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은 중용 서문에서 그리스 철학을 이렇게 정리한다. 내가 정리했으니 그의 뜻과는 다를 수 있다. 동서양이 모두 비슷하게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이란 성공한 삶이자 과정이다. 성공한 삶이란 훌륭한 인격을 말한다. 훌륭한 인격은 좋은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결국 인생은 좋은 습관을 축적해 가는 과정이다.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을 쓰고, 좋은 노동을 하고, 좋은 운동을 하며, 좋은 음악을 즐기고, 좋은 여행을 하는 것이 습관으로 축적되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삶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인간은 감정과 행위를 선택해야 한다.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지성 nous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공부와 숙고가 필요하다.
좋은 말과 글이란 깨달음과 감동을 주고 좋은 행동을 유도한다. 모든 말과 글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즐겁고 감동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 따라 성찰하며 꾸준히 노력해 가면 된다.
그런데, 좋은 행동 그중에서도 힘든 노동을 좋은 노동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풀리지 않는 과제이다. 뙤약볕 아래서 일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은 모든 인간의 소망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힘들고 좋지 않은 노동을 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나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누군가의 노동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귀농을 할 때의 생각은, 내가 직접 그런 힘든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지난 십여 년을 부모님과 함께 해 보니 매우 고달프다. 가족들도 이제 농사는 접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농사를 짓는 한 어머니는 쉬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힘든 몸으로 세상을 대해야 할 것이다. 적당한 노동으로 농사짓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데, 그 적정선이 지켜지기 어렵다. 지금도 빈농 수준의 농지를 너무 적다 할 정도로 줄여야 적정선을 넘지 않는 노동, 좋은 노동을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농사를 짓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있으나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 내 한계를 알고 그에 맞춰 생활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다. 정리를 해 나가야겠다.
"제26장 지성무식至誠無息 불식즉구不息則久 (중략) 유구悠久, 소이성물所以成物
(중략) 지성은 쉼이 없다. 쉼이 없으면 오래가고, (중략) 유구하기 때문에 만물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이 땅에서 스러지는 그 순간까지 무식無息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략) 부물覆物하는 천天과 재물載物하는 지地가 하나의 생명환을 이루어 그 사이에서 만물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天이 만물의 아버지가 되고 지地가 만물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중략) 땅의 주된 성분이 '흙'이라는 것도 30억 년에 가까운 생명체의 지성무식의 수고로운 작업에 의하여 축적적으로 달성된 것이다.
(중략) 천지가 하나의 온생명이라는 말은 매우 구체적인 함의를 지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지에서 생명이 태어났다고 말하기보다는, (중략) 천지라는 물리적 조건이 생명화되어 현재의 태극상을 형성한 것이다. 이 태극상이 깨진다면 우리는 천지를 논할 수가 없게 된다." (308~314쪽)
중용을 그저 읽어 나가다가 이곳에서 아버지를 발견했다. 생전에 늘 유언을 들으려 했으나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신 채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일하셨다. 지극한 성誠은 쉼 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유구하다. 아버지 스스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삶의 마지막까지 지성至誠을 실천해 오셨으니, 그것이 곧 유언이다.
아버지의 86년은, 학생 노동자 농부의 삶이었고,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힘썼으며, 신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과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비록 말년에 디지털 세계에 만족스럽게 적응하지 못하신 것을 안타까워 하셨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프린터기와 인터넷 세상에서 하루도 벗어나신 적이 없다. 그렇게 아버지의 삶을 사셨고, 가족들의 삶을 가능하게 하셨고, 깨끗한 땅을 우리에게 물려주셨다.
"지성무식至誠無息 불식즉구不息則久 유구성물悠久成物
지극한 성은 쉼이 없으며, 쉬지 않으니 오래도록 지속되고, 오랜 노력으로 만물이 생성된다"
중용 26장의 이 구절들을 아버지의 유언으로 새길 것이다. 유언은 절대진리도 아니고 거역할 수 없는 명령도 아니다. 유언은 아버지와 우리의 공감대다.
"제20장 지인용知仁勇 삼자三者 천하지달덕天下之達德 (중략)
호학근호지好學近乎知 역행근호인力行近乎仁 지치근호용知恥近乎勇 (중략)
지知와 인仁과 용勇, 이 세 가지야말로 천하사람 모두의 달덕達德입니다.
(중략 / 세 가지 달덕에 대해)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을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그것을 알고, 어떤 사람은 애써서 그것을 압니다. 그러한 지력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결국 앎에 도달하게 되면 안다고 하는 그 사실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중략 / 세 가지 달덕을) 어떤 사람은 편안하게 그것을 행하고, 어떤 사람은 이해를 따져서 그것을 행하고, 어떤 사람은 억지로 힘써 그것을 행합니다. 그러나 결국 공을 이루게 되면 그 행위의 성취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중략)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습니다. 이 세 가지를 알면 과연 내 몸은 어떻게 닦을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중략) "그 사람其人"이라는 표현은 "중용의 덕을 구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뒤의 지知 인仁 용勇의 삼달덕三達德과 연결되고 있다. (중략) 유교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건다. 이 "사람" 중심의 생각이 유교의 한계일 수도 있으나 유교의 영원한 생명력이다. (중략) 지知 인仁 용勇 삼자는 천하의 달덕인데 그것을 행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라고 말한다. 이 때의 "일 一"울 우리는 뒤에 나오는 "성誠"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즉 지인용 삼달덕의 실천을 가능케 하는 보다 본원적인 우주적 덕성이 "성誠"이라는 것이다." (248~266쪽)
우주의 근본인 성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도道다. 도를 닦는 것이 바로 지知 인仁 용勇 즉 지혜와 인의와 용기를 갖는 것이고, 지知인仁용勇은 호학(好學 : 배우기를 좋아하다) 역행(力行 힘써 행하다) 지치(知恥 : 부끄러움을 알다)를 통해 실현된다.
20장에서 더욱 공감이 가는 내용은 이 부분이다. 어떻게 알았든 앎에 도달하면 모두 같은 것이고, 어떻게 실천하든 실천하여 이루게 되면 모두 같다는 것이다. 지知 인仁 용勇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성인의 경지이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나, 억지로 힘써 행하는 것도 결국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평범한 인간도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듯하여 기쁘게 받아들여진다.
공자님도 깨달은 것을 한 달 이상 지속하지 못하여 항상 자사를 부러워했다고 하니, 나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중용의 이야기다. 억지로 억지로 실천하려 노력하다보면, 부끄러움도 많이 알게 되고, 배우기도 좋아하게 되며, 행동도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런 뜻을 마음에 새겨두면 좋겠다.
이 책 전체에 대한 감상을 쓰고 싶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이 대목들만 정리하는 것으로 한다. 이 책을 산 지 벌써 7년이 넘었다. 그때에는 시작을 했으나 몇 장을 넘기지 못했다. 항상 마음 속에 두고 있다가 지난 5, 6월에 유투브에서 김용옥의 중용강의를 자전거 출퇴근을 하며 들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 하나를 떨어뜨려 망가뜨리기도 했고, 데이터를 너무 많이 쓴다는 핀잔에, 유투브와 김용옥 중독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7월 18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몸과 마음이 깊이 가라앉아 있을 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이 책이 다시 나왔고, 7월 25일부터 오늘(8월 14일)까지 이 책을 마저 읽어내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알게 되고, 중용을 일부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아주 짧거나 긴, 역사이고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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