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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반나절을 경운기와 씨름하다_140403, 목

무일농원에는 경운기와 이앙기, 관리기가 있다. 이앙기는 다시 쓸려고 시험을 해 보았더니 너무 썩어서 움직일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고물상에 15,000원을 주고 팔아버렸다. 중고지만 기억에 30만원은 준 것 같았는데, 보은에서 딱 한 번 사용하고 애물단지처럼 끌고 다니기만 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농사를 망칠 수 있고 사용하다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쓸 수 있는 기계를 세워두고 사람과 기계를 사서 모내기를 하다 보니 결국 이런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경운기도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10마력의 힘 있는 경운기라 다루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이앙기 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물건이 경운기다. 간신히 물건을 싣고 다니는 용도로 조금 사용하다가 동네 사람들이 빌려가서 쓰더니 금방 창고 귀퉁이에 비를 맞으며 세워져 있는 신세가 되었다. 경운기계를 달아서 땅을 갈아보기로 합의하고 정농과 함께 손을 보기 시작했다. 배터리는 이미 방전된 오래인지 전혀 작동할 상태가 아니었다. 냉각수는 겨울을 대비해서 완전히 빠져 있어서 물을 받아 채워 넣었다. 엔진 오일은 경고등이 빨갛게 들어와 있는데 열어보니 가득차 있었다. 더 이상 채울 필요가 없는데 왜 경고등이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 연료분사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분사기를 분해해 보았다. 연료 공급계통에 문제가 있었다. 분사부분을 청소하고 연료 공급 라인에서 경유가 잘 흐르도록 수리했다. 거의 세 시간이 걸려서 잘 수리를 했다.

 

전기시동은 불가능하니 수동 시동을 해 보았다. 반응이 없다. 한 시간 동안 팔이 아프도록 돌렸지만 시동은 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연료라인을 열고 연료 탱크 바닥에 고여있을지도 모를 물을 빼내었다. 그리고 다시 20분 동안 열심히 시동을 걸어 보았다. 걸리지 않는다. 포기하고 점심을 먹고 농업대학 강의를 들으러 갔다.

 

땅과 자연을 살리는 유기농법을 가르치는 과정은 재미는 있으나 의마가 없게 느껴졌다. 지난 십 년 동안 깨끗한 농사는 지었으나 화학비료를 배제하지 못했다. 작물이 눈 앞에서 말라가고 있으니 비료라도 줘서 살아나게 해야 한다는 두 분의 말씀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논과 밭에 넣은 퇴비를 만드는 일에도 나서지를 못했다. 생태 화장실도 퇴비간도 만들려는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라도 추진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유기농법이 공허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게 느껴져서 의욕이 떨어진다.

 

농업기술센터의 담당자와 키다리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볍씨 소독을 철저히 해도 키다리병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작물에 오는 병은 거대한 파도처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고 한다. 조금 병세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한다. 볍씨 소독 한 번만이 아니라 모판에서 두 번 더하고 모내기를 끝내고 나서도 추가 방제를 해야 한다고 한다. 적어도 다섯 번은 농약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허 참. 괜히 맘 상해하면서 볍씨 소독을 했네.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귀농통문이 왔다. 다들 귀농해 보니 좋다는 이야기, 농사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한다. 힘들지만 의미있고 사람 사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농사에 저리 적응을 잘 하는 것을 보니 부럽다. 무일의 이상에 맞는 농사를 지으려면 죽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경운기 정비에 실패한 것에서 시작되어 온통 하루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저녁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통닭 한 마리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술 한 잔 걸치고 나서 어제 담가 두었던 볍씨를 농약물에서 건져 내어 씻어 내는 작업을 했다. 한 시간이 안되어 일은 끝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