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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그래 두 번 더 넣어보자_190605 쓰리다

에곤 쉴레의 영화를 다 보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청소년 월드컵도 보지 않고 잤다. 감기에 걸려 죽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로 젊은 천재화가의 삶이 안타까웠다. 절반 정도 밖에 보지 못했지만 20세기 초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스스로를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삶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그림만은 참 좋다. 일본에게 1-0으로 승리했다.


7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8시가 다 되어 논으로 갔다. 벌써 더워지기 시작한다. 써레질을 열심히 한 덕분에 논 전체가 풀바다가 된 것은 아니었다. 논둑을 한 시간 베고 나서 선베드에 누워 논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차피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두 번이든 세 번이든 20kg씩 추가로 우렁이를 넣어보자. 30만원 정도 논바닥에 돈을 뿌린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내일이면 물갈이가 시작한지 1주일이 되니 물상태도 좋아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마음이 훨씬 편안하다.


어제는 그렇게 애를 태웠던 예초기가 오늘은 잘 돌아간다. 첫번째 이유는 어제 작업하면서 떨어졌던 전선의 연결부를 꼭 끼워 넣었더니 동력 전달이 잘 되어 엔진이 힘있게 잘 돌아간다. 두 번째 이유는, 예초기 날 속에 껴있던 여러가지 이물질을 제거하면서 불필요한 동력 손실이 없어졌다. 새 날까지 갈아끼웠더니 일이 더 잘 된다. 기계는 역시 훌륭하다. 기계를 전부 이해할 수 있다면 농사 짓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중간 논둑의 아래 부분 풀을 깎으려면 발을 최대한 벌리고 허리를 숙여야 한다. 두 번째 작업을 하면서 너무 힘이 들어서 논둑을 약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좀 편하게 작업하기 위해 왼발의 지지대를 논둑에 만들면서 작업을 했다. 훨씬 수월했다. 진작에 이렇게 할 것을 괜히 사서 고생을 했구나. 허벅지 앞쪽과 허리가 묵지근하다.


17일에 논둑을 처음 베었으니 20일만에 다시 베는 것이다. 풀이 연해서 작업하기 좋았다. 매번 20일 마다 풀 베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야겠다. 시간도 절약된다. 6월 말에 3차 예초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열 시에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예초기를 메고 논둑으로 나섰다. 절집 쪽 찰벼논둑에 약한 부분이 밟힌다. 한 번 밟아주면 5분을 버틴다. 10번을 밟아주면 한 시간을 버틴다. 수도 없이 밟아주면 하루를 버틴다. 하루를 버티다 보면 운좋게 일주일도 버틸 수 있다. 15미터 정도되는 논둑을 예초기를 맨 채 수도없이 밟아 주었다. 논둑이 제법 단단해졌을 것이다. 덕분에 예초 작업은 마무리를 못했다. 그래도 80%는 끝냈으니 좋다.


점심을 먹고 우렁이 농장에 우렁이를 주문하고 4시까지 푹 쉰 다음에 논으로 갔다. 논둑에서 오리 두 마리가 느긋하게 쉬고 있다. 우렁이 패사의 주원인은 오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논물이 흙탕물이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다. 아침에 논으로 갔을 때 오리는 없었지만 논에 흙탕물이 가득했다. 오리들이 밤새 논에서 놀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즉시 우렁이 주문을 취소했다. 지금 상황에서 우렁이를 다시 넣으면 오리에게 헌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후 일은 메벼 논의 출입구를 정리하고 확보된 공간에 모를 추가로 심는 일이다. 흙을 옮기는 일이 역시 제일 힘들었다. 괭이나 삽으로 작업하다가는 허리가 부러질 상황이어서 호미로 조금씩 작업했다. 팥죽땀이 흐른다. 흑미논의 입구도 정리하고 빈 논에 모를 추가로 심었다. 그리고 그늘에서 쉬면서 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맥주를 가져올까 하다가 참았다. 잘한 일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6시가 되어 예초기를 메고 마지막 남은 70미터 논둑을 베었다. 생각보다는 풀이 많지 않았다. 가뭄이 심했기 떄문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논둑 베기를 끝내고 2차 휴식에 들어갔다. 7시가 되자 비로소 날이 시원해졌다. 모자도 벗을 수 있었다. 작업복도 뒤집어 입었다. 앞주머니에 담고 있는 스마트폰이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발상이었다.


마지막 작업으로 폭우가 내릴 것에 대비해 배수로 맞추는 작업을 했다. 일정 높이 이상으로 물이 많아지면 배수가 되도록 조정했다. 심한 폭우나 우박이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배수로 작업을 마치고 찰벼논으로 가서 입구를 정리하고 모를 심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것처럼 꼼꼼하게 하지를 않다. 일도 성격대로 한다. 8시 반이 되어서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렁이는 다음 주에 모가 더 크고 오리들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때 다시 넣을 준비를 할 계획이다. 하루 종일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밤에도 논을 지켜야 할 지도 모른다. 일단 우렁이가 제자리를 잡아야 내가 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