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당동 백만송이 장미공원에서 은은한 장미향을 즐기고, 카페에서 이 책을 읽으며 쉬었다. 미국인이 선택한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트럼프. 힐러리라는 여성 정치가가 민주당의 후보가 아니었다면 당선되지 않았을 수준 이하의 인간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맡길 수는 없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이용하고 있지만, 다른 종류의 위기 상황이 닥치면 한반도의 분단과 대결 상황을 이용해 돌파하려 할 것이다. 문재인이나 김정은이 과연 그를 조정할 수 있을까. 험난한 여정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래서 더더욱 미국의 역사가 궁금하다.
강준만은 여러 가지 주제로 미국을 다루고 있다. 금왕도서관에 다른 책이 없어서 이 책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좀 먹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읽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으니. 미국이 제국주의 확장 정책을 취하는데 기여한 인물이 하나 있다. 시어도오 루스벨트. 콜롬비아를 침공해 파나마의 분리독립을 지원하고 파나마 운하의 관리권을 장악하는 공작을 편 인물이다. 그가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과 괌을 식민지로 획득한다. 그 과정을 보자.
"1895년 설탕의 과잉생산으로 쿠바는 경제 파탄에 직면했다. 이렇게 되자 스페인 지배에 항거하는 혁명 운동이 쿠바에서 일어났으며, (중략) 미국에서 쿠바혁명당을 결성해 독립 투쟁에 나섰던 쿠바 독립의 영웅 호세 마르티는 1895년 스페인군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당했다.
(중략) 미국 정부는 쿠바 내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1898년 1월 전함 메인호를 아바나에 파견했다. (중략) 2월 15일 정체불명의 폭발로 (메인호가) 파괴되었고 그 와중에서 미군 26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략) 미국은 4월 25일 스페인에 대해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중략) 전쟁은 쿠바, 푸에르토리코의 카리브해, 스페인의 식민지인 필리핀 등 세 곳에서 발발했다.
(중략,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전쟁이 발발하게 될 경우 스페인 식민지인 필리핀 주둔 스페인 함대를 공격하라고 (훈령을 내려두었다. 중략) 스페인은 마닐라시를 포기했다. (중략, 독립을 위해 미국을 도왔던 필리핀은) 배반을 당하고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중략, 루스벨트는) 차관보를 사임한 뒤 자원병을 모집해 스스로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중략) 자신의 돈을 들여 전비를 마련하는가 하면 부하들을 끔찍이 돌보았다. 백악관 일부에선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지만, 곧 그는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다.
(중략) 미국-스페인 전쟁의 영웅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1900년 대선에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미국의 20세기를 여는 팽창주의 질주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1901년 대통령 매킨리가 암살당하면서 대통령이 된다)" (64~75쪽)
'좋았던 시절(belle epoque)' 이라 불리며 제국주의 전성기였던 1914년, 지구의 85퍼센트가 벨기에 이탈리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야만과 폭력에 지배받았다. 사람들은 1939년의 히틀러를 미친 독재자라 말하지만 이미 100년 전부터 그 사람들은 악랄한 침략자이며 학살자였다. 오로지 히틀러만 집중 공격당하는 이유는, 그가 그 사람들을 공격했고, 마침내 패배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똑같은 일을 저지른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 앞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만행을 반성하고 보상한 일이 없으면서도 언제나 당당하다. 아직도 영국의 할머니가 영연방 회의를 소집해서 즐기고 있다. 루스벨트 또한 승리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대통령이다. 예나 지금이나.
"장군은 필리핀 인구의 절반을 죽여야 나머지 절반에게 '완벽한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중략, 필리핀 독립전쟁으로) 16만 명이 전사했고, 민간인 20만 명이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갔으며, 수백만 페소에 이르는 재산이 파괴되었다. (중략) 미국인들은 필리핀을 새로운 프런티어로 여겼으며, 필리핀인들을 과거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처럼 다루었다.
(중략) 루스벨트는 이른바 '혁신주의 시대 Progressive Era'를 이끈 혁신주의자였다. 대기업 병폐의 치유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할 것을 천명했다. (중략, 강화된 셔먼 트러스트 금지법으로) 그는 우선 악명 높은 몇몇 기업의 통합을 해체하는 데 주력했다.
(중략) 혁신주의는 더욱 강력하고 위대한 미국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와 동전의 양면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략) 나는 그 어떤 전쟁도 환영할 생각이네. 이 나라에는 전쟁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중략) 필리핀 어느 마을에 라이플총으로 총격을 퍼부어 무장도 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 600여 명 모두를 몰살 (중략, 이 학살에 참여한 미군들을 치하한 루스벨트에 격분한 마크 트웨인은)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를 폭로하고 미국 국기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국기를 꺼내서 하얀 줄무늬를 검게 덧칠하고 별 대신에 해골과 십자 형태의 뼈를 그려넣어야 할 것이다." (92~100쪽)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한 한 달 만에 시작되었다. 미국은 독일과 아일랜드, 유대인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이 멕시코를 부추겨서 미국과 맞서도록 음모를 꾸미고, 잠수함으로 미국 상선들을 공격하자 1917년 6월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는 전쟁의 고통 속에서 10월 혁명으로 독일과 종전협정을 맺으며 전쟁에서 빠진다.
"세계의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중략) 100만 명의 군인이 필요했지만 처음 6주 동안 자원한 사람은 7만 3천명에 불과했다. 결국 의회는 징병법 Selective Service Act을 통과시켰다. (중략) 군대는 흑인과 백인용 시설을 분리하고, 흑인이 장교가 되는 것을 막았으며, 흑인 병사들에게 주로 천한 일만 시키는 등 인종차별 정책을 썼다.
(중략, 1918년) 11월 11일 11시 휴전 조약이 조인되었다. (중략) 독일 180만 명, 러시아 170만 명, 프랑스 140만 명, 오스트리아-헝가리 130만 명, 영국 74만 명, 이탈리아 61만 명 등 약 1,0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중략) 스페인 독감까지 전 세계를 휩쓸어, 1918년 한 해 동안 2,200만 명이 사망했다. (중략) 조선에선 약 14만 명이 사망했다.
(중략, 윌슨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에 대해) 기대와 달리 그의 동맹국들은 윌슨의 말을 듣지 않았다. 또 그들은 눈앞의 이익만 좇았다.
(중략) 1914년 심각한 경제 위기에 봉착했던 미국은 (중략) 전쟁전 30억 달러의 외채를 갖고 있었지만 전후에는 약 130억 달러의 채권국이 되었고, 그 와중에서 월스트리트는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중략) 윌슨은 (국제연맹 창설을 핵심으로 하는) 베르샤유 조약의 상원 인준이 거부되자 곧 앓아누웠다. 뇌혈전으로 좌반신 일부가 마비되는 등 남은 임기 17개월 동안 사실상 식물 대통령 (중략, 실권을 장악한 법무장관 미첼 파머는 1919년 8월) 후버라는 반공주의자 (중략) 후에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 '편집증 환자'라는 진단이 내려진 후버는 1924년부터 1972년 숨을 거둘 때까지 48년 동안 FBI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국장으로 장기 집권하게 된다." (168~196쪽)
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의 하나였던 일본은 채권국이자 주요 무역국으로 성장했다. 조선은 고종의 장례식에 맞춰 3.1 독립운동을 시작하지만 민족자결주의는 이미 파리강화회의에서 배척되었다. 안타깝지만 독립의 길은 더욱 멀고 희생은 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7년 동안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12촌(친척이라 하기에는 너무 먼) 동생뻘이었고, 엘리노어 루즈벨트와 결혼할 때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가 신부 아버지를 대신해 참석했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프랭클린은 소아마비를 앓은 몸으로 세 번이나 대통령이 되었고, 루즈벨트 가문은 미국을 19년 동안이나 통치한다.
전임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는 1차 대전 후 번영기를 누린 아메리카를 자랑스워했으나, 대공황이 터지면서 속수무책으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시민들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 줄을 몰랐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시민들의 아픔을 희망으로 치유하다면서 고급 정식으로 식사를 하는가 하면, 정부가 25년 후 지불하기로 약속했던 1차대전 보너스를 미리 지불해 달라는 참전 군인과 가족들의 요구를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를 동원해서 무력 진압하기도 했다.
"(루즈벨트) 어떤 방법이든 택해 그것을 해봅시다. 만일 실패한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 것을 해 봅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해보자는 것입니다. (중략) 만약 나를 태워주지 않으면, 대통령 선거에서 후버를 찍겠다. (중략) 루스벨트의 취임식이 끝나자 '보너스 군대'는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중략) 루스벨트는 보너스 군대에 식사를 제공했으며, 아내 엘리너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짜 커피도 실컷 마시게 해주라고 당부했다. 엘리너는 그들과 함꼐 어울리며 노래도 불렀다. (중략) 후버는 군대를 보냈고, 루스벨트는 아내를 보냈다." (279~283쪽)
미국이 전쟁을 통해 강력해졌는지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없었으나 1, 2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한 유럽의 강국들을 제치고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하이퍼 파워로 자리잡은 것은 틀림없다. 풍요, 소비, 창조등 새로운 가치들도 확대 발전시켰다. 영화와 프로이트 심리학, 라디오와 TV, 백화점 등등.
그러나 개인주의의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이유없는 총질로 불안해진 국가가 세계의 자유와 정의를 수호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은 독재 체제 구축으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어느 나라도 닥쳐 올 위기에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전쟁 또는 어떤 종류의 광풍이 불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 우리의 살 길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다.
"1950년 미국 시장은 세계 두 번째 시장인 영국 시장의 9배 이상이었으며, (중략) 미국이 기술적으로 선두에 서지 못하거나 지도력을 갖지 못한 산업 분야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다." (325쪽)
아울러 알아둘만한 역사도 함께 옮겨본다. 이 문단을 읽고 반미주의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와 강준만이 바라는 것은 아니다. 시어도오 루즈벨트의 생각처럼 약한 국가는 망하고 강한 국가는 발전한다는 것이 세계의 논리라는 것을 새기자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식민지가 사라진 지금 국가라는 테두리의 결정 권한은 국민들에게 주어졌다. 독재와 빈곤 속에서 살 것이냐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풍요로움 속에서 살 것이냐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은 고난극복의 역사이며 현재의 평화와 번영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강준만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전한다.
"(러일전쟁에서) 일본군 사상자는 68만 9,000명 (중략) 군사비는 14억 엔으로 청일전쟁의 전비를 6배나 초과하는 비용이었고, 1903년도 군사비의 10배, 국가 예산의 5배 가까운 액수였다. (중략) 포츠머스 회담의 핵심은 조선을 일본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중략) 전쟁 땐 일본을 지지했지만 전후 일본이 너무 많이 가져가는 걸 경계한 루스벨트의 노회한 외교술의 승리였다. 조선만 먹고 떨어지라는 식이었다. (중략) 1905년 9월 9일 루스벨트는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발표했다. 루스벨트는 포츠머스 회담을 주선하고 중재해 세계 평화를 이루었다고 1906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며, 90여 년 후인 1998년에 미국 '타임'은 루스벨트를 '20세기 최초의 위대한 정치적 인물'로 선정한다." (1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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