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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우렁이들의 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_190603 빠니질리닉

어제 그제는 우렁이들이 패사한 충격으로 농사 이야기를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기운이 나지 않아서 향악당을 갈 때도 자전거를 타지 않고 마음이를 타고 갔다. 지금은, 우렁이 농법의 실패를 인정하고 사후 수습책을 마련했으며, 주는 대로 먹어도 된다라는 넓은 마음으로 정리를 해서 이틀간의 좌절을 이겨내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농사 이야기가 거꾸로 쓰여졌다. 기록을 남겨두어야 농부 인생에 도움이 된다.


오전 11시 반에 논에 도착했을 때 활발하게 논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어야 할 우렁이들이 꼼짝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봤다. 논물은 흙탕물이었다. 우렁이들이 패사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지켜 보아도 논을 한 바퀴 돌아도 움직이는 우렁이는 단 한 마리다.


지난 목요일에 우렁이를 넣고 오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3시간 동안 함께 일했다. 그 당시 많은 우렁이들이 논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고, 일도 잘 해 낼 것이라 믿었다. 사흘 만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었다. 부모님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 열심히 받고 있다고만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이미 우렁이들의 상황을 알고 계신다.


장례식장을 다녀와서 오후 4시가 넘어 다시 논으로 갔다. 일단 모를 떼워야 할 곳 두 곳을 떼우고 호미로 높은 곳의 흙을 긁어내 논둑을 다지는 작업을 했다. 우렁이들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슬픔을 잊고자 논둑을 열심히 밟고 흙을 옮겼다. 일을 마치고 다시 한 번 논을 두어 바퀴 돌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무엇을 해야할까. 그래, 논둑이나 베자. 이제 막 모들이 뿌리를 내려 힘을 쓰고 있는데, 무리하게 풀을 맨다고 들어가서 고생할 것이 아니라 조금 이르지만 풀을 베기로 했다. 우렁이들이 다 죽고 나면 논바닥을 기어 다녀야 할텐데 논둑의 풀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떤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을 하는 것이 나를 격려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러자.


향악당에 가서 북을 치는데도 북 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수박을 먹으면서도 머리 속은 계속 패사한 우렁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별로 대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