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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굴삭기를 파괴의 상징이라 말하지 마라_140401, 화

창고 짓는 대역사는 아무래도 계획을 다시 잡아야 할 모양이다. 길과 같은 높이로 흙을 받으려고 하다보니 절벽이 생겨서 축대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했다. 축대를 쌓으려면 무일의 기술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야 하니 추가 비용이 든다. 게다가 7mx7m의 면적을 확보하려면 우리 땅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던 길을 확보해 줘야 하는 문제도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창고를 옮기는 일반 원칙에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세부 사항으로 들어갔더니 삼자간 의견이 갈린 것도 더 이상 일 추진을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일은 못하게 되었지만 굴삭기는 하루 빌리기로 했으니 흙은 15톤 트럭으로 두 차를 받아서 바닥을 높이기로 했다. 농기계임대센터에 가는데 마음이의 브레이크가 부드럽게 듣지를 않는다. 주행을 하면서 계속 확인을 하는데도 즉각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카센터를 찾아갔다. 시험을 해 보더니 별 이상은 없다고 한다. 승용차와 달리 옛날 방식이라 빡빡하게 느껴지는 것 뿐이니 잘 적응해서 타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고장이 아니라니 한숨은 돌렸다. 


담당자가 굴삭기를 꺼내 주는데, 어른 키만한 크기의 굴삭기가 마치 장남감 같다. 약간 더 큰 굴삭기도 있는데, 무일이 받은 굴삭기 교육 이수증으로는 빌릴 수 없고, 정식으로 굴삭기 면허가 있어야 한다. 내년 초에 정부 지원을 받는 교육이 있으니 신청해서 받도록 해야 겠다. 굴삭기 쓸 일이 며칠이나 있을까 모르겠다. 마음이에 옮겨 싣고나니 뒷바퀴가 많이 주저 앉는다. 1톤이 넘는 무게라고 한다.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와 굴삭기를 내리는 데 쉽지 않았다.


마음이 짐칸 위에 있는 굴삭기의 운전석에 앉아 보니 땅바닥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마음이를 경사지에 대고 굴삭기를 짐칸에서 절반 정도 이동시키고 작업 팔로 땅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좀 더 앞으로 진행을 시키니 굴삭기가 30도 정도 앞으로 기운다. 무서워서 운전석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무작정 내렸다. 금방이라도 굴삭기가 쓰러지고 그 밑에 깔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리 속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겁이 나기만 하는데, 옆에서 부모님이 이것 저것 설명을 하시지만 굴삭기를 짐칸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굴삭기 운전석에 앉지 않고도 조정이 가능해서 마음이 훨씬 안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수천께서 다른 사람들 하는 것을 보니 반대편으로 돌아서 트럭 바닥을 작업팔로 찍고 내려 오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무일의 머리도 돌아갔다. 맞아, 그렇게 두 단계 작업으로 내려 오는 것이지. 얼른 굴삭기 몸체를 회전시키고 작업팔을 마음이의 바닥에 짚고 굴삭기를 땅으로 밀어 내려가도록 했다.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인데다 일톤이 넘는 덩치를 옮기려니 어렵고 두려웠다. 한시름 돌리고 운전을 해 보았더니 움직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작업은 달랐다.

 

운전을 제대로 하면 작은 굴삭기지만 삽질 보다 다섯 배의 효율은 날 것 같았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삽으로 한 삽 뜨는 정도 간신히 퍼서 바로 옆으로 날라 놓는 정도 수준의 작업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조금씩 선이 곱게 움직여지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어서 좋았다. 뭐, 이렇게 하면서 실력이 느는 것이겠지. 좁은 굴삭기 안에서 쭈그리고 긴장해서 작업을 했더니 온몸이 뻣뻣하다. 물론 일한 흔적도 별로 나지 않았다.


30톤의 흙이지만 막상 깔아 놓고 보니 불과 30cm 남짓 높아진 것에 불과했다. 동네에 좋은 흙이 없어서 진흙밭에서 퍼 온 흙이라 그다지 상태도 좋지 않았다. 덤프 트럭에서 내려진 흙을 똑바로 펴기 위해서 이리저리 작업을 해 보는데, 띄엄띄엄 말하는 것처럼 모든 동작이 툭툭 끊긴다. 조금 된다 싶어서 연속동작으로 하면 금방 동작이 엉켜버려서 작업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작업 속도를 높이는 레바를 저속으로 해 놓은 상태에서 하루 종일 작업을 했더니 속도는 더 느렸다. 그래도 천천히 조심조심 작업을 해서 다치는 일 없이 안전하게 일은 끝냈다. 작업에 대한 평가는 50점도 안된다. 


논에 들어가 배수로를 보수하는 작업을 했다. 처음 10m는 무난하게 잘 되었지만 그 다음 구간부터는 물기가 있어서인지 굴삭기의 체인이 깊이 잠겨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나 가시던 동네 목수님이 이리저리 해 보라 해서 간신히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빠져 나올 쪽으로 작업팔을 짚고, 팔을 당기면서 굴삭기를 전진시키면 수렁에서도 빠져 나올 수 있던 것이다. 잘 배웠다.


저녁 7시까지 꼬박 작업을 했는데도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거대한 굴삭기로 쓱삭쓱삭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 그들이 길을 만든 것을 보면 수평과 폭이 잘 맞아서 마치 손으로 작업해 놓은 것같다. 오랜 경험과 숙련이 그런 기술을 습득하게 했을 것이다. 굴삭기가 자연 파괴의 상징으로 그려지지만 시골에서 살다 보면 굴삭기는 위대한 작업자이다. 수천평의 자연 위에서 사람의 몸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을 때, 굴삭기가 쓱삭쓱삭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면 신기에 가깝다. 자동차가 시골 사람들이 축지법을 쓰는게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굴삭기는 우공이산을 실현시켜 준 고마운 기계다. 함부로 폄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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