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시골에 내려와서 밥 얻어 먹고 가는 것은 민폐가 아니냐고 묻는다. 아니다. 한 두 시간이라도 농부들과 어울려 팥죽땀을 흘리며 일하고, 새참도 먹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시골에 일이 없는 시기는 없다.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없다. 일의 효율이 두 배 세 배로 높아지고,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농사 일은 힘들지만 목숨을 걸 정도로 힘들지 않고, 박사학위를 필요로 할 정도로 전문성을 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농부가 하는 것을 잘 보면서 그대로 따라하다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어울려 놀고 먹는 것에 더하여 일까지 하는 행복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5시. 못 일어나겠다. 5시 반. 역시 못 일어나겠다. 6시.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미가 농활단을 깨우지 말고 우리 둘이 가서 고추를 따자고 한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는데, 모두들 눈 비비며 일어난다. 작업 준비를 해서 6시 반부터 고추 따기 시작. 다섯 개의 이랑에서 동시 작업을 한다. 음악과 뉴스공장이 흐른다. 동서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왜 이리 신경을 분산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처남댁도 일을 다 끝내지 않고 어떻게 쉴 수 있느냐고 묻는다.
쉬지 않고 일하다가는 미쳐 버릴 수 있다. 노동의 목적은 삶이고 기쁨이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을 하면서 사소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도 얻게 된다. 맑은 하늘과 멋진 구름, 새들의 비행과 예쁜 노래 소리. 살려고 애쓰는 개미들과 곤충들의 부지런 떠는 모습. 벚나무가 만들어 주는 방석만한 넓이의 손바닥 그늘.
오전 열 시에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났더니 7바구니 가득 고추를 땄다. 제일 어린 효빈이서부터 제일 키가 큰 박서방까지 등짝에 땀을 뚝뚝 흘리며 일했다. 일 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크게 세부류로 나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만 하는 박서방과 처남댁, 쉼 없이 떠들며 일하는 나와 처제와 효빈이,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부르는 그리미. 잘 어울리는 팀이다. 복숭아밭에서 마지막 과일을 따고 내려오는 세 사람이 왠 사람이 이렇게 많으냐며 부러워한다. 새로 산 선베드를 밭가에 두고 효빈이와 상수와 내가 시범 사용을 해 봤다. 멋지다. 음악도 좋고, 허리에도 좋다.
샤워를 하고, 오리고기를 굽고, 어제 먹다 남은 새우 커리와 생선 스프, 된장국과 찰밥으로 열시 반이 되어서야 늦은 아침을 먹는다. 커피도 마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사일에 재능을 발견한 처남댁과 박서방을 무일농원에 파견받기로 한다. 본인들은 절대로 원하지 않지만.
수영장에 가기 위해서 낮잠을 잔다.
네 사람이 함께 수영을 하기로 하고 온갖 장비를 챙겨서 수영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강습이 적어서 자유수영 시간이 여유가 있다. 그런데, 입장권까지 끊어서 들어가려고 했더니 수영복 검사를 해야 한단다. 비치 수영복과 래쉬 가드를 입으면 입장이 안된단다. 제대로 수영복을 갖춰 입은 것은 효빈이 뿐이다. 수영복 하나를 사만원 주고 사서 상수를 들여 보내려고 했더니, 래쉬 가드를 입지 않고는 수영하지 않겠단다. 애비인 박서방에게 들어 가라고 했더니 수영을 못해서 안들어 간단다.
결국 가장 수영을 하고 싶었던 내가 새로 산 수영복을 입고 효빈이와 둘이 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노는 것을 구경하다가 커피숍에 가서 초코 빙수를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잘 됐다. 바다에서 떠 다녀 본 것이 도움이 된 모양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효빈이에게 잠영과 수중 턴 하는 법을 배웠다. 좀 더 연습하면 익숙해지겠다. 턴을 하면서 호흡관리를 잘 못해서 귀와 코로 물이 마구 밀고 들어오니 처음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러 번 시도했더니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겠다. 한 시간 반을 수영장에서 놀다가 커피숍에 합류해서 초코 빙수를 맛있게 먹었다.
금왕의 유명한 김밥집에서 다섯 줄의 김밥을 사들고 백야산 자연휴양림 물놀이장으로 갔다. 김밥을 나눠 먹고 우리는 먼저 집으로 왔다. 처남댁이 저녁에 간다고 하기에 목살을 사서 바비큐를 해 주기 위해서다. 찬바람이 불면서 비가 쏟아진다. 오전 작업을 하고, 비가 올 것에 대비해 참깨에 씌워 두었던 비닐을 벗기지 않았는데, 매우 잘한 일이었다. 제법 소나기가 내렸다. 참숫에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고비를 잘 넘기고 숯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고기를 올리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 다음에 뚜껑을 덮어서 익히고 있는데, 물놀이장 일행이 돌아오더니 냄새가 좋단다. 그리미가 준비한 기름기 좔좔 흐르는 삼겹살 보쌈까지 푸짐하게 준비해서 맵고 단 고추와 함께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어제의 고생을 되새기며 술은 조금만 마셨다. 속이 편안했다. 조카와 처남댁도 무사히 남양주의 집에 도착했단다.
겨우 두 사람이 빠졌을 뿐인데도 집은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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