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행이 지났다고 해도 여전히 효소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식음료가 단맛을 중심으로 즐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빵을 먹어도 퍽퍽한 빵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달고 기름진 잼이나 버터를 발라 먹어야 맛있다. 오징어 볶음을 먹어도 맵고 달아야 하고, 짜장면을 먹어도 달아야 한다. 음료들도 거의 예외가 없다. 어차피 달달한 식음료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직접 만든 설탕물로 맛을 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식물 발효액은 단순한 설탕물이 아니고 야채나 과일의 즙을 첨가한 것이니 단맛도 내면서 여러 식물의 영양을 동시에 섭취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음성군에서 주최하는 평생교육과정의 하나로 발효과정 교육이 있어서 함께 들으며 이 책을 읽는다. 어린이들이나 비전문가를 위한 책인지 아주 쉽게 설명을 해 놓아서 효소에 대해 첫 발을 떼는데 도움이 된다.
먼저 '에너지 언덕'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종이와 산소가 반응하기 위해서는 높은 열이 필요하고, 그 열이 충분히 공급되어 에너지 언덕을 넘어서면, 더 이상의 열(즉 에너지)은 공급되지 않아도 종이와 산소는 계속 화학반응을 일으켜 불탄다는 것이다. 30년 전 쯤의 화학시간에 분명히 배웠을 텐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새로운 사실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불이 붙는다는 것은 화학반응이고, 어떤 물질과 산소가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에너지 언덕을 넘어야 한다. 종이와 산소가 반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언덕을 넘어야 한답니다. (중략) 종이 + 산소 -> 이산화탄소 + 물 + 에너지. 이 같은 반응, 즉 불이 붙기 위해서는 처음에 열을 가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불이 붙기 시작하면 불은 계속해서 종이를 태우게 됩니다." (24쪽)
그리고 이야기는 인체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간다. 생명 유지의 근원인 포도당이라는 영양소를 얻기 위해서 사람(또는 동물)의 몸 안에서는 끊임없이 화학반응이 일어나야 하고, 이 반응을 위해서는 반드시 에너지 언덕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반응을 위해 높은 온도를 가하게 되면 오히려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결국 체내 화학반응도 일으키면서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 인체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효소다. 화학반응의 에너지 언덕을 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효소는 단백질로 만들어져 있고 인체와 마찬가지로 높은 열에 약하다.
"포도당과 같은 영양소를 분해하기 위해서도 열이 필요합니다. 포도당은 우리 몸 안의 세포들이 활동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이지요. 즉 세포는 잘게 분해된 포도당을 먹고 산답니다. 그러면 우리 몸 안에 있는 포도당을 분해하기 위해 열을 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체온이 올라가겠지요. 체온이 올라간다는 것은 우리에겐 아주 위험한 변화입니다. 우리의 정상 체온은 36.5도인데 체온이 40도 정도만 되어도 생명이 아주 위험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 몸에서는 포도당을 분해할 때 열을 가하지 않는답니다.
(중략) 다행히 우리 몸에는 에너지 언덕을 낮추는 장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 안에서는 화학반응이 신속하게 일어나지요. (중략) 바로 효소가 그 역할을 한답니다." (30쪽)
효소는 화학반응 과정에서 없어지지 않으며 적은 양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최초로 발견된 효소는 고기를 단백질로 분해하는 펩신이며, 아밀라아제를 발견하는 과정도 설명한다.
"한국에는 아주 좋은 음료가 있더군요. 자연의 음료, 식혜! 이것은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료입니다. 식혜는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를 이용하여 만들지요. (중략) 1833년 프랑스의 화학자 페앙과 페르소는 보리의 싹에 있는 물질을 추출하여 실험을 하였지요. 보리의 싹을 '맥아'라고 하고, 또 그것을 말린 것을 '엿기름'이라고 합니다. 실험 결과 엿기름에 있는 물질이 녹말을 분해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녹말을 분해하면 단맛이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답니다. 이 효소가 바로 아밀라아제입니다.
(중략) 페앙과 페르소는 녹말에 아밀라아제를 첨가했을 때 녹말이 분해되고 거기에 또 다시 녹말을 넣으면 계속 분해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녹말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아밀라아제가 없어지지 않았던 거지요. 그리고 그들은 아밀라아제를 100도로 가열하면 녹말을 분해하는 기능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답니다." (40쪽)
"보리의 싹을 틔워 말린 것을 엿기름이라고 합니다. 엿기름 안에는 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들어 있답니다. (중략) 아밀라아제는 녹말을 엿당으로 분해하는 효소(50도 이상에서 활발하게 작용, 중략) 아밀라아제가 밥의 녹말을 분해하여 엿당으로 만든답니다. (중략) 설탕이 식혜를 만드는 데 무슨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단지 식혜 특유의 맛에 설탕을 넣어 단맛을 더하고자 하는 겁니다." (105쪽)
식혜가 아밀라아제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훌륭한 음료라는 것이다. 밥을 발효시켜 만든 음료가 식혜인데, 여기에서 사용되는 효소는 엿기름(보리의 싹을 말린 것) 속에 든 아밀라아제다. 식혜는 밥을 '엿기름 속에 든 효소'로 발효시켜 만든다. 이 때 설탕을 첨가하는 것은 설탕이 효소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발효된 녹말이 포도당으로 되면서 만들어진 단맛을 좀 더 강하게 하기 위하여 첨가되는 것이라고 한다.
발효 교육에서는 유용한 풀, 꽃과 과일들을 발효시키는 데 어떤 효소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설탕을 섞어 넣는 이유는, 식혜와는 달리, 식물이 부패하지 않게 하면서 식물의 즙을 녹아 나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삼투압 현상을 이용하여 유용한 성분을 뽑아낸다는 것이다. 밥과 같은 기질(효소가 작용하는 물질)이 식물이라면 엿기름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효소가 작용하는 것일까?
소금에 절인 배추는 젓국과 고추가루, 파와 무 등을 썰어 넣어 함께 버무리면 발효가 일어난다. 유산균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산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공기, 소금, 배추, 아니면 젓국?
식물 발효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식물 무게의 6~70% 정도의 설탕과 1%의 소금, 그리고 세척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섞이는 물과 공기(한지를 통해 공기와 접촉) 뿐이다. 어디에서 식물을 발효시키는 효소가 오는 것일까. 그 효소는 어떤 효소일까.
녹말은 또 무엇일까? 밀가루에도 있고 쌀에도 있으니 탄수화물을 말하는 것일까? 백과사전에는 식물의 광합성으로 만들어지는 탄소, 수소, 산소의 화합물(Cn(H2O)m)이 탄수화물이며,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다당류 탄수화물 중의 하나가 녹말이라고 한다.
“탄수화물(炭水化物, carbohydrate) : 19세기 초에 최초로 탄수화물을 분석해 물(H2O)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비율의 수소(H)와 산소(O) 및 탄소(C)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탄수화물의 일반식은 Cn(H2O)m이나 그 부류가 너무 광범위해 간단한 정의로 이들을 모두 망라하지 못한다.
(중략) 녹색식물은 이산화탄소와 물을 탄수화물로 전환하기 위해 광합성을 한다. 광합성 과정에서는 산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빛 에너지가 탄수화물의 화학 에너지로 바뀐다. 식물은 (중략) 여러 과일에 들어 있는 수크로오스(설탕), 식물의 주요 구조성분인 셀룰로오스, 저장 녹말, 그리고 필수 구조성분으로 작용하는 매우 다양한 그 밖의 다당류로 전환한다.
(중략) 탄수화물에 대한 몇 가지 분류체계 가운데 가장 흔히 쓰이는 것 중의 하나는 탄수화물을 단당류·이당류·올리고당류·다당류로 나누는 것이다. (중략) 가장 중요한 단당류로는 포도당(중략), 이당류인 수크로오스(설탕)는 포도당 1분자와 프룩토오스(단당류) 분자로 되어 있다.
(중략) 다당류는 셀룰로오스·녹말·글리코겐 같은 커다란 분자로 1만 개 이상의 단당류 단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중략) 가장 잘 알려진 다당류는 셀룰로오스와 녹말(중략) 식물의 기본 구조성분인 셀룰로오스는 3,000개 이상의 포도당 분자로 이루어진 커다란 선형 분자이다.”
- 다음 백과사전 중에서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효소를 활용한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빵이 곰팡이와 효소의 합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동안 가졌던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빵은 아밀라아제(효소)와 효모(yeast, 곰팡이)가 합작으로 밀가루를 이용해 만들어낸 식품이라는 것이다.
"아밀라아제는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랍니다. 아밀라아제를 적당히 넣으면 녹말이 조금 분해되지요. 그러면 반죽이 부드러워지고 잘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빵에 넣는 효모도 이용하기에 편리해진답니다. 녹말이 분해되면서 효모가 이용하기 쉬운 당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중략) 효모가 당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생겨나기 때문이랍니다. 그때 생긴 이산화탄소는 밀가루 반죽 안에 갇히게 되죠. 그러면 기포가 생겨 반죽이 부풀어 오릅니다." (100쪽)
치즈의 제조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오래 전 사람들의 지혜로 만들어낸 식품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어떻게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효소는 기질과 반응하면서 그 양이 줄거나 늘지는 않지만 단백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된다. 결국 효소를 얻기 위해서는 효소를 보유한 생물의 희생이 따르거나 화학적으로 제조해 내야 한다. 그 문제를 결국은 곰팡이가 해결해 냈다고 한다.
"(치즈는) 우유에 유산균을 집어넣어 발효시킨 것입니다. (중략) 발효시킨 우유를 굳게 하는 데는 렌넷(rennet)이 이용됩니다. 렌넷이란 어린 송아지의 위에서 추출한 물질로서 그 속에는 레닌이라는 효소가 포함되어 있지요. 우유에 렌넷을 가하면 레닌의 작용으로 두부처럼 굳어집니다. 이것을 세게 눌러 더 단단히 만든 다음 숙성시키는 것이 치즈입니다. (중략)그런데 렌넷이 어린 송아지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에 어린 송아지를 많이 도살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중략, 일본에서) 곰팡이로부터 레닌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성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유럽에서 치즈를 만들 때 이것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102쪽)
가죽을 만드는 기술도 또한 대단하다.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동물의 피부를 질기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효소를 이용하여 콜라겐만을 남기는 처리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과학의 발견 이전에 자연 상태에서 이런 처리 과정을 발견해 낸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것이다. 수많은 실패와 우연과 노력들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가죽이 질긴 것은 콜라겐이라는 질긴 단백질 때문이지요. 하지만 원래 동물의 피부에는 콜라겐 외에도 여러 가지 단백질이 있습니다. 이러한 단백질을 제거하고 콜라겐만을 남겨야 질 좋은 가죽이 되지요. 이때 사용하는 것이 효소랍니다." (117쪽)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궁금증이 해소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많은 궁금증이 남는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오미자, 쑥, 아카시, 금전초, 삼채, 양파, 어성초 등등을 이용한 발효액들은 도대체 어떤 효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인가. 이들 발효액은 단순히 좋은 향이 나는 음료인가 아니면 인체에 꼭 필요한 어떤 유용한 효소들을 우리 몸에 공급해 주는 것일까.
===== 식물발효효소액이라고 하는 제품들에 대해 오늘 180826 결론은 이렇다. 식물의 천연향을 첨가한 설탕물이다. 내 몸에 필요한 효소를 첨가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없다.
- 퀴네가 들려주는 효소이야기 / 이흥우 / (주)자음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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