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불효하는 것도 향악당의 회원과 싸우는 것도 화를 제대로 다스리고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잘못이 있건 없건, 화를 내고 불화가 생기는 것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행을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돈까지 우글대는 도시를 떠났건만 불행을 제대로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근원은 돈과 사람이 아니라 화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리미의 강력한 권유로 다시 화를 다스리기 위한 마음 공부를 하기로 한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서문)
화를 풀어내지 못하고 억눌러두면 언제고 더 크게 폭발한다. 지난 번에 상대방의 말로 상처를 받았을 때, 욱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봉사반을 탈퇴했다. 이미 화를 낸 것이지만 더 큰 화를 내며 싸우지 않기 위해 회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내 마음 속의 분노와 상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결국 며칠 지나서 지난 화요일에 또 한 번의 충돌이 있었고, 욕설까지 주고 받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화는 잘 풀어내지 못하면 말이나 행동을 일시적으로 삼간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다음 단계가 잘 진행되어야 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이미 어떤 상처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언행이 병이나 상처를 드러낸 것이고, 그의 병을 함께 치유해 가자라는 생각이 일어나야 비로소 화가 해소될 수 있다. 과연 그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화가 치밀었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자신의 화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화가 치밀어오른 상태에서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하게 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뿐이다. (중략) 타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봄으로써 그 사람도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28쪽)
화의 씨앗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화를 쏟아내는 그런 것이 있는 모양이다. 지난 번에 그는 봉사반에서 쇠와 장구를 순서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나의 제안을 듣고서 '자신의 기량 향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면 안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나는 화가 났고, 일시적으로 참았지만 화를 키워서 두 번째 충돌로 이어지게 했다. 내 속에 어떤 종류의 화의 씨앗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에 그런 말에 화가 났을까.
"우리는 누구나 의식의 깊은 곳에 화의 씨를 갖고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화의 씨가 가령 사랑이나 이해 같은 다른 감정의 씨 보다 훨씬 더 큰 경우가 있다. 화의 씨가 더 큰 것은 그것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43쪽)
얼굴을 마주하고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때 정말로 미움이 사라지는 것이며, 화가 해소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모든 순간은 화를 쌓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글로써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첫번째 대화에서 글로써 쌓은 좋은 감정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과연 가능할까. 두렵다. 첫번째 대화가. 그럴 때 기억하자.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와 행복이라는 것을.
"그는 아버지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단지 혼자서 시작을 했다. 생활이 달라지고 자기자신과의 평화를 이룬 덕분에 그는 매주 한 번씩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중략) 그리고 다이얼을 돌리자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중략) 지금 저의 관심은 오직 아버지와의 좋았던 관계를 다시 찾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저는 더없이 행복해질 거예요.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에요." (58쪽)
왜 마음 속에 분노와 경멸의 감정이 쌓이는 것일까. 교만하고 오만하기 때문일까. 그가 내 쇠 치는 소리를 들으며, 막음쇠가 틀렸다는 둥 지적을 하거나 이렇게 쳐 보라고 하면서 완성되지 못한 소리를 들려줄 때 나는 몹시 힘들었다. 그가 다른 회원들을 붙잡고 비슷한 행동을 할 때도 역시 힘들었다. 그것이 그를 미워하고 경멸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그가 나이가 위라서 차마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참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는 것은 결국 더 큰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터질 줄 알았으면 차라리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빨리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맞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감추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화가 나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중략) 화가 나지 않은 척해서는 안된다. 고통스럽지 않은 척해서도 안 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지금 화가 났으며 그래서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말을 아주 차분하고 침착하게 해야 한다." (64쪽)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비극이다. 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미움과 증오가 없다면 전쟁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개인들이 화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미움과 증오는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것이다. 평화를 사랑한다면 개인 차원에서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다. 외부 자극에 의하여 그것들이 반응하는데 은은하게 진행되기도 하고 급격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분노와 사랑의 감정은 그 여운이 매우 길다.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거나 깨끗한 감정에 씻어서 풀어내 버려야 한다.
사랑과 달리 화는 빨리 풀어낼 수록 좋다. 화라고 하는 씨앗은 끊임없이 좋지 않은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미움, 복수, 모멸, 단절, 폭력 등등. 큰 소리로 흥분해서 미친 사람처럼 화를 풀려고 하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니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잘 되지 않겠지만 노력하는 것이 화를 푸는 길이다. 화가 난 사람이 화를 풀게 하려면 화의 원인이 된 사람이 잘 대응해 줘야 한다.
"화가 난 쪽은 자기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것을 털어놓을 권리가 있다. (중략) 평가나 비판이나 (조언이나 변명 등도 / 무일) 분석을 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아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자세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략) " (91쪽)
연민의 정이 화의 씨앗을 억눌러 준다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연민과 짜증이 같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연민이 있으면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상대방에 맞서 분노로 맞받아 치지 않게 되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도 깊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중략) 연민의 정을 베풀어줄 수 있고, (중략)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그것이 나를 자극하여 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연민은 화라는 독을 걸러내는 최고의 약이기 때문이다." (94쪽)
이 책의 50쪽을 넘으면서부터 든 생각인데, 더 이상의 내용이 없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낀다. 끊임없이 호흡과 보행명상으로 수련하라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얼만큼을 더 읽어야 할까.
화가 나면 큰 소리와 빠른 행동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표시하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화를 삭이지 못하고 온갖 원망과 증오를 보낸다. 누워서 무기력하게 잠을 자면서 화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한 행위는 흙을 물 속에 가라 앉히는 것과 같다. 흙(화)이 가라앉아 있으니 맑은 물처럼 보이지만 아주 작은 자극만 주어져도 커다란 손으로 물을 휘젓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려서 순식간에 화가 가득한 마음(혼탁한 흙탕물)으로 돌변하고 만다. 풀어내어 흘려버리지 않는 화라는 존재는 두렵고 끈질긴 존재다. 이런 지적은 가슴 속에 깊이 새겨 둘 필요가 있다.
"화가 나면 그것을 발산해버리라고 권고하는 치료사들이 있다. 그들은 가령 몽둥이로 타이어를 때리거나 폐차를 망치로 있는 힘껏 두드리는 등, 화를 배설해버리라고 권한다. (중략, 그런 행동을 하면) 마음속에 들어 있는 화의 씨앗도 날마다 자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가 그를 화나게 하면 그는 그 동안 연습했던 화를 실행할 것이다. (중략) 화를 그렇게 발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중략) 화를 예행연습함으로써 그 뿌리가 그새 더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136쪽)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고 나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상대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게 된다. 그 사람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이 편할까. 그렇지 않았다.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이야기 역시 받아들이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습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
"나는 곧 타인이다. (중략) 분노는 두 사람을 완전히 별개의 존재인 것같이 만든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아직도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략)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중략) 우리가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란 것을 통찰하면 우리의 행복과 고통도 우리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142쪽)
한 번도 내가 잘못해서 다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즉시 사과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 저 사람처럼 나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무심한 나의 언행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분노를 일으켰을 것이다. 내가 그렇다면 타인들도 그럴 것이다. 거기에서 출발하면 모든 인간을 나라고 생각하는 자각이 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의 적은 타인들이 아니다. 우리의 적은 우리와 타인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폭력과 무지와 불의다. 연민과 이해로 무장하고 있을 때 우리는 타인들과 싸우지 않고, 다만 남을 침략하고 지배하고 착취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속성과 맞서 싸울 수 있다." (148쪽)
비판을 받게 되면 왜 화가 나는 것일까. 사람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나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누군가가 나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지적하며 비판해도 기분이 나쁘지 말아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 '나는 틀리지 않는다'라는 오만이거나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자기애일까. 단순히 틀렸다거나 불의하다라는 말에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에 틀림없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오도하는 소피스트라고 비판한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을 보러 가서 '혹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를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한다.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지적할 때 그 사람의 주장을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반성할 것이 있으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습관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다. 습관적 에너지에 떠밀려서 말이나 행동을 하면 타인들과의 관계를 해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중략) 수많은 사람들이 습관적 에너지 때문에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중략) 우리의 지성과 지식은 습관적 에너지를 처리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략) 습관적 에너지가 일어날 때 즉시 호흡을 의적으로 해서 (중략) 자각의 에너지로 습관적 에너지를 감싸안으면 우리는 안전하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187쪽)
오늘 아침 그리미로부터 잘못된 인식을 일반화하려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뒷돈을 받거나 무기력한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다. 모든 공무원들이 그러는 것이 아닌데, 공무원은 그렇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들과 의견 차이가 생겨서 일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무능력하고 뒷돈을 바라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분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공무원들에게 화가 나는 것이지 모든 공무원에게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화를 내는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경멸하거나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흠. 그렇다면 그리미의 비판은 올바른 것이다. 이런 비판을 듣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짜증이 나는 것은 왜일까. 아니면 잘 설명하려고 하고, 맞으면 고치려고 노력하면 될텐데 왜 화가 나는 것일까.
무슨 일을 하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 화를 풀어내는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자. 화를 보살펴야 한다는 말도 잘 알지 못하고, 호흡과 보행명상이라는 화를 보살피는 방법도 수련하면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니 스님이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해 보자.
"학위를 얻는 데는 누구나 6년이나 8년이란 시간을 기껴이 들인다. 그런데 어찌해서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하는 데는 시간을 들이지 않는가? 화를 다스리는데는? 우리가 그러한 일들에 투자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191쪽)
결국은 끝까지 읽어냈다. 스님의 글이 공감이 가서인지 지금 내 상황이 너무나 절박해서 화를 다스리고 보살피는 방법을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났더니 앞으로 무엇을 실천하여 화를 다스리고 보살필 것인가.
화가 나면 화와 대화를 시도해 볼 것이다. 왜 화가 났는지 물어보고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릴 것인지를 물어볼 것이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다면 일단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볼 일이다.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듣기 어렵다면 조용히 자리를 피해 화를 보살핀 뒤에 다시 들어본다. 화에 대한 책도 계속해서 읽어볼 것이고, 화를 보살피기 위한 시간을 계속 가질 것이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내가 얼마나 화를 잘 풀어내는지를 볼 것이다.
얼마 남지않은 세월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
- 화 / Thich Nhat Hanh 지음 /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2002년)
'사는이야기 >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구나_중국인 이야기 2권_150816~150823, 일 (0) | 2015.08.18 |
---|---|
신경숙의 표절_150622, 월 (0) | 2015.06.22 |
효소액은 식물의 천연향을 첨가한 설탕물이다_퀴네가 들려주는 효소이야기_150513~15060 (0) | 2015.05.13 |
시코쿠를 걷다_150408, 수 (0) | 2015.04.08 |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은_깊은 강_150306, 금 (0) | 2015.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