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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우렁이들은 폐사하고 논둑은 땅강아지와 거미들에게 양보하다_190604

아래 농사일기는 주요 정보 두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_211108

 

1) 우렁이 농법을 할 때, 논둑 밟아주기는 하지 말아야 할 노동이다. 제초제와 농약을 치지 않으면 드렁허리, 땅강아지, 지렁이, 거미 등의 생명들이 논둑을 뚫어버려 논둑이 터지는데, 어떻게 논둑을 밟지 않을까. 논둑을 제초매트로 감싸면 된다. 특히 모가 심어진 논과 논둑이 만나는 부분에서 논둑 위까지를 80cm 제초매트로 덮어버리면 논둑 터질 염려는 없다. 이것을 몰라서 지난 20년을 논둑 밟느라 고생했다. 어리석은 노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2) 써레질 4번 하기 : 아주 주의해야 한다. 특히 써레를 최대한 높여서 논이 깊게 물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논은 작물이 자라는 30cm 깊이 정도까지만 무르고, 나머지 깊이는 단단해서 배수도 잘 되고, 기계도 빠지지 않는 논이었다. 그런데, 써레질을 열심히 여러 번 하면서 써레를 깊이 내리고 써레질을 하는 바람에 깊이 1미터까지 무른논이 되고 말았다. 써레질, 이앙, 콤바인 작업을 할 때, 기계가 계속 빠지는 수렁논을 만들고 말았다. 써레를 높이 해서 최소 깊이로만 로터리를 쳐야 안전하게 풀도 제거하고, 기계가 빠지지 않는 좋은 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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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진 논둑을 밟을 때마다 거미들이 튀어 나오고 땅강아지들이 몰려 나온다. 우리 논의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살아가는 유용한 일꾼들이지만 우렁이들을 위해 물을 가둬야 하는 나로서는 골치 아픈 존재들이기도 하다. 마침 우렁이들이 집단 폐사하여 과연 물을 가둘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논둑을 밟은 발바닥이 흥겹지는 않다. 작은 녀석들에게 잠깐이라도 논둑을 양보한다. 우렁이들이 살아 남아서 논을 지킬 때 다시 그들과 나의 영역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그때까지라도 너희들에게 논둑을 양보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설렁설렁 논둑을 밟아 나간다. 우렁이들의 폐사가 점점 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머리 속은 복잡하다. B 플랜은 논 매는 예초기를 구매하는 것이다. 30만원 정도 든다. 3년 전의 상황을 반추해 보면 우렁이를 다시 넣더라도 논 김매기는 내가 해내야 한다. 논바닥 기는 농법을 다시 시현해야 한다. 올해는 아무리 풀이 자라도 기는 농법을 먼저 쓰지는 않겠다. 일단 모가 충분히 자라게 두고 나서 6월 20일 경에 예초기로 한 줄씩 열 흘의 시간을 두고 초벌 작업을 한 다음에 경과를 보며 기는 농법을 쓸 것이다.

 

C 플랜은 우렁이를 다시 넣는 것이다. 효과만 있다면 돈은 아깝지 않은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니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할까 말까를 고민한다. 우렁이 20kg을 추가로 살포하기로 한다면 논매는 예초기 구매를 뒤로 미뤄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예초기도 시름시름 앓는다. 작업자가 사기가 떨어져 있으니 기계도 시원찮다. 떨어진 선을 다시 연결하고 살살 달래가며 풀 베기 작업을 계속한다. 엔진 동력을 최저로 하니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귀로 쏙쏙 들어온다. 좋아할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위로가 된다.

 

우렁이 농법이 유일한 자연제초 방법이다. 개별 농부나 우렁이 양식업자에게 모든 책임을 맡길 것이 아니라 농업기술원에서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어서 알려주면 좋겠다. 제일 중요한 써레질 4번 이상 하기와 깨끗하게 물관리 하기, 야생오리 쫓아내는 법(폭음탄 말고는 아직 대책이 없다. 밤세워 논을 지켜야 할 모양이다) 등을 기술센터에서 연구하여 체계를 만들어 주면 우렁이들이 폐사하고 제초제를 뿌려야 하는 농민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는가. 겨우 7마지의 논에서 한 경험으로는 우렁이 농법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8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오전에 두 시간 반, 저녁에 3시간을 일했다. 모가 자라고 있는 것이 눈에 보여서 웃으며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런 일이다. 게다가 우리 논에는 물달개비가 주로 번식하고 있어서 거름 전쟁은 벌어지지만 햇볕을 막아서 벼의 생장이 저지되지는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벼는 자라 줄 것이다.

 

좌절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을 선택해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깨끗하게 베어진 논둑을 바라보니 다시 일할 기운이 나고, 희망도 생겼다. 부모님의 강렬한 의지도 도움이 되었고, 그리미의 격려도 좋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10월 하순의 벼베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벼의 생존능력을 믿고 나의 성실을 믿는다. 농사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힘은 성실한 모습에 있다. 성실은 모든 것의 위에 존재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