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준비를 한참 해야 할 시기에 이렇게 여유가 있으니 가난한 농부일 수밖에 없다. 억만금을 얻으려면 정신없이 바빠야 하고, 억만 시간을 얻으려면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지나가 버린 단 일초의 시간도 억만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선택하여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지기로 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세워진 농사 계획은 4월 1일에 트랙터를 빌려서 논에 퇴비를 뿌리고 마른 로타리를 치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음성군 농기계 임대센터에 회원 가입을 했다. 인터넷으로 하는 회원 가입은 어렵지 않았는데, 첨부 서류인 농업인 안전보험 가입증명서를 팩스나 문서로 보내달라고 한다. 그래야 최종 승인이 되고 농기계 임대가 가능하다고 한다. 팩스기나 모뎀이 없으니 팩스 발송은 불가능하다.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보험증권을 사진으로 찍어서 메일로 발송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농협에 부탁해서 팩스로 보내달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농협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은행으로 나와서 증명서 가져 가라고 한다. 다시 농기계임대 센터에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면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한다. 한 고비 잘 넘겼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트랙터를 예약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트랙터 종류가 너무 많다. 금왕의 서부지소에서 빌려주는 트랙터 종류만 4가지다. 출력의 표시도 트랙터 제작사별로 ps와 kw로 다르고, 담당자의 말로는 43마력과 48마력이 있다고 하는데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논 1,400평과 밭 400평을 경운하는데 어떤 장비를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경운 장비와 이랑을 만드는 장비가 합쳐져 있는 것이 있고, 경운하는 장비만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또 크기가 175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림 추정, 팜플렛 공부, 전화통화 등등 아무리 궁리를 해도 적당한 조합이 떠오르지 않는다. 담당자는 한 번 나와서 상담을 받으라 한다. 50대에 막 접어든 무일이 이런 상황이니 나이 드신 분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나중에 센터에 가 보니 담당자 앞에 앉혀놓고 입으로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지시하고 계셨다. 음, 저런 방법이 제일 확실한 것이구나. 참 친절한 공무원들이다.
어제 밤에 비도 촉촉하게 내리고 땅도 젖어 있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농업기술센터에 가기로 했다. 센터로 가기 전에 보건소에 들려서 수천의 혈압약을 지으며 보건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아르바이트로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지고 의논을 하였다. 소장님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교실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이나 레크리에이션 교실이 좋겠다고 한다. 마침 교육 일정도 잡혀 있다고 하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넓은 농기계 임대 센터를 직원 혼자서 지키고 있으니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 온다. 그래도 목소리 높이지 않고 조단조단 설명하는 직원의 인내심이 놀랍다. 오랜 세월 아버지 같은 많은 농민들을 대하다 보니 잘 훈련되어 거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필요한 설명을 해 준다. 배울 점이 많았다.
어쨋든 직원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처음 계획한 것은 퇴비를 뿌리고 마른 로타리를 한 번 치는 것이었는데, 그 일은 가을에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 왜냐 하면 봄에는 풀씨의 번식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한 번 로터리를 치고 나서 2주만 지나면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한 다시 풀이 난다고 한다.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려면 모내기 5일 전에 물을 대고 로타리를 치면서 써레질을 해서 논의 수평을 잡는 일까지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좋다. 기계를 한 번만 빌려도 된다는 것이다. 대신에 지금 할 일은, 집에 있는 경운기에 퇴비를 싣고 논에 뿌린 다음에 다시 쟁기를 달아 가볍게 한 번 뒤집어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래, 이번 기회에 경운기도 연습해야 한다.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정농께 말씀 드렸더니 역시 찬성하신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읍사무소에 들려 농협에 제출할 농지원부를 발급받았다. 마침 친환경 농업도 담당한다기에 지난 번 신청한 친환경 피복재와 우렁이 종패는 언제 보급하느냐고 물었더니 음성군의 담당자와 전화연결을 해 준다. 곧 보급이 될 것이라고 한다. 유기농 인증은 어떻게 받느냐고 물었더니 가장 좋은 방법은 농산물 품질관리원과 상의하는 것이고, 인증서가 나오면 군에서 인증비용 중 30만원을 보조해 준다고 한다. 금왕지역에 유기농을 하고 있는 작목반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소에 친환경 단지가 있고, 이장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다시 농협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농협 조합원이 받는 혜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출자금에 대한 높은 이자, 농업인 보험, 비료와 농자재 구매 등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원 사업은 거의 없는데, 필요하다면 북부 농협의 담당자와 자주 연락을 해서 안내를 받으라고 한다.
지난 주부터 구상한 창고 이동 신축 작업이 삼자회담(정농-수천-무일)에서 합의가 되어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집을 지었는데, 올해는 창고 짓기로 새로운 대역사를 시작한다. 마침 태양광 발전 시설도 신청을 한 상태라 창고 짓기까지 끝낼 수 있으면 무일농원의 영농기반시설이 더 확보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닭장을 걷어 내고 흙을 채워서 7m x 7m의 부지를 만들어 컨테이너와 창고를 옮겨 지붕을 씌우는 작업까지 할 계획이다. 냉장창고를 포함해서 관련 예산은 250만원 정도가 소요되고 태양광 발전시설의 자부담이 470만원이니 총 720만원이 들어가는 대역사다. 벌기는 어렵지만 쓰기는 참 쉽다.
집을 지을 때는 기초부터 쌓아 올라가지만 철거할 때는 지붕부터 하게 된다. 엉성해 보이는 지붕도 철판과 나사못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뜯어내기가 어렵다. 땅 위에서 하는 작업과 달리 서까래가 걸린 곳만 밟으며 몸을 움직여야 하니 매우 불편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을 했으나 간신히 지붕을 뜯어낼 수 있었다. 그나마 지붕 한 쪽은 논으로 밀어 떨어뜨린 뒤 못을 빼내야 하는데 지붕을 뒤집을 수가 없어서 완전히 철거할 수 없었다. 일을 하는 내내 '무리한 힘을 주지 말자' '피곤하면 쉬자'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그래야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날인 26일에는 지붕 해체작업을 마저 하고, 둥근 파이프로 만들어진 기둥은 반나절을 작업했다. 그물망으로 얽혀있는 벽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분해를 했다. 다치지 않고 작업을 잘 해서 기쁘다. 지붕과 벽면을 대부분 걷어내고 나니 바닥에 퇴비가 잔뜩 쌓여있다. 7년 동안 닭장으로 사용하면서 한 번도 퇴비정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왕겨와 계분이 잘 발효가 된 모양이다. 비닐 포대로 담아 보았더니 시커멓게 잘 발효되어 있었다. 양도 엄청나서 삽으로 작업을 하게 되면 3일은 꼬박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퇴비가 많으면 기분은 좋은데 일이 많아지니 쉬운 일은 아니다.
비바람이 불어서 날이 추웠던지 창문 밖의 고양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선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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