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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아주 잠깐 논을 지배한다고 생각했었다_180906 취띠예르그 Четверг

아버지가 며느리 대신 가져오신 새참을 먹고 잘라 오신 끈으로 벼를 묶는다. 흐린 하늘이 어제보다 멋진 경치를 주지 않지만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없지만 시간이 잘 흐른다. 힘든 일이 쉽게 넘어 가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오전에 여섯(쇠스찌 шесть) 시간을 일했고, 오후 다섯 시에 다시 논으로 갔다. 벼를 묶다가 보니 어느덧 해가 져버렸다. 지는 석양이 사계저수지에 멋진 석양을 만들고 있는데, 사진으로 남겨 둘 여유가 없다. 쉬면서 눈에 가득 담아둔다. '세계의 모든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내일 공연을 끝내고 몇 시간이라도 더 작업을 해야 겠다. 비가 많이 오면 많이 오는데로 작업을 해야 하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더 이상 피해가 생기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한다.


사흘 동안 작업을 하면서 작업 요령도 많이 생겼다. 훨씬 일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그래도 800(보씸소트 восемьсот)평 논의 절반 가량이 쓰러졌으니 일이 적지 않다. 이렇게 일을 해 놓으면 쓰러지지는 않을텐데 손상된 체관과 물관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제대로 벼가 여물지 걱정이 된다. 벼 이삭도 끊어지지는 않지만 꺾이는 것들이 제법 있어서 이 녀석들이 제대로 익어줄지 의문이 든다.


선베드에 누워 시원한 물을 마시고 쉬면서 논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들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내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죽이고 살리는 것이 내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살리기 위해 논으로 뛰어들어 허리 숙여 일할 수에 없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벼든 나든 다 살리는 행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공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