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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남북전쟁의 핵심은 노예제가 아니었다_미국사 산책 3_강준만_200113 понедельник

경험하지 못한 남미에 대해 궁금증을 해결하느라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읽어 가다가 미국의 간섭과 지배에 대해 궁금해서 강준만의 이 책을 들었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안마당'이고, 윌슨 '민족자결주의'의 실제 현장이다.  


남북전쟁 직전에 노예제의 폐지에 대한 논의는 매우 격렬했던 모양이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야 할 정도의 논쟁이라면 얼마나 격렬했을지 짐작했어야 했는데, 역시 치밀한 탐구의식이 없다. 이렇게 짚어주지 않으면, 남의 나라 일이라 무관심하기도 하고 신중하지도 못해서 당연히 알아야 할 사실을 모른채 지나간다. 모든 결과-사건은 작든 크든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논쟁이 곧 행동으로 옮겨진 사례가 있다. 


존 브라운은 미치광이와 순교자로 각각 평가된다. 노예제 찬성론자들이 폐지론자 5명을 살해한 것에 분개해 보복으로 찬성론자 5명을 기습해서 살해하고, 연방 무기고를 습격하여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한 봉기를 시도했다가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미국의 남북전쟁처럼 논쟁이 가열되어 폭력으로 이어지면 내전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논쟁들도 걱정이다. 미국처럼 무기가 없어서 '끔찍한 폭력'으로까지 발전하지 않겠지만, 논쟁 참가자들이 이성을 잃고 대화가 아니라 폭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다. 남북전쟁 직전인 1859년에 '종의 기원'이 발표된다.  미국사회도 들끓는다. 노예제를 찬성하는 백인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분리 창조론을 들고 나왔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섞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백인을 먼저 만드시고 흑인은 나중에 따로 만드셨다. 그런데 흑인은 두뇌용량이 작아 하나님이 백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돌보도록 하셨다(68쪽)'는 주장이다. 남부의 백인들은 북부의 번영을 보면서 '흑인 노예를 부리고 사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았다고 하니 이런 주장이 하느님이 말씀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진화론과 관련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대응도 재미있다. 


"마르크스는 좀 다른 이유로 『종의 기원』을 반겼다. 그에게 다윈이 말하는 생존경쟁이란 모든 과거 인류사의 계급투쟁을 자연사로 번역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역사 속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자연과학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저서야말로 ‘역사적 계급투쟁의 자연과학적 증거’ 라며 흥분한 나머지 『자본론』을 다윈에게 헌정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다윈한테 정중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다윈은  『자본론』과의 관계에 의해서 자기 저작의 신용이 떨어질까 우려했다. 


마르크스와는 달리 엥겔스는 냉정했다.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1895)가 1875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생존경쟁에 관한 다윈의 도그마(진화론)는 홉스의 주장을 자연에 도입하고, 거기다 경쟁이라는 부르주아 경제의 원리와 맬서스의 인구론을 첨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윈이라는 마술사가 트릭을 행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생물로부터 역사로 옮겨가서 인간사회의 영구적인 법칙성이 증명되었다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뿐이다." (68~9쪽)


그러나 노예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차별을 극복하는 것. 15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사회는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풍요롭게 잘 살고 있으니 미국은 참 신기한 나라다.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책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기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제기된 문제 역시 현재형이다.


"흑인은 아예 상종하지 않겠다는 것과 상종하되 노예로 부리겠다는 것 중에서 어떤 게 더 심하거나 나쁜 차별일까? 난형난제인가? 아니 그 차이를 따져 우열을 가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둘 다 몹쓸 짓이지만, 그럼에도 공식적인 노예제가 더 나쁜 짓이라는 게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정의감이다. 진정한 동기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긴 하지만, 남북전쟁이 터지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88~9쪽)


133쪽에 인상 깊은 이야기가 나온다.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이런 끔찍한 전쟁이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 1861년에 러시아의 짜르가 귀족들에게 보상을 하고 농노를 해방시켰다. 러시아는 귀족들에게 보상할 재원 마련을 위해 알레스카를 미국에 팔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전에 영국에서 이미 1840년에 노예가격의 40%를 정부에서 보상하고 해방시켰고, 남미의 아르헨티나(1813), 콜롬비아, 칠레, 멕시코, 볼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브라질(1878) 등 모든 나라에서 평화롭게 적은 희생과 보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고 있었다. 


왜 미국은 4년 간의 전쟁, 국가경제의 40%가 파괴되는 피해, 62만 명의 전사자, 수십만 명의 장애인을 발생시키며 남북전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까. 남북전쟁 이후에 미국이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펼친 식민지 전쟁을 보면 그 답이 들어 있었다. 보다 자유로운 미국으로는 달성할 수 없었던 욕망이 남북전쟁을 통해 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역사책을 읽고 있었다니. 분발하자. 딜로렌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노예해방을 특별히 지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해방을 단지 자신의 실질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여겼다. 그 목표란 국가권력의 공고화, 즉 많은 미국인들이 건국시기부터 걱정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중략) 링컨은 통합적이고 집중화된 국가, 즉 제국을 창설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134쪽)


미국과 조선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강준만이 인용한 박용규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부흥사 무디는 열흘 만에 400명의 젊은이를 구원하여 전세계로 선교사를 파견했다고 한다(무디 부흥).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아시아이고, 특히 조선이 가장 사랑받았다고 한다. 선교의 목적은 분명했지만 왜 조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조선에 대한 선교 열망을 안고 입국한 알렌은, 입국하자 마자 갑신정변(1884년)에서 치명상을 입은 실력자 민영익을 치료해냈다. 이 사건으로 알렌은 고종 내외의 시의가 되는 등 20여 년간 조선에서 의료 선교와 외교 활동을 하게 되고, 한반도가 미국에 열광하게 되는 출발점을 제공했다고 생각될 지경이다.


"44명의 졸업반 학생 중 18명이 해외선교를 지망했고, 그들 모두가 조선을 지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찰스 A. 클락)와 컨스 두 사람만이 조선에 선교사로 입국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당시 조선의 선교사로 입국하려면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중략 / 1891년에 기록된 미국 학생들의 해외선교 결의)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 없이 하루에도 수만의 이교도들이 죽어갑니다." (282쪽)


17일(금) 오후 8시가 다 되어서야 제주도 애월의 씨앤힐스파에서 3권을 끝냈다. 내일부터는 4권을 읽는다. 음, 재미있다. 해안가에 바람이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