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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다시 인도로_생각으로 인도하는 질문여행_180919

글 솜씨에 따라 다양한 인도를 만날 수 있다. 오래 전 캄보디아의 허름한 숙소에서 류시화의 인도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류시화가 전하는 그들의 말장난에 감동받았다. 어서 빨리 영어를 잘 공부해서 그들의 화려한 언변에 녹아들고 싶었다. 세월은 제법 흘렀지만 아들들의 통역에 기대어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쨌든 좋은 인도를 만나고 싶다면 죽이 맞는 글쓴이의 글을 읽는 것이 최선이리라.


"인도 전력공사는 어차피 정전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아예 체계적인 정전 계획을 수립한다. A라는 도시에 100 규모의 전기가 필요한데 생산량이 60이라면, 도시를 셋으로 나눠 두 구역에 전기를 공급하고 한 구역엔 임의로 차단하는 식이다. (중략) 인도인들은 매월 계획 정전 시간표를 받는다. (중략) 시간표를 확인했다면, 일단 하루 정도 미리 표에 적힌 시각에 불이 꺼지는 지 확인한다. (중략) 여기는 인도다. 시간표의 기준이 GPS 상의 표준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저 그 지역 인도 전력공사 벽에 붙어 있는, 몇 분 빠르거나 느린 벽걸이 시계일지도 모른다." (70~1쪽)


인도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목표를 잡아야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그저 견뎌야 하는 두려움과 불편함이 가득하다. 그 중 하나가 차별이다. 조선 왕조가 일제에 의해 멸망하면서 큰소리 치던 세력들은 전부 힘을 잃었다. 독립운동가들만이 존경의 대상이 되고 신분제는 완전히 철폐되었다. 인도는 영국 식민잔재를 청산하지 않았다. 식민지 이전의 마하라자들은 식민시기에도 마하라자였고, 독립된 인도에서도 마하라자로 막강한 특권을 누렸다. 그들의 선택이니 가타부타 할 일은 아니다. 그 결과로 여전히 차별이 남아있는 것은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바라보는 내가 불편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감정 측은지심이다. 그러니 견뎌야 한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괜찮다. 이런 방식으로도 구습이 개혁되지 못했다.
  
"조드뿌르 Jodhpur를 상징하는 메헤랑가르 성 Meherangarh Fort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중략) 특히 라자스탄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나 불뚝 솟은 언덕 위에 거대한 성채가자리잡고 있어, 일단 시각적 아름다움에서 차원이 다르다. (중략)  강한 무인기질 덕에 조드뿌르와 라자스탄 사람들은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넘쳐난다.  하지만 힌두가 한 번도 주도권을 잃지 않고 지배한 만큼 힌두교의 악습도 강력하게 남아 있다. 카스트 제도, 조혼, 심지어 공개적인 사띠(Sati,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같이 화장시키는 힌두교식 순장)로 인해 인도에서 가장 성차별적인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중략) 조드뿌르에는 카스트 제도의 가장 고위층인 브라만의 가옥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전통이 있다. (중략) 성 위에서 바라본 블루 시티의 풍경은 예쁘디 예쁘다. "(149쪽)
 
"인도 서부의 라자스탄 주는 유독 특정 컬러로 도시를 설명하는 느낌이 강하다. 앞서 다녀온 조드뿌르는 블루, 자이살메르는 골드를 자신의 대표 색으로 지정했다. 아니, 지정이라 하기도 뭣한 게, 실제로 조드뿌르는 도시가 푸른빛을 띠고 있고, 자이살메르는 석양이 질 무렵 정말 황금색으로 불타오른다. 사실 이런 도시별 색깔놀이의 원조는 바로 이제 언급하려는 자이뿌르, 애칭 '핑크 시티 Pink City' 다. (중략)  '라자스탄'이라는 지명은 풀어서 설명하면 왕 Raja들의 땅 정도가 된다. 이 일대를 주름잡던 '라지푸트'라는 전사 계급은 자신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인도에서 가장 용맹한 민족이었다. (중략) 특히 자이뿌르 Jaipur가 속한 카츠와하왕조는 델리 이슬람 왕국 시절, 무굴제국 시절, 그리고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독립을 유지했다. 카츠와하왕조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독립을 유지한 가장 큰 비결은 강력한 군대도 있지만, 이와 함께 타협할 줄 아는 마인드였다. 특히 무굴제국을 대제국의 반석에 올려놓은 악바르 황제와의 혼인 동맹은 카츠와하 왕조가 생존을 넘어 엄청난 번영을 누리게 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략) 자이싱 2세는 일자무식도 심심찮게 있었던 당시의 왕들과 달리 건축학, 천문학, 점성학 등 온갖 학문에 통달해 있었다. 그 덕에 그가 설계한 자이뿌르의 구시가는 지금 봐도 상당히 질서 정연한 계획도시의 면모를 자랑한다. 인도 최대의 천문대인 잔타르 만타르도 자이싱 2세의 작품이다. (중략 / 1867년) 왕세자의 인도 방문이 이뤄진다. (중략) 웅장한 코끼리의 퍼레이드, 하늘에서 쏟아지는 색종이, 갓 칠해 황홀할 정도로 빛나는 핑크색으로 연출된 중세도시.. 에드워드 7세는 입이 떡 벌어졌고, 라자스탄은 영국령 인도제국의 번국으로 독립을 보장받았다."  (180~3쪽)
 
꼭 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런 곳이 마음에 든다. 지상낙원.
 
"께랄라 Kerala는 푸른색이 없는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녹음이 무성한 지역이다. (중략)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합하면 44퍼센트 정도나 되는데, 이런 종교간 황금분할은 힌두교가 절대적 우위를 보이는 인도의 여타 지역에 비해 존중과 토론의 전통을 숨 쉬게 했다. 누구든 일방적으로 차별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중략) 북부의 코지코드는 중국 명나라 시절 정화의 대함대가 유일하게 체류했던 인도의 도시 (중략) 께랄라의 마하라자는 달랐다. 사재를 털어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는 등 나름의 지역 근대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중략) 20세기 초부터 지식인 그룹이 급성장했다. (중략 / 1957년 공산당이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당선되자 놀란 네루는)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지방 정부를 강제 해산한다. 지방정부의 관료까지 올라갔으나 정치적 박해의 대상이 된 공산당 지식인들이 향한 곳은 농촌이었다. 그들은 이곳 농촌에서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다. (중략) 오랜 기간 집권한 좌파 정부에 의해 인도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상당한 수준의 복지 정책을 진행 중이다. (중략) 현재 께랄라 주의 주민들은 98퍼센트의 문자 해독률(인도 평균 67퍼센트)을 보이며, 평균수명도 인도 전체 평균에 비해 열한 살이 높은 74세에 이른다. 이쯤 되니 께랄라는 인도 연방에 속해 있지만 인도가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중략) 께랄라는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적당한 시스템이 만났을 때 사회가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모두에게 이 낙원을 바라보라 권하고 싶다." (239~2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