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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고라니 녀석들이 또 사고를 쳤다_180907 뺘뜨니차 пятница

길쇠는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산나게 쇠를 친다. 대야리 연꽃 축제에 구경꾼은 없다. 그래도 신나게 풍물을 친다. 마을에서 만들어 준 팥빙수를 안주로 해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농원으로 돌아왔더니 11시다  옷을 갈아 입고 논으로 갔다.

대규모로 벼가 누워 있다. 기가 질린다. 쓰러진 벼가 걸리적거려서 묶기가 어렵다. 자전거 탈 때 입는 옷을 입고 나왔다. 잘못하면 작업복이 되는데, 그런 위험을 무릎 쓰고 입은 이유는,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면 비닐끈을 제대로 묶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갑과 소매 사이에 맨살이 드러난 부위가 벼에 쓸려서 풀독이 올랐다. 손목을 덮어주는 이 옷이 아니면 작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땀에 절은 옷을 이틀째 입고 있다.

점점 기술이 늘어서 3-4-3으로 묶다가 5-5-5로 묶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많이 묶으니까 오히려 안정감이 있다. 그런데 벼들이 처참하게 짓밟혀 있고 익어가고 있는 이삭들이 진흙 속에 묻혀있었다. 여기 저기 똥덩어리들도 굴러다닌다. 저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총이라도 한 정 마련하고 싶어졌다. 고라니들이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따뜻한 벼위에서 뛰어다니며 논 모양이다. 모가지가 잘린 이삭들도 논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물장화를 신은 발이 푹푹 빠지고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휴식 시간에 끈으로 장화를 꽉 묶으니까 조금 움직임이 수월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작업하기가 어렵다. 힘들어서 짜증이 올라오고 고라니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다. 가라앉혀야 한다. 쉬운 부분을 작업해 본다. 벼포기를 많이 잡고 작업을 해서 일의 진척 속도도 올린다. 물기에 젖은 장갑과 진흙에 더럽혀진 손을 볼 때마다 그만 나가서 쉽다. 그러나 벼들은 논은 계속해서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조금만 더 노력해 봐, 다 할 수 있을거야.


그들의 속삭임에 속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4시가 넘도록 일을 했다. 급한 불은 껐으나 이 상태로 두면 쓰러진 벼들은 더 늘어날 것이고, 고라니들은 더욱 신나게 뛰어다닐 것이다. 아버지께서 경광등을 설치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날아다니는 허수아비를 진작에 설치했어야 했는데. 역시 게으름이 문제다. 지난 봄과 여름 내내 고라니들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그분들의 몸을 바친 방어가 성공했다. 인터넷을 통해 20매 정도 대량으로 구입하려고 했는데 뜨지를 않는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이런 사건이 난 것이다. 고라니 녀석들이 사고를 친 것이 아니라 방어에 게을렀던 것이다.


차도 밀려서 두 시간 가까이 걸려서 주차장에 도착했고, 다시 두 시간을 달려서 집에 도착했다. 맛있는 새우 요리로 저녁을 먹고 피곤해서 쓰러져 잤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요즘은 벼가 쓰러져도 세우지 않는단다. 벼 줄기가 꺾어지면 영양 공급이 되지 않아 제대로 여물지 않는단다. 예전에는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서 쓰러지자 마자 다시 세우는 작업을 했으나 요즘은 누구도 그러지 않는다. 들인 품에 비하여 얻는 것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나는 세우고 보자. 다음 주에는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