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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시코쿠를 걷다_150408, 수

오전에는 기술고문 김선생님댁에서 굴삭기 연습을 했다. 이팝나무를 심기 위해 밭을 정리하면서 배수로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매우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쉽지 않았고, 경사지에 세워진 굴삭기가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온 몸에 쓸데없는 힘을 주고 일을 했더니 점심을 먹고 낮잠에 곯아 떨어져 버렸다. 머리를 감기 위해 화장실을 가느라고 그동안 지지부진하게 읽었던 책을 들었다.

 

"할머니는 정자에서 순례자들에게 차와 귤, 과자를 대접하고 있었다. (중략)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전화하라고, 그러면 달려가 돕겠다고 내게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며 말했다.

 

'우린 언제 어떻게 죽을지, 그리고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는 알 수 없어요. 그건 저쪽에서 정하는 거니까. 하지만 어떻게 살지는 내가, 우리가 정할 수 있어요.'

 

그 할머니는 그렇게 멋진 말로 서두를 열며 다시 자신의 가방을 뒤져 작은 수첩을 하나 꺼내 들고, 한쪽을 펼쳐 보여줬다. 거기에는 숫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나에게 남은 날을 적은 거야' 백 살까지 산다고 하고, 남은 날을 셈해 놓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얼마나 남았는지 가끔 꺼내 봐요. (중략) 남은 날을 보면, 그것만으로 오늘 하루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뀐다오. 그러므로 이 표는 내 삶의 각성제라 할 수 있어요.'"(173쪽)

 

두말 할 필요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내가 결정할 문제다. 얼마 전 새마을운동중앙회 음성지회 사무국장 자리를 공개 채용한다고 해서 가족들과 의논을 했다. 다들 반대였다. 새마을 운동이 시민의 자발적인 운동이 아닌 정권의 홍보를 담당하는 역할을 했었고, 전경환이를 비롯한 5공 세력들의 비리의 온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단체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스스로 더러운 물에 몸을 씼겠다고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시골에 내려와 보니 많은 단체들이 활동을 한다. 이 단체들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로 운영되기 보다는 정부나 지자체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하다 못해 탁구나 배구 동호회도 읍면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다. 모두가 관변 단체이다. 향악당은 그나마 자체 공연 수입금이 있지만 연습실의 건설은 물론이고 기초 운영비는 군의 지원이 없으면 운영이 곤란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는 자원봉사를 주목적으로 한다. 어려운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고, 장학금을 주고, 청소를 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일을 하는 기관이다. 군에서 예산이 배정되므로 예산이 사용되는 것은 감사를 받는다. 말 그대로의 활동이라면 일반적인 봉사활동단체와 다름이 없다.

 

이 단체에 참여해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봉사활동의 내용이 좋아서다. 집을 고쳐주거나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일은 꼭 해 보고 싶은 일이다. 헤비타트 운동 본부에도 알아본 적이 있는데, 절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포기했었다. 다문화가정의 가족들을 위한 오카리나 봉사 활동도 계획하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활동을 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두 번째로 마을의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서로 농사짓는 방식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 좀처럼 대화의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봉사활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 마을공동체에 보다 빨리 융화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런 목적으로 새마을운동 중앙회에 참여하는 것은 과연 내 삶의 철학과 배치되는 것일까.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인데, 참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