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랜동안 농사일을 보시다 돌아가신 분은 옆밭 권씨네 어머니다. 그해 가을까지 일을 하셨고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다. 연세는 모른다. 혼자 농사짓는 아들이 안쓰러워 풀 한 포기라도 뽑으시러 나오셨다. 어머니는 강하기에 내 새끼 몸이 힘든 것을 참지 못하신다.
부직포를 오늘 중으로 다 씌우려 계획했는데, 참깨 모종 솎아주기를 끝내고 해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에 감자밭과 강낭콩밭의 부직포만 씌우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예초기를 메고 나오신다. 밭둑의 삼분의 일을 베어내셨다. 무리하시면 안된다. 새참을 먹으며 쉬게 하신 다음에 부직포를 까는 일로 바꿔 드리고 내가 예초기를 메었다. 잠시 예초기를 돌리다가 아버지를 들어가시게 하고 부직포를 마저 깔았다. 다섯 개의 이랑을 덮는 것이라 일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 덕분에 부직포도 쉽게 깔고, 밭둑도 삼분의 이나 베어내어 시원하니 좋다. 벌 볼 때 쓰는 마른 쑥을 채취하기 위해 남겨 놓은 쑥만 덩그러니 무슨 장식같다.
8시부터 작업을 해서 한 시가 다 되도록 밭 한 쪽에서 왔다갔다 한다. 몸으로 하는 일이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해가 높지 않아 벚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몸을 식혀 주었다. 상추쌈에 고기를 구워 소주를 반주로 하여 즐겁게 점심을 먹고 3시 반까지 푹 쉬었다.
남은 밭둑은 내일 아침에 하기로 하고 논둑으로 갔다. 물을 대고 새는 논둑을 보수하려고 했는데, 물이 많이 줄어 있었다. 찰벼논은 아침에 논둑이 넘치도록 차 있어서 자신있게 물을 껐는데, 지난 밤 사이에 물이 다 빠졌다. 어디가 새는 것일까. 반장네가 큰 펌프로 물을 대고 있어서 일단 논둑 펌프로 물을 돌려 찰벼논에 대었다. 메벼논의 물은 적다해 보여서 절집 펌프를 계속 돌렸다. 흑미논에도 물이 천천히 잘 차오르고 있었다.
찰벼논의 깊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써레질 하고 흙을 옮기나 지금 옮기나 마찬가지다. 써레질하고 힘든데 흙 옮기느라 애쓰지 말고 지금부터 하자. 천막을 준비해서 높은 곳의 흙을 퍼 날르기 시작했다. 날이 시원해서 일이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쉬엄쉬어 허리 다치지 않도록 삽으로 흙을 퍼서 천막으로 옮겨 깊은 곳을 채웠다. 대여섯 번을 했더니 금방 좋아진 느낌이다. 범위를 넓혀가며 신나게 흙 옮기기 작업을 했다. 해가 질 때까지만 하자. 선베드에 누워 휴식도 취하고 물도 마셔 가면서 슬슬 일했다. 미리미리 일 하는 것이 좋은게 바로 이런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내일 당장 모를 심어야 하면 이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아니다, 바로 그럴 때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차피 내 힘으로는 1,400평 논의 수평을 잡을 수 없다. 제일 심각한 곳을 해결할 뿐이다. 해가 지고 노을도 없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힘든 노동을 했더니 기분이 좋다. 내일을 위해 양말과 물장화를 깨끗이 빨아 널었다. 장화가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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