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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시

비 그친 평일의 망중한_130705, 금

              비 그친 어느 날의 망중한

 

                                                                    무일 박인성

 

마늘 한 바가지를 깠다.

 

두 분은 맨 손으로 나는 빨간 장갑을 끼고,

세 사람이 세 시간 걸렸다.

 

자식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나면,

두 분은 또 손이 아프게 까셔야 

당신들이 드실 하얀 마늘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와서 놀 줄 알았다가,

허리 끊어지게 앉아서

비 온 날의 오전을 풋마늘과 보냈다.

 

점심을 먹고 고양이들과 놀고 싶어서

효리가 가르쳐 준

고양이 안심시키는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내가 그녀처럼 미인이 아니어서인지

아무리 눈을 깜박여줘도

평화롭고 인자한 눈빛으로 깜박여 줘도

어미 고양이 점순이는 다가올 줄 모른다.

 

보일러실에 갇혀 있는 새끼들이 안타까워

젖먹이러 다녀가는 것만도 다행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새끼들을 먹이느라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한다.

 

책장을 넘기며 게으름을 피우려 하지만

윗목에 다시 깔린 마늘 한 포대에 붙잡혀

기어이 거실로 끌려나오고

오래되어 새롭지 않은 정농의 옛날 이야기는

퇴비만들기에서 목화꽃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수천의 손놀림은 무심하고,

오는 듯 마는 듯 도움되지 않는 비는

곧 그칠 듯하다.

 

고양이도 뜻대로 되지 않는

한가한 듯 손톱밑이 아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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