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빛도서관의 신간 서가에 아주 얇게 꽂혀있었다. 뭐지. 뽑아 들었는데 제목이 그럴싸하다. 게다가 얇으니 더욱 좋다.
"우리는
과학적인 주제를 인문학자들은 어떻게 풀어내고 있으며
인문학적인 주제를 과학자들은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통찰할 수 있다." (속 표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지구라는 행성에만 물이 존재할 수 있었고,
"지구의 역사는 바로 그 물속에서 출현한 화학구조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 일부 물질이 생명체로 발전한 것이다." (5쪽)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물음은 같다.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육체와 영혼은 별개의 것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몸뚱이, 머리, 팔, 다리가 온통 따로 세상에 널려 있었다는 자연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생각이 분자 차원에서 그대로 인용된다.
"얼마간의 분자가 물속에서 서로 합쳐지면서 특별한 화학구조, 즉 다른 분자들을 조합해 자신의 형태를 본뜬 구조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화학적 오토마톤(chemical automaton)'이 생겨났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자기증식'이 가능한 화학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10쪽)
그것이 생명체다. 자기증식이 가능한 화학구조. 아낙사고라스가 말하는 카오스의 상태에서 세계의 질서를 잡아주는 뉘스(nous, 지성)이란 없고, 물속의 화합물과 에너지에 의해서 우연히 만들어진, 자신을 본 뜬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화학구조가 생명체다. 자가증식이 이루어지려면 효소가 필요하다. 효소는 화학반응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단백질이다. 생명체는 자가증식이 이루어지는 화학구조이며, 자가증식은 효소에 의해 반응속도가 빠르게 일어날 때 이루어지고, 그런 역할을 하는 효소가 단백질이다.
제일 먼저 근원인 탄소가 있고, 탄소원자를 중심으로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며, 20종의 아미노산 수백 개가 연결되어 효소가 만들어진다. 효소는 곧 단백질이다. 또다른 부분은 질소염기, 당, 인산기라고 하는 세개의 근원에서 시작하여, 이것들이 결합된 뉴클레오티드, 4종의 뉴클레오티드 사슬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핵산, 핵산은 곧 세포의 설계도가 들어있는 DNA와 RNA다.
루이 파스퇴르는 1864년에 모든 생물체는 생물체로부터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논증했다. 결국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원인 생물체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BC 5세기에 소크라테스는 생명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았었다. 모든 개념에는 반대의 개념이 존재한다. 착한 것이 있으면 악한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있다.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추한 것이 있고,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다. 이 개념들은 모두 동적이어서 어떤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았던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발전해 가고, 작은 것은 큰 것으로 변화해 간다. 모든 만물이 그렇게 서로 반대되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있고, 산 것은 죽은 것으로부터 나오고, 죽은 것은 산 것이 변화해 가는 것이다. 결국 파스퇴르의 논증과 다른 결론인 것이다. 생명은 생명이 아닌 죽은 것에서 온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파스퇴르가 어떻게 증명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더니 영산대 구자현 교수의 글이 나온다. 순수한 공기는 멸균된 효소액(설탕물, 우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에서 미생물을 발생시킬 수 없고, 공기 중의 먼지에 흡착되어 있는 미생물에 의해서만 미생물이 만들어진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는 생물은 축축한 진흙에 햇빛이 비칠 때 우연히 발생한다고 주장해 ‘자연발생설’의 효시가 됐다. 그 후 약 2000년 동안 간단한 생명체의 자연발생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17세기에 실험을 근거로 자연발생설에 도전장을 낸 사람은 이탈리아 의사 레디였다. 그는 1668년 플라스크 2개에 고기를 넣고 한쪽은 천으로 된 망을 씌우고 다른 쪽은 그대로 뒀다. 며칠 뒤 망을 치지 않은 플라스크에는 구더기가 생겼으나 망을 친 플라스크에는 구더기가 생기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레디는 생물은 반드시 생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생물속생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레우벤후크는 현미경으로 다양한 미생물을 관찰하면서 유기물을 오랫동안 공기와 접촉시켜 두면 새로운 미생물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미생물처럼 단순한 생물은 자연발생한다고 믿었다.
18세기에도 자연발생설은 끈질기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1745년 영국의 존 니덤은 양고기즙을 끓여 플라스크에 넣고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은 뒤 플라스크를 통째로 뜨거운 재 속에 넣어 플라스크 속의 공기를 멸균했다. 얼마 지난 뒤 그는 플라스크 안의 양고기즙에 미생물이 존재하는 것을 현미경으로 확인했다. 이로부터 그는 미생물이 자연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765년 이탈리아의 스팔란차니는 니덤이 실험할 때 충분히 멸균시키지 않았다며 자연발생설을 배격했다. 자신의 실험에서 충분히 끓인 양고기즙을 플라스크의 유리를 녹여 완전히 밀폐시켰을 때는 미생물이 생기지 않았지만 조금 끓여 마개를 느슨하게 막았을 때는 미생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팔란차니는 생물은 생물에서만 발생하며, 잠깐 끓이는 것으로는 죽지 않는 미생물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략) 자연발생설을 항복시킨 인물은 19세기 파스퇴르였다. (중략) 유리 플라스크에 설탕 효모액을 넣은 뒤(a) 플라스크의 목을 가열해 백조 목처럼 S자 모양으로 늘린다(b). 효모액을 가열해 멸균시킨 뒤 며칠 놔두면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다(c). 그러나 백조목을 잘라내면(d) 얼마 안 돼 미생물이 자란다(e). 1860년 2월 파스퇴르는 공기를 여과해 찌꺼기를 모아서 현미경으로 조사했다. 그는 영양액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미생물들과 매우 유사한 작은 입자들이 그 찌꺼기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생물은 공기 중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먼지에 섞인 미생물이 공기를 통해 영양액 속에 들어가 번식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실험이 필요했다.
파스퇴르는 설탕을 넣은 효모액을 플라스크에 넣어 몇 분간 끓였다. 그리고 달군 백금관을 통과시켜 무균 상태로 만든 공기를 플라스크에 주입한 뒤 밀봉해 28~30℃로 유지했을 때 효모액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효모액에 공기에서 걸러낸 먼지를 주입하자 2~3일 만에 미생물이 번식했다. 이로부터 파스퇴르는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미생물이 먼지 속에 들어 있는 미생물과 같은 것임을 보일 수 있었다.
[그림출처] 빨간來福의 통기타 바이러스 2.0
"파스퇴르가 사람인가요? 우유아니고?" 중에서
이제 공기 속의 먼지가 미생물을 옮기는 것이지 공기 자체는 아무 혐의가 없다는 것을 밝혀야 했다. 이를 위해 파스퇴르가 생각해낸 실험은 매우 간단했다. 그는 설탕을 넣은 효모액을 여러 유리 플라스크에 담고 그 중 몇 개는 플라스크의 목을 가열해 지름 1~2mm 정도로 백조의 목처럼 S자 모양의 길고 가는 곡선으로 늘렸다. 그리고 백조목 플라스크 속의 효모액을 몇 분간 끓여 멸균시킨 뒤 플라스크의 목을 통해 공기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놔뒀다. 단순해 보이는 이 실험의 결과는 결정적이었다. 백조목 플라스크에서는 미생물이 전혀 자라지 않은 반면 곧은 목의 일반 플라스크에서는 미생물이 왕성하게 번식했다. 또 백조목의 굽은 목을 잘라내면 며칠 뒤 그 플라스크에서도 미생물이 번식했다. 백조목 플라스크에서는 공기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반면 먼지는 백조목에 고인 물에 걸려 효모액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곧은 목에서는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실험을 근거로 파스퇴르는 공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기체와 유체, 전기, 자기, 오존 또는 다른 미확인 매체 중 어떤 것도 미생물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없으며 먼지 속에 들어 있는 미생물만이 다른 미생물의 번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략) 파리의 파스퇴르연구소는 예전 파스퇴르연구소 건물을 박물관으로 바꿔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파스퇴르가 자연발생설을 배격하기 위해 만들었던 여러 개의 백조목 플라스크가 진열돼 있는데, 그 속의 영양액은 파스퇴르가 넣은 지 1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멸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중략) 펠릭스 푸셰는 건초 추출물을 영양액으로 사용했다. 이 안에는 열에 잘 견디는 바실루스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푸셰와 그의 동조자들의 실험 결과는 파스퇴르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파스퇴르 자신도 어떤 곰팡이 포자는 건조 상태에서 120~125℃로 1시간씩 가열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1876년이 돼서야 영국의 존 틴들이 건초 추출액 속에 들어 있는 내열 바실루스를 찾아내 파스퇴르의 손을 들어줬다.
[출처] 역사를 바꾼 실험-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 구자현·영산대 자유전공학부
/ 과학동아 2005년 8월"
그 시기에 한반도의 조선에서는 혜강 최한기가 있었다. 인간과 우주는 기로 가득차 있으며, 생동운화하는 기(氣)에 의하여 생명이 유지된다고 하였다. 생(生)은 곧 생명이고, 인간과 우주가 神氣에 의하여 소통한다고 하였다. 그는 우주의 기운에 한열건습이 있는데, 그것이 온도계와 습도계에 의하여 측정될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한다. 보이지 않는 氣를 볼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에 의해 자신의 철학이 증명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30대부터 인식론에 관한 저서를 쓰기 시작한 그는 노년까지 수없이 많은 저서들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있게 말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를까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알지 못하면 모를까 알기만 하면 세상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그의 기철학이라는 것이다. 음, 꼭 읽고 싶은데, 한문으로 저술된 책이라 과연 원전을 읽을 수 있을까.
[ 그림출처 ] multiThink Blog :: [혜강 최한기]
"조선말 대한민국의 앞날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선각자" 중에서
1924년에 러시아의 생화학자인 오파린이 지구 대기 중의 하나인 메탄(CH4, 탄소 원자의 가장 단순한 유기 분자 중 하나)에서 원시 생명체(유기 화합물)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고, 1953년 미국의 밀러가 메탄,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가 담겨있는 플라스크에 전기 방전을 일으켜 단백질을 구성하는 20종의 아미노산 가운데 몇 개가 검출되었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그후로 비슷한 실험을 통해 아미노산과 핵산의 일부 구성 요소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대기와 전기방전으로 생명체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면 물은 뭐지.
"그렇다면 원시 대기에는 메탄이 정말 많았을까? (중략) 주로 이산화탄소와 물(H2O), 화산 활동이나 유성진에서 기인한 질소(N2)로 이루어져 있었고, 메탄이나 일산화탄소, 황화수소(H2S, 썩은 달걀 냄새가 나는 기체) 같은 다른 기체들은 소량 함유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밀러의 실험에서 메탄의 양을 줄이고 이산화탄소의 양을 늘릴수록 아미노산의 합성은 어려워진다. 따라서 (중략) 원시 대기를 지구 생명체의 출현에 필요한 유기물의 절대적 근원으로 볼 수는 없다. (17~8쪽)
짧은 책이어서 읽기 쉽고, 재미있었다. 화학에 대한 사랑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고, 천체 물리학과 지질학까지 온통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론은,
"스탠리 밀러는 아미노산이 메탄에서부터 생성될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중략) 그러나 밀러 이후로 50년 넘게 꾸준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그 꿈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중략) 행성학자와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내의 행성들과 태양계 너머에서 생명체의 서식지가 될 만한 곳을 찾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된 행성은 지구밖에 없으며, 우리가 아는 생명체의 표본도 지구형 생명체 하나밖에 없다. (중략) 40억 년 전,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어느 행성에서 물질이 어떻게 생명체가 되었는지 우리가 알게 될 날은 결코 오지 않을지도 ..." (64쪽)
한참 기대를 하고 들여다 보았지만 최초의 생명체라고 생각되는 화학적 오토마톤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고 한다. 해저 열수원에서, 호주대륙에서 발견된 35억년 전의 퇴적층에서, 지구밖에서 날아온 운석에서, 태양계 외부의 별에서 생명체와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지만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죽은 것에서 산 것이 나온다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나 활동운화하는 氣가 생명체의 요체라고 생각했던 혜강 최한기와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과학은 철학과 달라서 무엇인가 계속 검증하고 실험하고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스탠리 밀러의 1953년 유기물 합성 이후에 거의 진전되지 못한 연구 결과에도 지치지 않고 지구 위의 과학자들은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명의 최초에 대해 알려고 한다. 최초의 생명체나 우주의 최초의 상태에 대해서 인간들은 아직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연구들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철학 조차 사라져버려 가난 탈출에 매달리는 동양과 자유와 풍요로움을 누리며 과학에 매달리는 서양이 다시 한 번 격차를 벌릴 그런 연구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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