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서 꿀을 채취하기로 했는데,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하셔서 논으로 갔다. 삽으로 약한 논둑에 흙을 옮겨서 다져두고 논둑도 밟아주었다. 폭풍 전야인지 매우 고요하고 더웠다. 논에서 자라는 풀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무시하고 할 수 있는 일만 했다. 우렁이들이 패사했고, 모는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래도 키가 쑥쑥 크는 모습이 보인다. 덩치를 좀 키워서 논을 가득 메워야 하는데 말이다. 어제 저녁에는 작년 이맘때 무엇을 했는지 확인해 보았다. 모가 빨리 자라지 않고,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물에 잠겨 죽은 모들을 계속해서 다시 심는 작업을 했다. 올해는 15일 정도 늦게 모를 심었기 때문에 모든 일정이 그만큼 늦춰진다. 작년의 일기에는 우렁이들이 일을 잘 해 줘서 풀이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일부 크게 자란 풀들이 있다는 글이 있었다.
오리들이 날아다녀서 우렁이를 넣지 못하게 되어 걱정이 더 크기는 하다. 그래도 오리들이 논에서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15만원 정도를 들여서 우렁이를 넣기에는 부담이 된다. 우렁이들이 살아서 잘 돌아다니면 괜찮다.
세 시간이 넘도록 논에서 이일 저일을 했다.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니 모터를 끄고 물꼬 높이도 조절했다. 물이 너무 많이 논에 차지 않게 해야 논둑이 안전하다. 자꾸만 더 일을 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자제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12시가 다 되었다. 점심을 먹고 쉬는데, 휴일을 맞아 동생이 내려왔다.
동생과 함께 아버지께서 준비해 놓은 꿀판 22장을 채밀기에 넣고 돌렸다. 약 10통(десять бутылок 지샷찌 부띨록)의 진한 아카시아 꿀을 받을 수 있었다. 올 한 해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이다. 7통의 벌통이 다시 4통으로 줄어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벌도 키울까를 계속 고민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벌도 살아있는 생물이라 함께 살려면 1년 내내 쉼없이 보살펴 줘야 한다. 농번기에는 물론이고 농한기에도 그렇다.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를 수 있는 고양이를 제외하고는 나와 동물의 자유를 제약하는 어떤 생명도 키우지 않을 것이다.
다 익은 완두콩과 고추를 따서 마음이에 싣고 부천으로 간다. 비가 내리는 주말 동안 행복한 휴식을 취할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는 혹시나 논둑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지난 2주 동안 잘 밟아 두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잊고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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