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에 대한 소설이다. 1756년, 대혁명 33년 전에 태어나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를 하며 놀다가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준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어른이 되면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천재 음악가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다. 레미제라블을 읽다가 프랑스 대혁명을 보다가 마리 앙뜨와네트를 찾았다가 모짜르트까지 온 것이다. 그냥 궁금했다. 유튜브에서 그의 음악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직 엄청난 감동은 받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들어볼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21번' '클라리넷 협주곡 : 영화 out of Africa 삽입곡'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이중창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 영화 쇼생크 탈출 삽입곡)
"내 나이 열세 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모차르트는 늘 나와 함께였다. 하지만 그를 듣고, 고대 이집트 문명을 발견해가면서도, 정작 그 둘이 서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이집트인 모차르트'라는 제목의 문헌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의 영적 모험과 그 감춰진 삶을 새롭게 환기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펴낸 네 권짜리 소설의 단초가 되었다. 모차르트는 단순이 메이슨단원의 서약을 뛰어넘어, <마술피리>라는 대작에서 드러나듯,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신비에 입문한 자였다." (1권 9쪽 / 크리스티앙 자크 서문)
소설 속에서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짜르트가 안정되고 높은 수입을 보장받으면서 권위와 명예를 가질 수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음악가가 되기를 바랬다. 그것은 천재성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험난한 수련의 과정이었으며, 유럽 대륙을 떠도는 고단한 연주 여행의 과정이었다. 비범한 것을 바란다면 평범함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레오폴트는 (열세 살의)볼프강에게 계속해서 일하고 또 일할 것을 요구했다. (중략) 모든 표현 양식들을 다듬어 능숙하게 사용했다. 또한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하고 프랑스어까지 정확히 구사했고, (중략) 많은 책들을 읽었다. 미사곡, 무도회용 미뉴에트, 공식 연회나 결혼 피로연, 대학(에서, 중략) 주문은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볼프강은 그것이 그저 주문자의 명예를 빛내는 용도로 夜會 말미에 노천에서, 그것도 딱 한 번 연주되고 말 것임을 잘 알면서도, (중략) 이제 잘츠부르크의 고명하신 나리라면 누구든 그전까지는 전혀 들어보지 않았던 음악, 볼프강의 음악을 맛있는 요리 한 접시처럼 주문하고 싶어했다." (146쪽)
어느 세상이나 평화롭고 안전했던 시절은 길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은 정치와 사회의 수준이 매우 높아진 상태이고,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경제상황도 계속해서 개선되고 있다. 이런 평화의 시간이 길게 잡아 30년이다. 내 생애의 절반 이상은 평화로운 시기이며 진보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10년, 20년, 30년이 어떻게 흐를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더욱 평화롭고 절제와 정의와 지혜가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짜르트가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776년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해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1783년 영국군이 항복할 때까지 7년 동안 프랑스, 독일의 용병들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전쟁이었다. 그런 전쟁의 참상은 잊히고, 프리메이슨이라고 알려진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고, 양심과 자유의 상징인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졌다. 역사에서 수없이 희생된 개인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벌집을 지키기 위해 덤벼드는 용감한 일벌들이 생각난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절제와 정의를 실천하려고 노력한 평범한 사람들은 일벌로 태어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질서 잡힌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기는 하다. 굵고 길게 살 수만 있다면.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야기는 고문 폐지다. 아직도 후진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고문 제도 폐지의 이야기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요제프 폰 존넨펠스라는 법학자에 의해서 처음 제기된 모양이다. 이것 또한 계몽의 시대가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런데, 고문 폐지를 처음으로 이야기 한 것이 불과 250년 전의 일이라니. 인간의 인간성에 대해 깊이 회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빈 대학 정치학부 교수로 있는 마흔세 살의 요제프 폰 존넨펠스는 자신이 발행하는 [편견 없는 인간]이란 간행물에 발표한 글을 통해 계몽철학자들의 사상을 옹호한 최초의 오스트리아 법학자였다. 그는 요제프 2세의 인정을 받아 '고문 폐지'를 공식적으로 이끌어내는 계가를 이루기도 했다. (중략) 조지 워싱턴이라는 인물의 추진력에 힘입어 미대륙에서 합중국이 빛을 보게 되었고, 그자는 양심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이 신세계의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305쪽)
소설이기는 하지만 실명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찾아 보았더니 위키피디아에 꽤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고문 폐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한 줄로 정리되고 만다. 모차르트의 가까운 친구이자 후원자였고, 베토벤도 그를 위해서 '피아노 소나타 15번(전원)'을 헌정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베토벤이 출판사를 찾았을 때 그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계몽주의자이면서 고문 폐지를 이끌어냈고, 온화한 성품을 갖춘 그가 베토벤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Joseph Freiherr von Sonnenfels (1732 – 25 April 1817) was an Austrian and German jurist and novelist. He was among the leaders of the Illuminati movement in Austria, and a close friend and patron of Mozart. He is also the dedicatee of Ludwig van Beethoven's Piano Sonata No. 15, Op. 28, which was published in 1801. (중략) He was chiefly instrumental in bringing about the abolition of torture in Austria (1776).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중에서
1777년 8월. 모차르트는 짤츠부르크 궁정 음악가의 자리를 사직하고 오스트리아를 떠난다. 궁정을 지배하는 대주교가 요구하는 곡만을 작곡해야 한다는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아들을 둔 아버지 레오폴트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궁정 음악가로 굳건한 지위와 높은 보수를 기대했지만 아들은 그런 자리를 받지도 못했고, 스스로도 자유로운 작곡가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쉽게 사는 길을 버릴 수 있는 힘. 그것이 자유다. 천재든 아니든 쉽게 사는 길을 포기할 수 있을 때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볼프강은 실직자로 떠돌든지 새로운 도약을 하든지, 제 갈 길을 가고야 말 것이다. (중략) 볼프강은 자유를 찾은 것에 뛸 듯이 기뻤다. (중략) 젊은이는 한 편으로 이번 파리 여행이 지금까지의 조용하던 자기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을 것이며, 엄청난 시련들을 가져다주리라 예감하였다."
젊은 그의 생각대로 되지는 못했다. 뮌헨과 아우구스부르크, 그리고 만하임에서 그는 환영 받았지만 예술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파리는 어린 시절의 재롱만 기억할 뿐 현재의 성취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향수병에 걸린 그의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더욱 나쁜 것은 그의 첫사람에게서도 버림받은 것이다. 자유를 찾아 짤츠부르크를 떠나 파리로 갔지만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짤츠부르크로 돌아와야 했다. 천재의 삶도 인간의 삶을 넘어설 수는 없다.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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