)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든 논쟁에서 기필코 승리(해야 하고 / 중략) 인신공격적인 조롱은 매우 효과(가 있다 / 중략)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극을 받아 화가 나면 자기 주장의 논리적 실마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중략) 청중이 있다면 그들을 웃게 해서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고 / 중략) 갑작스런 화제 전환과 겸손한 척하는 것 역시 도움 (이 된다 / 중략) 감정이 심하게 상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훌륭한 논쟁가는 그런 경우에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중략) 상대방을 완전히 박살 내는 승리만이 가치있는 목표다. 제멋대로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폭군'의 기질은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94~5쪽)


모든 책임을 쇼펜하우어와 시대 상황에 돌릴 수는 없겠지만 트로츠키가 배운 논쟁의 기술은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김근식 교수는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일했다. 늘 정치와 방송에 참여했지만 이상하게도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 정의당이나 민주당에서도 그에게 큰 역할을 맡기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그가 보수의 이론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2020년 마침내 박형준, 유승민과 더불어 황교안과 연대하는 보수 통합의 리더로 등장했다. 문병호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비난받아야 할까. 신한국당에 참여했던 김부겸과 이부영이 꾸준히 자기 길을 가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정치판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는 문장가였다. 추한 문장은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이것은 그의 재능이었고 자산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조롱한 나머지 불필요하게 적을 만드는 경우에 이 재능은 오히려 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107쪽)


트로츠키는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을 맞은 날에 태어났다. 1879년 10월 26일이니 꼭 100년 전이다.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아 승리하고, 미국과 가스라-태프트 밀약을(미국은 필리핀을 일제는 한반도를 지배할 것을 약속한 미국과 일제의 밀약) 맺은 다음,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반도를 강탈할 권리를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받았다(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이 조약을 중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야만의 시대가 만든 야만스러운 노벨상이었다).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보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기세등등하게 러시아를 방문했다가 안중근에게 총 맞아 죽은 날도 1907년 10월 26일이다.


트로츠키는 알렉산드라와 결혼하고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로 3년 간의 유형 생활을 떠난다. 결혼한 부부는 함께 유형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러시아 제국은 혁명가들의 유형 생활을 배려했던 모양이다.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토론과 공부도 자유로웠다고 한다. 사전에 허가를 받는 절차가 필요했지만.


"혁명가들의 유형 생활은 1930년대 소련 치하와 비교하면 전혀 혹독한 것이 아니었다. (중략) 시간이 아주 많았고 에너지도 넘쳤지만 분출할 데가 전혀 없었다. (중략) 유형자들이 시간이 빨리 가게 하려고 찾아낸 각종 게임과 오락 (중략) 크로켓 게임에 상당히 열중했다. (중략) 누가 시베리아에서 크로켓 게임을 하기 위해 땅을 고르고 잔디를 정돈하였는지 (중략)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중략) 정부는 유형수에게 한 달에 35루블의 급료를 지급했다. 생계에 충분한 액수였다. 게다가 그들은 돈벌이를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중략) 현지인에게 개인 교습을 하며 돈을 벌었다. (중략) 시베리아의 사업가들이 이들 유형수들을 고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략) 이르쿠츠크에서 발행되던 [동방 평론]에 글을 발표하는 것이 더 좋은 수입원 (중략) 이르쿠츠크는 처벌받지 않고도 비판적인 생각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1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