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과일맛 블랙티의 향기를 맡으며 즐거운 휴식. 도올의 글은 이리저리 튄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알려주어 산만하지만 주장의 요지는 명확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에서 이미 꿔송링(郭松龄)과 장쉐량(張學良)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도올 또한 책 한 권을 할애애서 아주 많이 이야기 한다.
두 개의 단어를 알아야 하는데, 먼저 따오꺼(倒戈). 창을 돌리다 즉 반란이다. 꿔송링의 반란이다. 똥뻬이(중국 동북지방 즉 풍요로운 만주 벌판)의 최대 군벌인 장쉐량의 아버지에 대해 스승인 꿔송링이 반란을 일으키는 데 그 명분이 아름답다.
"소수의 권력을 위하여 인민의 삶이 너무 희생되고 있다 (중략) 전쟁할 돈으로 교육을 흥성케 하고 인재를 배양하고 실업을 개발하여야 한다. 인민이 헐벗고 추위에 떨게 만들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략) 똥뻬이는 그러한 실력과 가능성이 있는 곳" (13쪽)
취지는 아름다웠고 능력도 있었으나, 실권과 지배력이 더 강한 장쉐량에 의해 스승 꿔송링의 반란은 진압된다. 스승을 살리려던 장쉐량의 노력은 간신배의 농락에 의해 좌절되고, 스승은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꿈꿨던 부인과 함께 처형되고 만다. 그들의 죽음은 결국 장쉐량의 실패로 귀결된다고 도올은 안타까워 한다.
두 번째 단어는 이치(易帜). 깃발을 바꿔들다.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다. 장쉐량이 똥뻬이의 대권을 이어받아 중국 내전을 끝내는 결단을 내린다. 스승인 꿔송링의 뜻이기도 했고, 중국 통일을 지향했던 아버지의 뜻이기도 했으며, 본인의 철학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중국 사람이 중국 땅을 차지하고 중국인들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내가 중국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러시아나 일본이지 중국인이 아니다. 이치로써 내전을 끝내고 장제스 휘하의 중국 군대로 들어가는 것이 쫑꿔런을 위한 길이다.
대의를 알고 실천하는 장쉐량의 편지가 감동이다. 몰래 도망가면서 한강 철교를 폭파한 이승만의 만행과 비교하면서 도올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영웅으로 받들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제가 황하철교를 폭파하지 않은 것은 이 다리야말로 중국 최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전 인민의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파괴를 하기는 쉬우나 한 번 부서지면 일시에 수복이 불가능하며, 국가의 원기가 손상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결코 철퇴하느라고 창촉하여 다리를 파괴할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올시다.
아군이 정현에 주둔할 때에 창고에 여분이 심히 많았습니다. 이것도 태우고 폭파하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올시다. 잦은 전쟁으로 하남성의 인민들이 유리하는 모습이 처참한데, 어찌 이재민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식량을 불태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나 나나 다같이 쫑꾸어르언(中國人)이올시다. 귀군이 만약 식량의 수급에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면 이 식량을 이재민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요." (85쪽)
중국 대륙을 잃은 장제스에 대한 도올의 평가는 엄정하다. 장쉐량의 '부저항'으로 똥뻬이의 군사 전력이 궤멸한 것은 장쉐량의 실패인 것은 분명하지만, 1931년 9월 18일의 만주사변(918 사변)은 장제스의 더러운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장개석은 자기의 기획대로 세사가 다 흘러가고 있다고 (희희낙락했으나 / 중략) 예상치 못한 낙하의 반역(장쉐량의 시안사변)이 그를 어두운 죽음의 세계로 몰아갔다. (중략) 지금(1931년) 일본과 맞붙으면 3일 내로 전 중국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던 장개석으로서는 (부저항 정책으로) 똥뻬이를 일본에게 날리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개석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자라면 장학량을 시켜서 똥뻬이를 지켰어야 했다.
서안사변 이후라도 장학량을 감금하고 양호성을 죽일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관동군과 싸워가며 똥뻬이를 굳건히 지키는 역할을 분담케 했더라면 모택동이 대륙을 석권하는 일은 이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면 조선의 분단이라는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장학량 개인이 부저항을 선택한 것은 (중략) 남경정부로부터 끊임없이 부저항의 압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중략) 장개석에 대한 개인의 '충' 때문에 똥뻬이 인민을 구원해야만 하는 수장으로서의 천명을 망각한 것이다. 장학량은 장개석의 주구로서 부저항정책의 집행자가 된 동시에 부저항정책의 최대 희생물이 된 것이다." (219~228쪽)
마지막으로 장쉐량은 아버지가 일궈놓은 터전 위에서 강력한 똥뻬이를 만들었다. 그만의 철학으로 중국 대륙통일에 기여했고, 시안사변으로 국공내전을 종식시키고 항일전쟁에 나서게 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였다. 장쉐량은 중국의 통일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라는 목표를 이루고 천수를 누렸지만, 36살 이후로 연금상태로 살아야 했다.
김정은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닦아놓은 터전 위에서 핵과 ICBM을 개발했고, 잘 사는 북한 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하여 살상 무기를 폐기하고, 북한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김정은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사는이야기 >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이슬람까지_180609 суббота 수보따 (0) | 2018.06.10 |
---|---|
루스벨트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고 노벨상을 받았다_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_180603 바스끄리씨예니에 (0) | 2018.06.03 |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_강준만_인물과사상사_180527 Воскресенье (0) | 2018.05.27 |
걷기 여행이라_11년, 걸어서 지구 한 바퀴_180516, 쓰리다 (0) | 2018.05.16 |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_180513 Воскресенье (0) | 2018.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